김한서
[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한서 ]
가족.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나에게 가족은 늘 그 자리에 있는 단 하나의 집이다. 태어나 세상을 처음 경험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족은 늘 같은 곳에 있다. 다만 한 가지 변하는 것이 있다면, 가족의 모습이다. 가족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끊임없이 형태가 변한다. 익숙했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처럼, 가족 또한 익숙했던 존재에서 새로운 모습을 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대학생이 된 지금, 나는 가족의 변화에 많이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도 그러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어린 아이에게 가족의 변화는 그 자체로 무섭고 낯설기 때문이다.
영화 <흩어진 밤>은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되어 가족끼리 흩어져서 지내야 하는 상황을 10살 수민이의 시점에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오랜만에 아빠가 집에 온 저녁, 부모님은 수민이와 수민이의 오빠 진호에게 엄마, 아빠가 이혼을 결정했다는 말을 전한다. 부모님의 이혼도 당혹스러운데, 아이들에게는 부모 중 누구와 살 것인지 결정해야하는 문제까지 안겨진다. 이에 수민이는 계속해서 질문을 한다. 엄마와 아빠가 다시 친해지면 된다고, 친해지면 넷이 같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보지만 이혼은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자신이 더 노력하면 혹여나 상황이 바뀔까, 수민이는 공부도 열심히 해보지만 엄마는 그런 수민이에게 무심하기만 하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수민이는 도저히 누구와 살겠다고 결정하기가 어려워 도망치고 만다. 엄마와 아빠 중 한 명과만 지내게 되었을 때, 자신이 잃어버릴 것들이 무섭고 걱정되는 것이다.
학령기의(만 6~12세) 아이들은 부모가 이혼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인지발달이 미숙한 아이들은 부모가 이혼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고, 부모의 이혼이 자신의 탓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이혼하는 부모에 대한 분노를 피상적으로 표출하며 솔직한 감정은 드러내지 못한 채 공감이 전혀 되지 않는 부모의 행동에 억압된 분노는 점점 쌓여간다. 특히나 영화 <흩어진 밤> 속 수민이가 마주한 상황처럼, 아이가 부모로부터 이혼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한 경우 아이들은 혼란을 느끼게 된다. 갑자기 마주한 가족의 변화에 당황한 아이들은 궁금증을 해결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하고, 이는 결국 아이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지게 된다.
익숙했던 가족관계의 변화 및 상실은 아이의 자아 존중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모의 이혼에 따른 가족의 이별은 아이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상처와 상실감을 안기게 된다. 부모 이혼 후에 자신이 마주하게 될 현실에 대해 아이가 느끼는 불안은 유기불안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가족의 변화로 인한 상실감이 불안과 우울한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아존중감의 매개효과로 볼 수 있다. 부모의 이혼 상황으로 인해 낮아진 자아존중감이 아이의 우울 및 불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현 세대의 수많은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아이에게 어른의 세계를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거대한 부탁이다. 부모의 이혼, 가족과의 이별, 관계의 변화 속에서도 아이는 아이로 남아 있었으면 한다. 부모의 이혼에 수많은 물음표를 가져도 괜찮으니, 그 물음표들을 다만 혼자 간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 또한 열린 자세로 아이들의 질문을 받아야 한다. 부모도, 자식도, 가족의 변화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어쩌다 상황이 변하고 태도가 변하여 자연스레 도달하게 된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이 자연스러움을 아이도 같이 느끼게끔 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커다란 폭풍우에 혼자 휩쓸리지 않도록, 폭풍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부모는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아이들이 가족에 대한 아픔을 혼자 오래 간직한 채로 자라지 않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주소희. (2003). 부모이혼에 대한 아동의 지각과 이혼가정자녀의 심리 행동적응문제와의 관계. 한국가족복지학, 12, 179-210.
윤명숙, 이묘숙, 김남희, 정향숙. (2012). 이혼가정 자녀의 상실감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자아존중감의 매개효과. 한국가족복지학, 35, 7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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