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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왜 엄마의 감정을 대신하기로 마음먹었을까? - 감정의 전염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 기사등록 2021-10-05 10:56:11
  • 기사수정 2024-07-15 09: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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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노지은 ]



  엄마는 속상하거나 힘들 때, 딸을 찾는다. 엄마의 마음속에는 오래된 상처가 있다. 그 상처는 이따금 수면 위로 올라와 엄마를 괴롭힌다. 딸은 엄마가 느끼는 아빠에 대한 서운함, 분노의 감정을 함께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인생이 너무나도 가여워 보였다. 과거에 엄마를 힘들게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며 아빠를 미워하고, 어쩌다 아빠와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면 엄마에게 죄책감이 느껴졌다. 딸은 엄마와 심리적으로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감정의 전염(emotion contagion)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감정의 전염이란 특히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그 전염력이 매우 크다. 존 카시오포 심리학과 교수는 슬픔, 분노의 감정은 인간의 생존본능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크게 표출되고, 그 주변인들도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느껴 부정적 감정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위 상황은 미해결된 부모의 부정적 감정이 자녀에게로 전염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자꾸만 반복되는 상황은 딸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괴롭고 화가 났다. 그런데도 딸은 그 상황을 견뎌야 하는 의무감을 느꼈다. 자신이 아니면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그러나 엄마에 대한 이중적인 마음은 자신을 더욱 지치고 힘들게 했다. 대화는 어느 순간 고민을 나누는 편안한 분위기가 아닌 감정을 마구 쏟아내기 바쁜 숨 막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가 너한테 자꾸 이런 얘기 하면 안 되는데”로 시작하는 말은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결국은 모든 것이 폭풍처럼 쏟아졌고 그것을 묵묵히 받아낸 딸은 자신을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느꼈다.

   

  가족이란 모든 것이 이해되고 용인되는 울타리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은 사회적 상식으로 통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이해는 가족 구성원 내에서도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 이전에 그들은 하나의 독립된 개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착각하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가족끼리는 모든 일을 함께하고 같은 감정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 보웬(Bowen)은 가족 간에도 ‘자기 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분화’란 개인이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자신의 가정으로부터 개별화된 정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개별화’는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되, 심리적으로 분리되어 독립된 자아를 형성과 유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들었든 그것은 엄마의 삶이며 당신은 그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대신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로지 나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만의 경계를 형성해 나가자. 건강한 경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 파악하기’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엄마가 다른 가족 구성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토로할 때, ‘나는 당사자도 아닌데 왜 이걸 다 받아내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 ‘자꾸만 반복되는 이야기들에 이제는 지쳐’ 등 그 상황에서 느낀 바를 솔직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글로써 한 발짝 떨어져 살펴보면 타인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분리해서 인식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엄마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동일시하는 것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고,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 


  타인을 배려하는 만큼 자신도 보듬어주고 공감해주어야 한다. 당신은 이미 좋은 사람이고 가족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홀로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려고 하지 않기를,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자아분화가 심리적 안녕에 미치는 영향. (2017). 윤성민. 한국심리학회

어머니의 자아분화 수준에 따른 청소년 자녀의 문제행동에 대한 지각. (2014). 김민혜, 정윤경. 한국청소년학회

서혜석, (2011). 자녀로 부터의 어머니 분화. 한국심리학회 학술대회 자료

김서영. (2016). 감정적 유대를 구축하는 문화의 형성을 위하여: 프로이트의 동일시 이론을 중심으로. 계명대학교 여성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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