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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한강훈]


“제 기사가 화근이 되어 한 가장이 직장을 잃었죠. 그분께 너무나 죄송해요.” 글쓰기 강연을 하던 A기자가 어렵게 꺼낸 고백이었다. 

 

그가 아직 학보사에서 활동하던 시절, 용역업체 작업반장이 교내 청소 노동자에게 폭언을 일삼은 정황이 파악되었다. 청소 노동자의 부당한 처우는 대학가에서 공공연한 문제였다. 학내 여론은 곧바로 작업반장에게 활시위를 겨누었다. A기자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재빨리 작업반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신문에 실었다. 기사는 큰 화제성을 불러일으켰다. 학교 측은 이 사건을 수습하고자 피해를 본 청소 노동자에게 직접 사과했으며 해당 작업반장을 해고했다.

 

일이 일단락되고 얼마 후 A기자는 일전의 작업반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청소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한다면 내 처우에 대해 고민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교 측의 압박에 그도 어쩔 수 없이 행동한 것이었다. 그의 폭언이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학교의 구조적 문제가 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가는 건 적어도 A기자의 본래 의도와는 달랐다. 내막을 살피기 전부터 A기자가 작업반장을 원흉이라 규정해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다수의 대학생들과 청소 노동자의 의견을 들었지만 작업반장 단 한 사람을 취재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여러 입장을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A기자는 “당시 들끓는 학내 여론에 사로잡혀 자신도 작업반장을 규탄하는 것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여론을 살펴 화두가 되는 사건을 취재하는 것은 기자의 본분이지만 A기자는 여론에 동조를 넘어 편승해버린 탓이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같이 사건을 주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대중에 동조하는 현상을 ‘양떼 효과’(Herding effect)라고 부른다. 미국의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가 진행한 실험은 양떼 효과를 잘 보여준다. 팀당 1명의 피실험자와 5명의 바람잡이를 배정한다. 이후 한 장의 카드를 받고 그것과 같은 카드를 공개된 세 장의 카드 중에서 고르는 실험이 18번 실시됐다. 눈 앞에 펼쳐진 카드 세 장 중 하나는 먼저 받은 카드와 명백히 같은 카드였지만, 75%의 피실험자들은 바람잡이들이 제시한 잘못된 카드를 최소 한 번씩은 받아들였다. 군중심리는 설령 그것이 잘못되었더라도 한 개인의 선택을 좌우하기도 하는 것이다. 

 

A기자의 글쓰기 강연을 듣던 당시 필자는 학보사 기자로서 교내 이슈를 기사로 작성하고 있었다. 수영 과목 교수가 2학기 첫 수업에서 해양 실습 미참여자는 수강을 취소해 달라고 부탁한 일이 발생했다. 수업계획서에 기재되지 않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교내 여론은 해당 교수의 일방적인 통보에 비판적 태도를 일관하며 비난 또한 서슴없이 내뱉었다. 에브리타임에서는 “권위적인 교수들이 으레 그렇듯 학생을 무시하는 거다.”라는 댓글도 달리며 과격해진 양상을 띠었다.

 

필자는 작업반장 사례를 떠올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학사지원실과 연락을 취해 자세한 정황을 들어보았다. 확인한 결과 학교 측에서 수업 이틀 전에 수업 운영 방식을 변경하도록 요구했고 교수는 서툴게 전달했을 뿐 그 내용에 따랐던 것이었다. 만약 대중의 공분에만 주목하고 다양한 입장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또 한 명의 작업반장을 내 손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떠한 사실을 주장할 때 자료 조사와 팩트 체크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을 괄시한다면 군중심리에 휩쓸려 상황 속 맥락을 못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기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기자는 영어로 ‘reporter’라고도 불린다. 직역하면 ‘다시 나르는 사람’이란 뜻이 된다. 말을 나른다는 측면에서 우리 모두는 ‘reporter’ 성질을 띠고 있다. 친구와 하는 대화, SNS에 올리는 게시물 등 우리는 나름의 이야기를 서로에게 나른다. 만약 우리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그럴듯하게 전달한다면 우리 각자는 대중 속에 몸을 숨긴 기레기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장원청. (2020).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미디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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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0-07 09: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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