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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차별주의, 나이기준 개인 기회 박탈하거나 소외 시키는 행위 - 고령화사회에선 주로 노인층서 발생 - 노인에게 획일적 특징 발견하기 어려워
  • 기사등록 2021-10-05 10:16:24
  • 기사수정 2021-10-05 10: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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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연령차별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연령을 이유로 개인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소외시키는 
주의나 주장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최근 한 변호사의 
뒤틀린 언사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어 
중년‧노년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심히 염려스럽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 서울시장 측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한 변호사가 


101세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 
원로 철학자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를 겨냥해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난 것"
이란 비난을 했다. 

김 명예교수가 자신이 
지지하는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특정인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에 만연해가는 
연령차별주의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함이다.

이 변호사가 쓴 글은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문(全文)이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생략한다. 

이 글이 걱정스러운 것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연령차별주의'의 전형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연령차별주의(Ageism)는 
'연령을 이유로 개인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소외시키는 
사회적 이념 및 행위'를 뜻한다. 

연령에 의한 차별은 
고연령층과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일어난다. 

즉 노인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일어난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연령차별은 주로 노인을 
대상으로 일어난다.


연령 차별은 

고연령층·저연령층 대상…

고령화사회에선 

주로 노인층서 발생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을 포함한
모든 차별은 특정 대상을 
그 대상이 속하고 있는 
전체 집단의 속성으로 
환원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특징이 있다. 

어린이와 달리 노인들은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 건강 등에서 
뚜렷한 개인차를 보인다. 

이 점은 생물학적 요인에 
크게 영향받는 '성장'이 
중심이 되는 어린이의 발달과 
뚜렷한 차이점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아(嬰兒)들은 성, 인종, 피부색 등의 
가장 기초적인 차이를 제외하곤
거의 동일한 행동을 보인다.

대조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은 '개성'을 발달시킨다. 

그래서 노인들에게는 
획일적인 특징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물론 생물학적인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 신체적인 노화는 
전 세계 노인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심리적‧영적인 요인들은 
각 개인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가치관 등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연령차별이 크게 염려스러운 것은 
단순히 태어난 지 
얼마나 지났는지를 나타내는 
'나이'를 기준으로 
모든 노인들을 동일하게 
인식하고 취급한다는 점이다.

위의 변호사는 시작부터
노인들에게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다. 

그는 "100세가 넘어서도 
건강하다는 사실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100년을 살아보니….' '100년의 독서' 
그의 최근 책들이다"라고 
비아냥거리며 글을 시작한다. 

아마 책 제목에 
'100년'이 들어간 것이 
눈에 크게 거슬렸던 모양이다. 

책의 내용이 틀렸다거나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면 
그 점을 지적하면 된다. 

비판은 신랄하면 할수록 
본인과 대상에게 도움이 된다. 
서로 많은 공부를 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를 걸고 
비아냥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그것은 자신이 
'연령차별자'라는 것을 
공개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라고 겸양을 가장한 
상투적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는 "이승만 정권 때부터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60여 년 동안 정권의 반민주, 반인권을 
비판한 적이 없었는데"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어째서 지난 100년 동안 
멀쩡한 정신으로 안하던 짓을 
탁해진 후에 시작하는 것인지, 
노화현상이라면 딱한 일이다"라고 
비난하고 있다. 

'멀쩡한 정신'과 '탁해진 정신'을 
구별하는 근거를 
현 정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삼는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정신건강을 연구하는 
정신의학자 임상심리학자 
상담심리학자에게도 
제일 어려운 것이 
소위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에 대한 것이다. 

아직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만한 기준이 없어서 
계속 연구하고 기존의 기준을 
현실에 맞도록 변경시키고 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다양한 검사를 실시하고 
전문가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노망(老妄)했다"라는 표현이
노인들에게 혐오스럽게 
쓰이고 있다. 

풀이하면, 
'늙어서 망령이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처럼 
의학상식이 널리 퍼진 사회에서는 
'치매' 등의 질환으로 
객관적으로 명명하려고 한다. 

소수의 노인들에게서 
지능이나 기억 등 
정신적인 능력이 
현저히 감퇴되는 
현상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질병에 의한 것이지, 
노화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산업재해나 교통사고 때문에 
안타까운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이 
나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젊은이가 장애를 
가지게 됐다고 해서 
젊은이 전체로 
일반화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과 같다. 

소수의 노인이 
치매를 앓는다고 해서 
노인 모두에게 
일반화할 수 없는 것이다.

편견을 제공하는
주요한 원천 중의 
하나가 종교이다. 

서로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극렬한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자주 
그리고 오래 일어나는 전쟁이 
원인 중의 하나가 종교이고, 
신앙의 이름으로 
잔혹하게 진행된다는 것도 
역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령을 불문하고 
상대의 종교에 대한 언급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은 
다양화 사회에서 상식에 속한다. 

또한 같은 종교를 믿는다고 해도 
섣불리 상대방의 믿음의 깊이를 
측량해서는 안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행위의 유무가 
한 사람의 신앙의 깊이를 
잴 수 있는 척도가 되지 못 한다. 

하지만 그는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을 위해 
기득권 계급을 비판하며 
평등과 박애를 외치다가 
34세에 십자가형이라는 
악형을 당해 생을 마친 
청년 예수의 삶을 존경한다는 이가 
어떻게 100세 장수를, 
그것도 평생 안심입명만을 좇는 
안온한 삶을 자랑할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라고 
거의 조롱에 가까운 언사를 
사용하고 있다. 

예수가 34세에 십자가형이라는 
악형을 당했다고 
기독교인 모두가 그 나이에 
그런 끔찍한 죽음을 
맞지 않았다고 폄하하는 것은 
어떠한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특히 지속적으로 
100세까지 정정하게 
살아계시는 것을 
비난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나이가 들며 사람들 

'개성' 발달시켜…

노인에 획일적 특징 

발견하기 어려워


하지만 이 글이
연령차별주의를 심화시키는 
큰 해악을 끼친 것은 
죽음을 맞는데 적당한 연령과 
방법까지 제시하면서 
나이를 희화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글이 
논란을 불러오자 
다시 "나는 늘 
적정한 수명에 대해 
관심이 많다. 

고대 로마의 귀족남성들은 
자신이 공동체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스스로 곡기를 끊어 생을 마쳤는데 
그것을 존엄을 지키는 죽음, 
즉 존엄사(Dignity Death)라고 불렀다…. 

노쇠가 몸과 정신을 
허물어뜨리기 전의 나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각자 삶에 부여하는 
가치와 의미도 다를 것이므로 
이는 정답이 없는 문제일 것이다. 

요즘 나는 약 80세 정도가 
그런 한도선이 아닐까 생각하는데…"라며 
마치 80세 전후가 되면 
존엄사를 하는 것이 
공동체에 보탬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몇 살에 어떤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지는 
개인적인 문제로 남는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살아가는 방식에 
개인차를 인정해야 하듯이 
죽음에 대한 생각과 방법도 
개인에게 귀속되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노인들에게 강요하는 듯이 
죽음의 시기와 방법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100세를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공동체의 폐를 끼치는 듯이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대략 83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평균적으로 83세 내외에 
돌아가신다는 것이 아니다. 

평균수명은 
어떤 연령의 사람이 평균해서 
몇 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댓값이다. 

고대 로마시대의 평균수명은 
대략 25~40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고대 로마인들이 
40세 전후에 다 사망했다는 것이 아니다. 

영화 등에서 보면 
로마 원로원의 회원들은 
대개 연륜이 느껴지는 연장자들이다.

연령차별이 다른 차별과 다른 점은
그 대상이 자신의 미래라는 것이다. 
노인에 대해 폄하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미래를 폄하하는 것이다. 

현재의 젊은이는 
미래의 노인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결말을 예상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노년이 행복한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이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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