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훈
현대 사회는 빚을 권하는 사회다. 때로는 신용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그리고 어떤 때는 레버리지(Leverage)라는 명칭으로 빚을 권장하는 사회다. 코로나 상황, 각종 경제적 어려움으로 빚을 내어야 하는 상황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부동산 가치, 주식 가치 등 자산의 가치가 급격하게 변동하면서 빚내서 투자하지 못하면, 오히려 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까지 나돈다.
하지만,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면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빚은 그만큼의 돈 그 자체에서 한정된 것이 아니라, 돈 그리고 앞으로의 이자까지 포함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버티기 위해서는 원금에 더해 특정 기간마다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까지 감내하며 살아가야 한다. 물론, 빚을 투자의 종잣돈 삼아 더 큰 수익을 창출하여 원금과 이자를 감안하더라도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기는 하지만 모두 그러한 결과를 이루어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의 2021년도 2/4분기 말 가계부채를 한국은행 발표에 근거한다면 1,805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침대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돌 지난 지 며칠 안 된 필자의 아들까지 포함하여 우리나라 인구를 5,182만으로 가정했을 때, 평균 1인당 갚아야 할 빚은 3,483만원에 이른다. 단순히 가계부채로만 계산했을 경우인데, 국가부채와 기업부채는 가계부채보다 더 크다는 점이 특징이다. 연금 관련 적자까지 합하면, 어쩌면 빚으로 국가 경제가 굴러간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2020년도 명목 GDP(국내총생산)을 합하면 1,933조임을 감안한다면 그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채를 부각하려고 하거나 비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 상황 등으로 경제 극복을 위해 세계적인 추세도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돈을 빚내어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얽히고설킨 빚이 많다는 것을 실감나게 부각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사례를 들어 보았다.
표준 국어 대사전에 의하면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빚은 남에게 갚아야 할 돈. 꾸어 쓴 돈이나 외상값 따위를 이른다. 앞서 서론에서 언급한 빚은 모두 “돈”을 빚으로 보았다. 그런데, 빚이라는 단어의 두 번째 사전적 의미는 갚아야 할 은혜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본 칼럼에서는 두 번째 의미 관점에서 빚을 진 필자의 사례를 고백해 보고, 어떻게 갚아나갈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빚은 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1. 필자는 외할머니께 분명히 빚이 있다.
우리는 태어나 삶을 살아간다. 왜 태어났는지? 어떤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나란 존재란 무엇인지? 등의 실존적 물음에 답하기 전에 간단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간다. 그 속에 희로애락이 들어있다. 물론 슬픔과 분노, 애환이 많은 인생도 있고, 쾌락과 기쁨이 많은 인생도 있으리라.
한 인생이 다른 인생을 온전하게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한 사람의 고통과 애환을 그대로 경험하지 않고서 그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지극히 평범하지만, 필자의 이야기를 한 슬라이스 가져오고자 한다. 물심양면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은 당연한 부분이 있어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이번 칼럼에서는 언급하지 않고, 외할머니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보고자 한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외할머니께서 어린 나를 전담하다시피 봐주시기도 하였다.
세월이 흘러 내가 부모가 되고 아직 한참 멀었지만, 아이를 기르면서 새삼 어떤 아이를 잘 양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는데, 필자가 어릴 당시 십수 년간 어머니와 그 아들인 나를 위해 우리집에 계시면서 헌신하신 7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께 빚을 진 것만 같다. 필자가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2년 차가 되던 해 돌아가셨는데,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
필자는 외할머니께 분명히 빚이 있다. 무릎이 아프신 중에도 늘 물심양면 양육에 헌신하신 김노미 외할머니께 돈으로 갚을 수 없는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빚은 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2. 필자는 환경에 빚이 있을 수 있다.
필자의 결혼식에서 존경하는 은사님께서 주례를 서 주실 때, 주례사가 늘 기억에 남는다. 신랑과 신부는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며 살아야 합니다 라는 말씀인데, 늘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가고자 하는데 실천이 쉽지 않다.
당연히 더 좋은 여건에서 자란 분들도 많지만, 좋은 교육과, 다양한 경험과 기회, 부모님, 스승님들로부터 다양한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들만 생각해 보더라도, 이미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상황이었을 때, 내게 신뢰와 호의를 보여주었던 고마운 친구들도 지금은 잘 못하지만, 결국 잊지 않으려 한다.
물론, 언젠가는 글의 소재로 쓰일 쓰디쓴 경험들도 있지만, 다양한 사회의 혜택 속에서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바탕으로 감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물질적인 잣대를 넘어 지금까지의 환경에 대한 빚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종교적인 감사함도 고백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필자가 빚을 갚는 법은 무엇일까?
물이 돌고 도는 것처럼. 빚을 갚는 것도 순환한다.
무언가를 받는 것은 쉬운데, 빚을 갚는 것은 어렵다. 호의를 받는 것은 쉬운데, 마음을 내어 누구를 챙기는 것은 쉽지 않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특히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냇물이 물줄기를 이뤄서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되고, 그 바다의 수많은 물들이 다시 증발하여 대류하고 구름이 되어 비를 뿌려 다시 시냇물이 되듯이 헌신과 노력과 호의 또한 순환할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이나 주인공의 조력자들이 빚을 지면, I owe you(너에게 신세 졌다) 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그 값을 갚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때로는 주인공이 A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A라는 사람이 주인공의 아버지에게 큰 은혜를 입어서 후원자가 되는 케이스도 있다.
기독교 성경 말씀에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이 있고, 불교에는 연기설이 있다. 현대 과학의 발전 또한 자연의 대원칙을 찾고 원칙에 기반한 원인과 결과를 탐구하며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COVID-19의 확산도 우리가 그만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종식시킬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는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작용하고 있다. 언젠가 받은 감사함 들을 사회에도 온전히 선함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물론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지만, 조금이나마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물이 지구를 순환하듯 그 선함이 빚을 갚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쩌면, 이따금 새벽에 잠을 제대로 자지 않고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는 아들을 물심양면 사회에 아름다운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체로 물심양면 자라나게 하는 것이 외할머니께 받은 헌신을 배우고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필자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롭게 작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사회에 진 빚들을 갚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비록 지금은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게 없어, 미천하다. 그리고 사람을 편협하게 바라보거나, 어리석고 교만하게 행동할 때도 있음을 고백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사회에 더 아름다운 역할, 도움이 되는 역할, 빚을 갚아 나갈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기를 기도한다. 내가 진 빚을 기억하며 모두가 연결된 사회에 갚아 나가기를 소망해 본다.
돈의 측면에서 빚의 굴레는 참으로 냉정하고 날카로운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 빚을 지신 분들, 고통받는 분들이 있다면, 그 빚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경제적 자유를 누리시기를 가슴 깊이 기원드린다.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돈 이외의 빚을 진 필자와 같은 마음을 지닌 분들이 계시다면 여전히 부족하겠지만 사회에 지구 공동체에 더 멋진 주역으로 역할 하시길 기도드리며 글을 맺고자 한다.
모쪼록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가슴 뛰는 용기와 생의 의지와 아름다운 평범함을 간직하기를 진심을 담아 마음속 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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