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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음식은 최초의 위로이자 가장 강렬하고 다정한 공감이었다.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관성은 이토록 힘이 세다. 마음을 채워주는 사람만큼이나 위장을 채워주는 사람이 우리를 울컥하게 한다."



밤, 긴장을 풀고 솔직해지는 시간


밤은 낮 동안 활성화되지 못했던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끌어낸다. 밤이 되면 낮 동안의 긴장감과 꼿꼿함을 지탱하던 이성의 강둑이 무너지고 이성의 뇌는 감성의 뇌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사랑, 배고픔, 정서와 중독을 조절하는 ‘변연계’는 우리 안에서 쾌락과 보상의 욕구 버튼을 더 세게 누른다. 


그러면 단단하게 쥐고 있던 중심,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던 밝은 대낮의 틀은 힘을 잃게 된다. 낮에는 차마 표현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우리는 밤에 드러내는 우리의 언어와 몸짓에, 밤을 함께 하고 싶은 소중한 사람에게, 밤에 나누는 대화에 더 큰 진심을 더 싣게 된다.


밤에 내놓은 가감 없는 진심에 가장 당황하는 사람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밤새 쓴 절절한 연애편지를 다음 날 아침에는 차마 전할 수 없는 것도, 밤에 발설한 취중진담의 숙취에 오래 시달리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바쁜 현대인에게 밤은 짧다. 게다가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예전만큼 우리 삶의 구심점으로써 우리를 잡아주지 못할 때,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수많은 ‘나홀로족’들에게 밤은 다정한 ‘함께’의 시간이 아닌 외로운 ‘혼자’를 버티는 시간이기도 한다.


낮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받은 크고 작은 상처를 돌보려면 혼자가 편할 때도 있지만 혼자라는 존재 조건으로 풀 수 있는 긴장감에는 한계가 있다. 낱개로 흩어진 나를 인식하게 된 밤의 시간에 우리는 공허한 마음을 채울 뭔가가 필요하다. 


긴장이 깊을수록 우리는 더 달콤하고도 즉각적인 자극을 원한다. 하여, 한밤에 혼자 야식 먹는 사람과 마감시간이 없는 24시 음식점의 결탁은 이토록 필연적이다.



음식, 가장 원초적이고 다정한 위로


스트레스와 관련된 강의를 할 때면, 현대의 도시인들이 마음 둘 곳 없이 힘들어진 순간, 즉각적인 해답 혹은 도피처를 찾기 위해 가장 쉽게 유혹되는 세 공간을 이렇게 꼽곤 했다.


점집, 술집, 맛집.


그리고 이 셋집 가운데 두 집이 음식을 주 매개로 한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함께 생각해보자고도 한다.


심신이 지쳐있을수록 우리는 음식에 열광한다. 우리가 요즘 왜 그토록 많은 요리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가는 우리가 그만큼 지쳐있음을 잘 보여준다. 단순히 몸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음식의 본질적 기능을 넘어, 오락과 힐링, 향유와 쾌락의 의미로 재현된 음식들이 시선을 끄는 것이다.


왜 음식인가? 그것은 음식이야 말로 우리가 생애 최초로 경험한 분리 감과 공포와 같은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생의 불안을 위로해주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을 통 털어 가장 완벽했던 자궁이라는 낙원에서 가혹한 세상으로 내몰린 때, 그 가장 무력하고 연약했던 생애 최초의 위기에 무엇이 우리를 위로해주었는가를 기억해보자. 그 순간, 충격과 혼란에 빠져 끝도 없는 악을 쓰던 우리 입안에 들어온 것은 꿀맛 나는 젖이었다.



음식은 최초의 위로이자 가장 강렬하고 다정한 공감이었다.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관성은 이토록 힘이 세다. 마음을 채워주는 사람만큼이나 위장을 채워주는 사람이 우리를 울컥하게 한다.


음식과 함께라면 우리는 혼자라는 사실은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하루치의 노동을 마친 후 방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싫은 그 순간, 우리를 위해 배달되고 서비스되고 대접된 음식은 다시 우리를 채워준다.



너와 함께 라면,

야식도 소울푸드


고도로 이성적인, 극도로 경쟁적인, 빈틈없이 합리적인,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효율성과 성과를 따져가며 내 행동을 계산하고 상대의 반응을 짐작해야 하는 메마르고 삭막한 도시인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지치고 상처 받은 마음. 그 마음은 밤이 되면 더 크게 부풀어 오르고 그럴수록 음식에 대한 욕망은 더 커진다.


그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하고 긴장이 쌓인 밤의 시간, 내면의 빈틈을 보상하고 싶어 지는 여린 감성의 시간은, 삼시 세 끼라는 규칙과 틀을 벗어난 하나의 의식을 더 불러들였다.


쉽게 설명하기 힘든 공허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 마감 없이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영업 중인 음식점의 불빛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 먼 데서 반짝이는 등대 빛처럼 반갑다.


비록 그 모든 행위가 포만감 이후에 이어지는 일말의 죄책감과 후회로,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으로 이어지는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죄책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주는 행위)’가 되리라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사실 우리는 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우리가 다 먹을 수도 없는 밥 고봉을 올리고 우리의 궁둥이를 두드려 주시던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담긴 소울 푸드이거나 먹지 않아도 나를 배부르고 충만하게 해주는 누군가의 러브 푸드임을.


그래서 우리는 밤에 홀로 맛있는 음식을 마주하며 한 가지 바람을 품게 된다. 오늘은 비록 내가 홀로 삼키는 야식으로 내 몸과 마음을 일으키려 하며 먹고 난 후 죄책감의 후폭풍도 홀로 감당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음식을 가운데 놓고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으며 마음을 채우고 다음 날이 되어도 황망해지지 않게 해 줄 누군가와 이 밤을 함께하기를.


야식이라는 나만의 의식이 길티 플레져가 아닌 소울푸드가 될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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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0-25 07:3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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