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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한서 ]



“선생님 제가 왜 머리를 안 기르는지 아세요?”


“제가 초등학생 때까지는 머리가 엄청 길었거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에 장난을 자주 하는 남학생이 있었어요. 제 뒷자리에 그 애가 앉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뒤에서 제 머리를 가위로 싹둑 자른 거예요. 그래서 그 때 이후로 한 번도 머리를 기른 적이 없어요. “

 

얼마 전, 학원 학생이 나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중학교 2학년인 이 친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겪은 것을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얘기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어난 일을 3년 동안 마음에 두고 있는 친구가 걱정이 되었고, 이 일로 인해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이 친구가 머리를 기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머리 속 수많은 생각을 정리한 뒤 이 친구에게 물었다. 

 

“괜찮아?” 그러고는 조심스레 질문을 했다. “그때 너는 어떻게 했어? 그 남학생은 벌을 받았어?” 친구는 지금은 괜찮다고 했다. 그때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해 결국 웃으며 넘어갔다고, 그리고 남학생은 그 누구에게도 혼나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는 이 말 또한 크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상처를 이겨낸 것 같지만 결국은 마음 속에 늘 지니고 있는 친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너가 머리를 기르고 싶으면 길러도 돼. 당당하게.” 

 

나는 아직도 내가 알맞은 질문과 대답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미 3년이라는 시간동안 혼자 많은 생각을 했을 이 친구에게 내가 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어렸을 적 경험한 부정적 기억이 단순 스트레스를 넘어 지속적인 위협으로 느껴지는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면, 친구의 신체나 마음 속에 더 오래 남아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다. 아픈 과거를 기억해내어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친구가 성장을 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마다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회피하기보다는 직면할 수 있는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위의 이야기를 해준 친구뿐만 아니라, 나는 2년째 학원에서 저마다의 이야기와 고민들을 가져오는 중고등학생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이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오늘 먹은 음식, 친구와 한 사소한 대화부터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부모님의 교육 철학, 과거 이야기들까지도 알게 된다. 예전에는 수업이 급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시도하는 친구들에게 무조건 안된다고 이야기했지만, 이 친구들이 나와 나누는 짧은 대화 속에서도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종종 시간을 들여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대부분의 성장기 학생들은 하루 동안 수많은 생각들에 빠진다. 그리고 때로는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 그러나 누군가에게 꼭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아주 가까이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가끔은 내가 그 이야기들을 세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작은 통로가 되었으면 한다. 많이 울퉁불퉁한 통로이겠지만, 그럼에도 통로의 출구까지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고등학생 때 매일 듣던 노래의 가사처럼, 어떤 말들은 꼭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말들은 꼭 해야 돼. 

안 그러면 정말 후회해.

매일매일 해가 뜨듯이

너를 바라보고 있어요.”


(우효-Teddy Bear Rises)




참고자료

메리 파이퍼. (2019).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위고 (안진희).

조항, 김정란, 장유정. (2019). 상담 및 심리치료에서의 트라우마(trauma) 연구동향(2001-2017). 상담학연구, 20(1), 67-91

김보라, 이덕희, 이도영 and 이동훈. (2019). 트라우마 사건 경험과 심리적 증상, PTSD 증상, 외상 후 성장의 관계에서 스트레스 대처능력의 매개효과. 한국심리학회지: 건강, 24(1), 11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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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0-14 09: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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