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연
[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양다연 ]
<오징어 게임> 포스터(출처: 넷플릭스 화면 캡쳐)
2021년 9월 17일 넷플릭스(Netflix)에서 최초 공개된 한국의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서비스가 제공되는 모든 국가에서 시청률 1위를 달성한 세계 첫 번째 작품이 되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오징어 게임>은 456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여섯 개의 게임에 도전하는 내용의 데스 게임 장르(Death game genre)물로, 주로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나 또한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이전에 봐왔던 스릴러 영화, 드라마와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과 충격을 느낄 수 있었다. 탄탄하고 스릴있는 전개, 몰입되는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 눈을 바쁘게 만드는 드라마의 배경과 소품 등은 시청자가 <오징어 게임>만의 분위기와 매력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오징어 게임>을 보며 느낀 개인적인 감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오징어 게임의 457번째 참가자로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영원한 공격과 영원한 수비
야구는 서로 다른 두 팀이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며 승패를 겨루는 경기이다. 계속해서 공수가 바뀌기 때문에 야구는 아무도 경기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스포츠이다. 언젠가는 일어날 수도 있는 반전을 희망하는 ‘9회말 2아웃’이라는 야구 용어가 생겨날 정도이다. 그리고 나는 <오징어 게임>이 ‘공수가 바뀌지 않는 야구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결국, 오징어 게임에서 9회말 2아웃은 바랄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공격팀은 빨간 옷을 입은 진행 요원들이며, 수비팀은 456명의 게임 참가자들이다. 진행 요원들은 옷과 가면, 목소리 변조를 통해 자신들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탈락한 참가자들을 죽일 수 있는 총을 가지고 있다.
반면, 참가자들은 아무런 무기없이 게임장 내에서는 그곳의 규칙에 따라야만 하고, 과반수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이상 게임을 중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징어 게임이 참가자들에게만 불리한 게임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야구 경기를 보는 이유가 그렇듯이, 우리가 스릴러물을 보는 이유는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불확실함 때문인데, 이렇게 확실하게 정해진 공격과 수비 구조가 사람들이 긴장감을 느끼도록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극적인 긴장감, 즉 서스펜스(suspense)에 대한 질만(Zillmann)의 주장으로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질만은 ‘불확실성’으로 인해 서스펜스를 느끼는 경우보다, 시청자들이 예상하기에 부정적 결과가 나타날 확률이 높을 경우 서스팬스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즉 시청자들이 부정적 결말에 대한 ‘확실성’을 얻을수록 서스펜스를 느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9회말 2아웃에서 홈런을 터뜨린다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이 없기 때문에 1명을 제외한 455명의 참가자들이 부정적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확실성은 <오징어 게임>을 보는 내내 느끼는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시청자들의 주관적인 확실성은 455명이 참혹하게 죽고 남은 1명이 살아남는 ‘결과’보다 그 ‘과정’을 조명함으로써 오징어 게임의 모든 과정을 놓칠 수 없는 순간으로 만든다.
심판(혹은 악당)
나는 다른 스릴러, 서바이벌 콘텐츠와 <오징어 게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차이는 ‘심판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스릴러, 액션 미디어에는 오징어 게임의 진행 요원과 참가자처럼 대립되는 두 경쟁자가 등장하지만, 그들 위에 군림하여 양쪽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에서는 진행 요원과 참가자라는 경쟁자 위에 ‘프론트맨’이라는 ‘심판’이 존재한다. 물론, 프론트맨은 진행 요원과 함께 공격의 위치에 있다고 해석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규칙에 따라 진행 요원들은 게임이 진행되는 시간 외에는 철저하게 프론트맨의 감시 아래에 있어야 했으며, 신분이 노출될 경우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그들 또한 456명의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담보로 오징어 게임의 진행 요원으로 참가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담보의 조건이 달랐을 뿐, 그들의 목숨이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똑같았다.
이 때 심판이자 프론트맨이 하는 기능은 오징어 게임 세상을 ‘공평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 세상 안에서 몇 명의 진행 요원은 탈락한 참가자의 장기를 매매해서 비밀리에 금전적 이득을 얻었고, 이 과정에서 한 참가자에게 게임의 힌트를 알려주는 비리를 저지른다. 이러한 ‘반칙’을 올바르게 교정해주는 심판이 바로 프론트맨이다. 프론트맨은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죽음을 모든 진행 요원과 참가자에게 알림으로써 오징어 게임 속 세상은 공평한 세상임을 강조한다. 공격과 수비의 명확한 대비로 인해 자칫하면 억지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오징어 게임 세상에서 심판의 공평한 저울질은 오징어 게임이 그 누구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 게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시청자들은 참가자들이 처한 안타깝고 불리한 현실에 이입하면서도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함으로써 오징어 게임 세상 속에서 진행되는 여섯 가지의 ‘게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공평한 세상을 만드는 심판이 알고보니 오징어 게임을 주최한 자본가들의 하수인이었다는 점은 시청자들이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프론트맨이 오징어 게임에 참여해 우승을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가 불공평한 현실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공평한 세상을 조성했다는 모순은 우리의 현실을 드러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오징어 게임>은 작품 자체로도 그 안에 사람의 모든 심리 요소가 들어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현실의 인간 심리를 잘 그려낸 작품이다. 게다가 적자생존, 물질만능주의, 성역할 고정관념 등 현실의 문제를 가상 세계를 통해 적나라하게 그려냄으로써 사회를 고발하고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과 욕구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오징어 게임> 속에는 다양한 장치가 숨어있겠지만, 이번 기사를 통해서는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보며 느꼈던 감정과 그 감정의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했다. 그 어떤 현실보다도 실감나는 허구의 세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오징어 게임>이 앞으로도 많은 현실을 그려냈으면 좋겠는 바람이다.
출처 표기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https://www.netflix.com/kr/title/81040344
[네이버 지식백과]. 액자식 구성.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180624&cid=47319&categoryId=47319&expCategoryId=47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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