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준
[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양원준 ]
포수의 머리 위를 지나 관객석으로 날아가는 공. 홈플레이트에 한참 못 미치고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공. 야구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나 던질만한 어이없는 실투. 그러나 이런 공을 프로야구선수가 계속해서 던진다면 어떨까? 야구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는 등장인물인 투수 유민호가 여러 경기 동안 단 한 번도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이 아니다. 1968년 평균자책점 2.12로 메이저리그 11위를 기록한 스티브 블래스는 불과 5년 뒤인 1973년 평균자책점이 9.85로 추락했다. 시즌 내내 투구를 마음대로 전혀 조절하지 못한 그는 다음 해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유민호와 스티브 블래스에게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스포츠 심리학계에서는 위와 같은 현상을 스티브 블래스 신드롬, 혹은 입스라고 부른다. 입스는 선수가 운동 수행 중 갑작스러운 근육 경련, 떨림, 숨 막힘 등의 원인으로 특정 동작에서 의도치 않게 같은 실수를 반복적으로 하는 현상이다. 골프에서 가장 흔히 관찰되며 야구선수들도 입스를 자주 겪는다. 한국에서도 홍성흔, 김재환, 정근우 등의 선수들이 입스로 인해 오랫동안 슬럼프를 겪거나 포지션을 변경해야만 했다. 입스를 겪게 되면 어떻게 공을 제대로 던지는지, 어떻게 배트에 공을 맞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듯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계속해서 예전의 감각을 떠올리려 해봐도 상태는 더욱 악화한다. 그렇다면 입스는 어떤 이유로 생기는 것일까?
신드롬이라는 명칭이 붙은 대부분 사례와 마찬가지로 입스의 명확한 이유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신드롬, 혹은 증후군은 질병과 달리 원인을 모르는 증상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스에 관한 연구들은 크게 두 가지 원인을 꼽고 있다.
첫 번째는 성과주의 문화의 영향이다. 현대 사회의 성과주의 성향은 스포츠 선수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지나친 강박관념을 심어준다. 이로 인해 경기에 나서면 심리적으로 긴장하게 되고 신체 기능에까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즉, 경쟁으로 인한 높은 불안 상태에서 과도하게 심리적 압박을 느끼면 입스를 겪을 수 있다. 입스가 특히 완벽주의 성향에 가까운 선수들에게 많이 나타나며, 토너먼트나 결승전처럼 중요한 경기에서 자주 발생한다는 점은 심리적 긴장과 입스의 관계를 보여준다. 반대로 주요하지 않은 연습 경기에서는 입스를 겪던 선수도 멀쩡히 공을 던지기도 한다. 골프의 경우 자식의 성공을 본인의 성공과 동일시하는 부모들의 ‘골프대디’ 문화가 선수들이 성적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했고, 이것이 잦은 입스로 이어졌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두 번째 원인은 트라우마다. 중요한 경기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실수를 범한 선수는 해당 장면이 트라우마가 되어 같은 실수가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송구나 포구를 실수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그 뒤로도 같은 동작을 수행하려고 할 때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수들은 트라우마의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노력하지만, 잊으려고 할수록 머릿속에는 실수한 장면만이 가득 차게 된다.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가 작용한 것이다. 특정 생각을 억제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해당 생각을 더욱 강하게 떠올리게 한다는 이론이다. 즉, 중대한 상황에서의 실수가 트라우마로 남아 계속해서 강화되면서 선수들이 간단한 동작조차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입스는 하루아침에 극복할 수 없고, 빨리 극복하려 할수록 오히려 증상이 악화하기도 한다. 입스를 겪고 포지션을 변경해야만 했던 선수들은 결국 끝까지 회복하지 못한 경우다. 스포츠계에서는 입스 극복을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스토브리그」의 유민호는 홈런을 맞더라도 스트라이크존에 던지는 것만 생각하라는 코치진의 지시를 계기로 입스에서 벗어났다. 결과에 대한 부담을 완화한 결과였다. 조직심리학 분야에서 이와 같은 동료나 상사의 긍정적 피드백은 직무성과를 향상하는 것으로 연구되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경쟁상황의 압박을 줄이기 위해 지나치게 성과를 강조하는 문화에서 탈피할 필요도 있다.
스포츠 멘탈 코치들은 계속된 실패를 상상하지 말고 반대로 성공하는 장면을 그려보라고 제안한다. 트라우마를 잊는 데 집중하기보다 긍정적인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노력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심리상담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많은 프로스포츠팀이 전문 심리상담사를 고용하는 이유다. 성과에 대한 압박과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선수들에게는 주변의 심리적 뒷받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참고문헌
MLB 공식 홈페이지, https://www.mlb.com/stats/pitching/1968?sortState=asc
고경훈‧허정훈, (2016), 「야구선수들의 입스(yips) 현상에 관한 탐색적 분석」, 『한국스포츠심리학회지』 Vol.27 No.4
백승홍 외 2인, (2020), 「프로골프선수들의 입스 원인과 대처방안에 대한 심층적 접근」, 『한국발육발달학회지』, Vol.28 No.2
이용승‧원호택, (1998), 「사고 억제의 역설적인 효과에 관한 연구 개관」, 『심리과학』 제7권 제1호
김병준‧최인원, (2019), 『스포츠 멘탈 코칭 EFT』, 몸맘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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