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준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양원준 ]
교통사고vs암
한 해에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과 암으로 죽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많을까? 깊게 생각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답해보라.
만약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 대답했다면, 당신은 불완전한 사고의 덫에 빠진 것이다. 2019년 기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3,349명, 암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81,203명이었다. 하지만 위 질문을 들으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더 많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왜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암 사망자 수보다 많다고 생각할까? 가용성 휴리스틱이라는 인지적 과정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사고는 완벽하지 않다. 찬찬히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대부분 문제에 대해 논리적인 답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당장 답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누구나 ‘심리적 지름길’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고려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어 있을 때,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다양한 심리적 기법이 활용되는 것이다. 이런 지름길을 휴리스틱이라고 한다. 휴리스틱은 완벽한 인간이 아닌 우리가 문제에 대해 그나마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는 데 도움을 준다. 대표적인 휴리스틱의 종류가 바로 가용성 휴리스틱이다.
가용성 휴리스틱
교통사고, 항공사고, 암, 살인,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어림짐작하고 비교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가용성 휴리스틱을 사용한다. 가용성 휴리스틱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확률이나 빈도수를 자신의 머릿속에 해당 사건이 떠오르는 정도를 기준으로 추정하는 일종의 편향이다.
혹은 최근에 일어났거나, 스스로와 더 관련된 사건이 일반적으로 더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가용성 휴리스틱에 해당한다.
암으로 사망한 사람의 뉴스를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교통사고에 관한 뉴스는 라디오나 TV에서 심심치 않게 다뤄진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암보다 교통사고를 더 강렬하게 떠올리게 되고, 이로 인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더 많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가용성 휴리스틱의 영향력
가용성 휴리스틱은 소비자로서의 행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1997년, ‘마스’라는 유명 초콜릿 바를 판매하는 회사의 매출이 급격히 증가한 적이 있다. 별다른 마케팅 캠페인이 진행된 결과가 아니기에 경영진도 영문을 몰랐다고 한다. 미스테리한 매출 증대의 원인은 이랬다.
그해 나사의 탐사선이 화성(영어로 ‘마스’)에 착륙하면서 수많은 언론 보도에 ‘마스’가 언급되었던 것이다. 몇 주간 ‘마스’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들은 소비자들은 초콜릿 바를 구매할 때 자연히 마스 초콜릿 바에 손이 갔다. 팝가수 리베카 블랙의 곡 <프라이데이>의 유튜브 조회수가 금요일마다 폭등한 것도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모든 광고가 가용성 휴리스틱을 활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본 광고를 떠올리며 해당 상품을 구매한 경험이 다들 있을 테다. 같은 이치로 브랜드 인지도가 가장 높아 쉽게 떠오르는 브랜드의 상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가용성 휴리스틱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시간, 날짜 등 소비자들이 반복해서 접하는 대상과 상품을 연관 짓는 것이 좋다. 보완재와 연관 짓는 광고도 효과적인데, 보완재는 어떤 한 재화의 수요가 늘어날 때 수요가 함께 증가하는 재화다.
예를 들어 치킨과 맥주, 커피와 설탕, 빵과 버터가 있다. 맥주 광고에 치킨이 함께 등장하게 하면, 치킨이 생각날 때 자사의 맥주를 함께 구매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유행어를 활용한 광고도 가용성 휴리스틱의 예시인데, 많은 매체를 통해 접하는 유행어와 상품의 연관성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참고문헌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안진환 역, (2009), 「넛지」, 리더스북.
하워드 댄포드, 김윤경 역, (2011), 「불합리한 지구인」, 비즈니스북스.
조나 버거, 정윤미 역, (2013), 「컨테이저스 전략적 입소문」, 문학동네.
e-나라지표, https://www.index.go.kr/main.do?cat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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