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한강훈 ]



 두 달만 지나면 어느덧 올해도 끝이다. 연초에 계획했던 자격증 공부, 운동, 여행 중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아직 없는데도 말이다. 미뤄왔던 자격증 공부라도 끝내고 올해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 최근 들어 도서관으로 자주 발걸음을 옮기곤 한다.


 그때마다 ‘왜 이제껏 계획대로 행동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내가 세운 계획은 마치 초등학생의 방학 시간표처럼 너무나 쉽게 무너져 왔다. 우리는 계획을 수행하는 일에 왜 이토록 어려움을 느낄까.

 

 계획이 실패하는 가장 큰 요인은 앞에 있는 과제를 미루는 데에 있다. 1999년 실시된 리드의 실험은 우리가 과제를 미루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리드는 사람들에게 스물네 편의 영화 중 세 편을 고르도록 지시했다.


 사람들은 코미디나 액션 영화 같은 대중영화를 고르기도 했지만, 세 편 중 하나로는 교양 영화를 선택했다. 재미를 추구하는 동시에 지적 교양까지 챙기고자 한 모습이다. 그러나 재밌게도, 고른 영화를 즉시 봐야 한다고 말하자 교양 영화를 보겠다고 한 비율이 1/13로 줄었다.

 

 그들은 교양 영화가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당장은 피하고 싶어 했다. 실험을 반복할수록 참가자들은 먼 미래의 편익보다 당장의 편익을 추구했다. 이 실험은 우리가 시간이 없어서 계획을 미루는 게 아니라 단지 자제력이 없어서 미루는 것임을 지적한다. 어떻게하면 계획을 수립하되 게으름은 물리칠 수 있을까. 

 

 우리가 계획대로 행동하기 힘들어하는 것은 그것이 현재 상황을 즐겁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즐겁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힘들게 한다. 이는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는 ‘경험 자아’에 반하는 행동이다. ‘경험 자아’는 현재 좋은 일을 경험하면 행복해지는 자아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제시한 행복을 결정하는 두 가지 채널 중 하나이다. 또 다른 채널인 ‘기억 자아’는 삶을 뒤돌아보며 긍정적인 기억을 한껏 끌어낼 때 행복해진다. 이 두 자아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계획을 세워 목표에 다가서는 일은 ‘기억 자아’가 나중에 되돌아볼 만한 성취적인 족적을 남기는 일이다. 반면 ‘경험 자아’는 이에 만족할 수 없다. 우리가 계획에 따라 고된 노력을 이어가려면 뿔난 ‘경험 자아’ 또한 다독여야 한다. 때론 휴식을 취해야 하며, 다른 때엔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해야 한다.


 우리가 늘 간과한 것은 ‘경험 자아’를 만족시키는 일을 계획표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획표에 빼곡히 적힌 해야 할 일이 우리의 숨통을 조이기 전에, 사이사이에 나에게 주는 보상을 적어 넣어 숨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필자는 도서관에 가기 싫을 때 카페에 가서 기분전환을 하고, 어쩔 땐 밖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나간다. 그것도 시럽을 잔뜩 뿌려서. 살면서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있고, 계획은 늘 필요하다. 우리가 우리 삶에 쉼표를 찍지 못한다면 계획은 언제나 파도 앞에 세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 것이다. 고단한 나날에 작지만 행복한 경험을 심어주자. 그것이 우리가 계획에 넘어지지 않고 차근차근 나아가게 해줄 것이다.



*참고문헌 

데이비드 맥레이니. (2012). 착각의 심리학. 추수밭.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2327
  • 기사등록 2021-11-16 07:40:4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