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안남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대학 다니는 동안
의정부에서 신촌까지
매일같이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지하철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우연히 스친 사람들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많았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아저씨가 볼펜을 한 다발 들고 통로 중앙에 섰다.
1호선 안에서는 매일 같이 마주치는 장면이었다.
낯선 사람들이 지갑을 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잊을만하면 나타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허공에 띄우고는 사라졌다.
마치 같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그들은 하는 이야기도 제스처도 레퍼토리도 비슷했다.
감흥과 관심은 사라지고
그들이 한 사람이 아닌 한 무리로 인식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무표정과 무심함을 그렇게 배워갔다.
그날 본 그 아저씨는 몸이 불편해 보였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무릎 위에
코팅이 되어 빳빳한 종이 글귀를 올려놓았다.
분명 뭔가를 사달라는 얘기일 것이었다.
분명 돈을 벌어야 하는 사정을 설명한 얘기일 것이었다.
나는 이미 많이 들어온 그 이야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아저씨의 종이가 마치 그곳에 없는 듯이
보던 책에 눈길을 돌리는데
아저씨는 갑자기 지하철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몸을 일으키지 않기에
바짝 엎드려 절을 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아버린 나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라도 드리자고 마음을 먹었다.
아저씨가 지나다니며
코팅 종이를 수거해가기를 잠시 기다렸다가
돈을 드렸다.
아저씨는 고맙다고 웅얼웅얼 말씀을 하시더니
볼펜 하나를 꺼내어 주셨다.
괜찮다고 해도 한사코 주셨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어 주려고 하셨다.
나는 또 괜찮다고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약간 화가 난 얼굴로
손가락을 짚어 볼펜통에 있는 글귀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500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어쩔 수 없이 500원을 받고,
나는 아저씨가 다른 칸으로 옮겨갈 때까지
지하철이 내가 살고 있던 역에 나를 데려다줄 때까지,
다시 책을 읽지 못했다.
결국 이 생각에 도달하고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엎드려 절하는 것,
그것은 그가 판매를 하는 방식이었지
적선을 구하는 방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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