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안남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1.
미국 드라마 <엘리 맥빌> 중 한 장면이다.
딸이 학교에서 담배를 피워서 교장실에 불려 갔다 온 엘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녀는 딸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딸도 지지 않고 화를 낸다.
딸의 방에서 나와 씩씩 거리는 엘리에게
남자 친구(본 조비가 이 연기를 한다)는
자신이 얘기를 해보겠다고 말한다.
2.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는 엘리의 딸에게 말한다.
“카메라가 모든 공간을 다 비추어 주지 않은데
너는 카메라 앞에서 담배를 피운 것 같아.
네가 하고 싶은,
하지만 하지 못하는 말이 있었을지도 몰라."
(본 조비는 원래 멋있지만
이 장면에서 더 멋있었다.
나에게는 그의 이 모습이
어른답게 이야기하는 어른의 상징이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아이의 비뚤어진 모습과 맞부딪쳐가며
서로를 튕겨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해도
그 행동 밑의 숨은 의도를 알아봐 주려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주기 위한, 관심과 고심
그리고 다정하고도 단호하게 건네는
버팀이 되는 이야기.
이야기하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판을 벌려주는 태도.
그때는 아이도 없었고
사실 내가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몰랐던 나는
나는 그 장면을 여러 번 돌려보면서
저런 엄마, 아빠가 아니라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3.
어렸을 때 슈퍼에서 물건을 훔쳤던 적이 있다.
그때는 내가 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
그렇게 탐나는 것도 아닌 물건을
호주머니에 넣고는
들킬까 봐 고뇌했는지
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몇십 년이 흐른 후
비행청소년들의 마음을 다루는 논문을 읽고
하나의 문장에 여러 번 밑줄을 그으며
과거의 내 마음을 읽었다.
“물건을 훔치는 아이들은 사실
사랑을 훔치는 것이다.”
사랑과 관심처럼,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일수록
그 의미에 자꾸만 달라붙는 다른 오염원들을
제거하고
다시 새롭게,
제대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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