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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1. 관계 속에서 나 찾기(혹은 나를 잃지 말기)



관계의 어려움에 대한 강의 요청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어떤 이야기로 시작하면 좋을까 생각해보다가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한참 걸었었다.

숲에서 거미줄을 만났고 거미줄에 걸린

파리들과 작은 벌레들

그리고 거미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거미줄이 마치 관계가 힘들어질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망처럼 보였다.

나는 이 질문으로 시작했다.



나는 거미인가? 아니면 거미줄에 걸린 벌레인가?


거미는 거미줄을 짓는 장본인,

우리는 관계를 맺는 장본인.

관계가 어려울 때란

내가 쳐놓은 관계의 연결망 속에서

내가 거미로, 내가 주체로 있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일 지도 몰랐다.


그날의 주제는 ‘관계 속에서 나 찾기’였지만

어쩌면 진짜 주제는 ‘관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였을지도 몰랐다.

관계 속에서 나를 지켜나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2.



관계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은유로 ‘거울’을 생각하곤 했다,


좋은 관계란 좋은 거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평생 동안

우리를 제대로 비춰주는 좋은 안정적인

거울을 찾아 헤매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를 크게 비춰주는 거울도

나를 작게 비춰주는 거울도

그리 좋은 거울은 아니었다.



이런 면에서 백설공주의 이야기도

다시 생각해보곤 했다.

어쩌면 진짜 나쁜 사람은 여왕이 아닐지도 몰랐다.

아니, 여왕은 처음부터 악한 사람이었다기보다는

타자의 반응에 너무 쉽게 흔들리는

약한 사람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좋은 거울이었다.

'거울아 거울아..'를 이야기하지 않고

거울을 치웠더라면,

그 거울이 아닌 다른 더 좋은 거울을 선택했더라면

그녀는 약해서 악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약함으로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거울은 그래서 중요하고 결정적이다.



3.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



관계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이런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관계에 너무 영향을 크게 받는데요,

그렇다면 대체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생각나는 대로 흘러나오는 대로

그 전날 시작한 이야기에 이어 긴 답변을 해주었다.


https://blog.naver.com/yumiri00/221009478379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아무리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영향받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나’라는 것.

내가 온통 타자로 뒤덮여 있는 것 같아도

처음부터 내가 있었다는 것.

내가 이 모든 선택의 배후에 있음을

내가 잘 보이지 않을 때라도 잊지 말기를 바라요."


관계를 이야기하려면

결국 모든 이야기가 ‘나’에서 시작했다가

‘사람들’을 돌아 다시 ‘나에게 도착했다.

이 모든 여정 속에서 더 크고 단단한

나의 동그라미를 그려가기를 바라게 된다.



4.



상담을 할 때에도, 엄마로서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좋은 거울이 되어주고 있는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좋은 거울이란 있는 그대로를 비춰주는 일,

그러면서 상대가 미처 못 보고 있는 좋은 면을 비춰주는 일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 사람의 좋은 면,

그 사람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손을 잡는 일,

그쪽에 물을 대주고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었다.



5. There is no such thing as ‘a’ baby.



처음부터 홀로 외따로 떨어져 있던 존재는 없었다.

모든 존재는 세트였다.

삶의 매 순간, 혼자인 것처럼 보일 때조차

우리는 관계의 연결망

어느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모든 관계의 끝에서 새로운 관계가

이미 시작되고 있고

무수한 관계 속 연결망 속에서 우리는

살며 사랑하며 배운다.

부디 우리가 딛고 있는 모든 연결망이

우리가 헛발을 디디더라도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탄탄하고 촘촘하기를

우리가 매일 관계 속 모든 선택의 배후에 있는 자로


거미가 될 수 있기를

내가 좋은 거울이기를 매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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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1-10 0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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