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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이정연 ]


하늘만 보면 눈물만 나와서 올려다보지도 못하겠어. 나랑 눈도 안 마주치려 하고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이는 데다가 소문 그대로 다 굳어 버릴 텐데 내가 괜찮은 척하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데? 나 진짜 죽고 싶어. 자해? 안 보이는데 하면 그만이지. 너네랑 있으면 괜찮은데 나 때문에 피해 받을 것 같아 눈치 보여. 아마도 나 안 괜찮아. 도와줘

 

 

 

 

2021년 6월 27일, 강원도 양구의 한 기숙형 고등학교에서 해당 학교의 재학생이 옥상에서 투신하여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일로 가해자는 피해자를 저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소문을 내고, 눈치를 주는 등 소위 말하는 ‘은따’를 시킨 것이다. 24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기숙학교라는 특성 때문에 피해자는 모든 순간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처음 ‘학교 폭력’이 사회의 큰 이슈로 자리 잡게 된 것에는 미성년자인 학생들이 마치 성인처럼 친구를 신체적으로 폭행하고 괴롭혀 피해자가 크게 다치거나, 폭행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학생들이 고통받고 목숨까지 끊는 학교 폭력의 유형은 달라져가고 있다.


강원도 양구의 기숙사 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 역시 그러했다. ‘신체적 폭력’은 일절 없었다. 체육시간이나 교실 이동 수업이 있으면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자기들끼리 움직이는 등 무리에 끼워주지 않거나, 피해자가 앞을 지나가면 누가 봐도 피해자를 향한 말이지만 마치 그렇지 않은 척, 욕을 하는 식이었다. 


사이버 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를 향해 저격하는 글은 있으나, 주어가 없다. 그러나 누가 봐도 피해자를 향한 말임은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교육현장에서 일어난 ‘감정 폭력’이다.

 

현재 대학생인 B씨도 학창 시절, 똑같이 ‘감정 폭력’을 당했다. B씨가 복도를 다닐 때면, B씨의 가해자는 B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B씨 앞에서 책을 집어던지거나 급식시간이 되면, B씨의 가해자는 B씨를 놔둔 채 나머지 친구들을 급식실로 데리고 가 B씨를 하루 종일 혼자 있게 놔두었다. B씨는 때문에 늘 학교에서 밥을 굶기 시작했으며 결국 공황장애와 우울증에 걸려 학교에서 쓰러졌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기 시작했다. 

 

감정폭력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직장 내에서도 갑질과 은따와 같은 감정 폭력이 만연하게 일어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앞서 본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감정 폭력의 특징상,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법안의 발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고률이 저조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뿐만 아니라, ‘감정 폭력’을 규제하는 기준이 ‘업무상 적정 범위’와 ‘사회 통념’등 이 역시 판단하기 모호한 탓에, 피해자들은 더욱더 고통 받는다.

 

 

 

 

 

 

감정폭력, 은따, 대체 공격, 정신적 폭력’ 그 무시무시한 실체들

 

레이첼 시먼스가 쓴 책 ‘소녀들의 심리학’에서는 감정 폭력에 대해 매우 상세히 다루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어릴 적 경험을 이야기하며, ‘감정 폭력’을 연구하게 된 계기를 다룬다. 성인이 되어 대학원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니 감정 폭력은 정말 많은 이들이 겪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때부터 소녀들이 저지르는 폭력에 대해 연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레이첼은 인터넷을 비롯하여 많은 자료를 찾아봤지만 소년들이 저지르는 따돌림과 폭력. 즉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는 신체적 폭력에 대해서는 자료가 넘쳐났으나 소녀들의 폭력에 대한 논문은 손에 꼽힐 정도였으며 책은 아예 없었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레이첼은 ‘감정 폭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레이철 시먼스는 감정 폭력을 ‘대체 공격’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대체 공격을 가하는 대상들을 ‘여성’에 한정 짓고 있지만 현대 사회에 들어서서 ‘가스라이팅’ ‘정신적 폭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이에 따라 감정 폭력의 위험성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이제 감정 폭력은 남녀누구에게나 일어나고 발생하는 똑같은 ‘폭력’일뿐이다.

 

레이첼은 책에서 감정폭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학교에서는 ‘대체 공격’을 다루는 일관된 전략이 없다. 대체공격 행위를 파악하고 논의할 공통된 언어가 없으므로 학생 폭력 방지 대책은 대체로 모호하며 신체적, 또는 직접적 폭력 행위에 대해 더 많이 다룬다. 대체 공격은 일반적으로 소흘히 다루어져왔다. 실제로 대체공격이 드러나면 대게 사회적 문제라는 좀 더 ‘합당한 관점’에서 해석되었다. 예컨대, 많은 학교에서 ‘이렇게 하면 너랑 안 놀아’ 라는 식의 위협을 관계적 공격이 아니라 또래의 압력으로 여긴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조롱과 심술궂은 농담을 발달상 건강한 경험으로 분류한다.‘

 

어쩌다 마주치면 화난 사실을 부인하거나 심지어 아니라고 잡아뗀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친구에게 불편한 마음으로 ‘너,나한테 화났니?’라고 물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대답은 짤막하고 심지어 유쾌했을 것이다. ‘아니야!’ 물어본 사람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

 

 ‘선생님들은 속닥거리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치고받으며 싸우는게 아니잖아요. 다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거에요. 하지만 주먹싸움을 하면 야단치면서 교장실로 보내시거든요.’

 

비언어적 제스처는 관계적 공격의 특정이다. 비언어적 제스처는 표정, 배제, 말하지 않기 등을 포함한다. 신체언어는 속마음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무엇보다 직설적이고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누가 자기에게 화난 것은 알지만 왜 그러는지, 누구 때문인지 알 수 없으므로 당사자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법과 제도조차 외면하는 감정폭력>

 

 

A씨와 B씨의 가해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강원 양구의 한 기숙사 고등학교에서 은따로 인해 자살한 피해자의 경우, 경찰의 대처부터 매우 소극적이고 융통성 없었다. 피해자는 정신적 폭력과 수없이 자해와, 주변인들에게 죽고 싶다며 도움을 알렸으나 단순히 ‘위클래스 상담내역’이 없다는 이유로, 단순 자살로 결론 지으려고 했으며, 학교 측에서도 가시적인 증거가 없으니 사건을 은폐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교원징계위원회를 열었으나 학교 이미지 실추를 이유로 교장에게는 가장 약한 처벌을, 자해시도를 듣고도 학생을 보호하지 않은 교사 2명은 혐의없음으로 종결지었다. 뿐만 아니라 학교폭력심의위원회의 징계 역시 미미하여 재심을 요청하였으나, 학교 측에서는 ‘증거 없음’으로 2명의 학생은 혐의없음을, 3명의 학생에게는 출석 정지에 사회봉사를 내렸다. 


A씨의 유가족은 비통함에 가슴을 쳤다. A는 괴롭힘에 세상을 떠났지만 감정 폭력이라는 특징으로 ‘증거 없음’과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결과만이 남은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이를 형사법으로 처벌하려고 해도 변호사는 ‘실질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효과가 미미할 것이다’라는 말을 내놓았다.

 

 B씨 또한 아이들에게 은따를 당하였을 때, 학교 측에 강력하게 학교폭력심의위원회를 열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당했다. 그 이유는 B씨가 당한 폭력이 ‘감정 폭력’ ‘정신적 폭력’ 이었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신체적으로 구타하거나 맞은 흔적이 없기에 증거가 없다며 학교폭력심의위원회를 여는 것을 거부하였고 B씨는 이에 또 한 번 충격 받아 일상생활을 유지하지 못했다.


대학생인 B씨는 학창시절의 상처를 털어내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공황장애 약을 복용 중이다. B씨 역시, 이를 ‘법’으로 처벌하려고 여러 변호사들을 찾아다니며 수소문 했으나 ‘불가능하다’라는 답밖에 받지 못했다. 그게 법의 ‘현실’이라는 말을 들었다. 

 

B씨는 기자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차라리 제가 죽도록 맞았으면, 좋았을 건데. 그럼 증거도 남고 걔들은 처벌받고, 저는 억울하지도 않고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PTSD에 시달리지도 않았을 건데 말이에요.”

 

이렇게 감정폭력에 대한 소흘함과 안일함은, 아직 피지도 못한 많은 꽃들을 꺾어버렸다.

 

 


 

 

 

 

<참고 문헌>

1. 본 기사의 사례들은 모두 직접 인터뷰한 실제 사례이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을 사용하였습니다.

2. 로톡뉴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2주 차, 증거수집 방법·사례 살펴보니’, https://lawtalknews.co.kr/1032, 2019년

3. 레이첼 시먼스(2011년), 소녀들의 심리학, 양철북

4. 베르너 바르텐스(2019년),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되는 폭력이야기 감정 폭력, 걷는 나무

5. 김혜원(2013년), 청소년 학교폭력-이해,예방,개입을 위한 지참서,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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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11 07: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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