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서
청소년 4명 중 1명 우울감 호소, 10명 중 1명은 자살 고려
질병관리청의 2020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는 청소년의 ‘우울감 경험률’은 25.2%,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청소년의 ‘자살 생각률’은 10.9%에 달했다. 사실 청소년 정서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비단 최근 1~2년 동안의 문제는 아니다.
일례로 한국 청소년 삶에 대한 만족도가 OECD 최하위라는 사실은 꽤나 공공연하며, 심지어 통계청의 2020년 사망원인통계 결과에 따르면 10대의 사망원인 1위는 고의적 자해, 즉 자살이다. 저출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고심하는 한국 사회의 사각 지대에선, 적지 않은 청소년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 중 일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이는 너무도 아프고 씁쓸한 사실이지만, 반드시 직시해야 할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다.
우울증은 청소년기 가장 흔한 장애로, 일련의 우울 증상, 예컨대 슬프고 불행한 기분, 일상 활동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의 상실, 수면이나 식욕의 변화 등이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Hyland에 따르면, 우울증의 주요 증상으론 ‘인지적 결손(반응과 결과 사이의 새로운 연결을 학습하지 못함)’, ‘동기적 결손(자발적 행동을 솔선하지 못함)’, ‘자긍심의 저하(무가치감이나 자기비난)’, ‘슬픈 감정(우울한 기분)’이 있다.
권석만(2000)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에서 우울증은 불안장애 및 정신분열증과 함께 청소년이 정신과를 찾는 가장 높은 이유라 보고된 바 있으며, 많은 경우 자살 생각을 동반한다. 따라서 본 기사는 제어이론의 관점에서 청소년의 우울과 자살 및 대안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청소년의 심리건강 증진에 대한 논의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제어이론적 관점을 통해 바라본 청소년 우울과 자살
제어이론은 기본단위로 ‘투입기능(input function)’, ‘준거가(reference value or criterion)’, ‘비교기(comparator)’ 및 산출기능(output function)’ 등이 있다. 투입기능은 ‘지각’을 의미하며, 준거가는 인간의 경우 ‘목표’에 해당한다. 비교기는 지각입력과 준거가를 계속적으로 비교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두 값의 차이가 충분할 시 출력기능(행동)이 유발된다.
우울증에 대한 Hyland(1987)의 제어이론적 해석에 따르면, ‘원리와 계획 수준에서 오차민감성이 높고 준거가와 지각적 입력 사이에 존재하는 만성적인 괴리’는 우울증의 충분조건인데, 여기서 오차민감성은 목표 추구 행동의 강도를 설명하는데 사용되는 개념을 의미한다.
반면, 수정된 제어이론은 기존의 제어이론과 다소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목표달성 실패와 함께 높은 오차민감성이 지속되는 ‘만성적 제어실패(control mismatch)’가 우울증을 촉발시킨다고 바라본 기존 제어이론과 달리, 수정 제어이론은 ‘바라는 상태와 지각한 현 상태의 차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차이를 바로잡으려는 속도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서 우울증이 유발된다고 설명한다.
수정 제어이론에 따르면, 감정은 기대하는 속도와 지각된 속도의 비교에서 유래한다. 목표를 향해 너무 늦은 속도로 움직일 시, 부적 감정이 유발되어 개인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도록 촉진하며, 기대 속도보다 너무 빠를 시엔 정적 감정이 발생되어 노력을 줄이게 만든다.
이때, ‘이상적으로 바라는 목표’와 지각의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속도가 기대 이하일 시 우울과 같은 낙망 관련 감정이 발생한다. 반면, ‘회피목표’와 지각의 차이를 키우는 방향으로의 움직임 속도가 기대 이하일 시엔 불안과 같은 초조 관련 감정이 발생하게 된다.
한국 청소년이 마주하는 사회풍토
앞서 제시한 제어이론을 바탕으로 한국 청소년들의 우울 및 자살에 영향을 끼치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요인으로 네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첫번째는,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가 획일적이라는 점이다.
‘젊은이여, 야심을 품어라’, ‘안되면 되게 하라’ 등의 성취 지향적인 가치관은 청소년이 목표 수준 및 그 달성 속도를 조정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사회는 학업뿐만 아니라 외모에 대해서도 단일한 기준을 정해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차별성을 부각하는 경쟁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 요인은 한국 사회의 부패 및 불신이다. 사회 및 경제적으로 높은 계층의 청소년은 부모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이것이 자녀 개인을 넘어 공동체에 영향을 주어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돈과 명예를 차지하기 위해 반복되는 부패와 불신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청소년이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이외에도 한국 청소년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화로 한국인의 조급성, 성인문화의 폭력성과 권위주위적 경향 등이 있다. 과도하게 설정한 목표에 빠른 속도로 다가가려는 조급한 태도는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더 부각시켜 부정적 감정을 초래할 수 있다.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인 문화는 청소년들의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지 못해, 결국 청소년들의 자긍심을 낮출 수 있다.
청소년의 건강한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들
사회 및 문화가 요구하는 가치에 부응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에게 우울은 불가피한 감정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문화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 구조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자세보다 어떻게 청소년들이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 지 함께 고민하는 건강한 자세가 필요하다.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매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인 만큼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정확한 가치판단이 어려운 청소년에게 선택적 정보 수용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므로 잘못된 가치가 내재된 콘텐츠들의 무분별한 양산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콘텐츠 제작자들과 소비층 모두 높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개인적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청소년과의 진솔한 대화이다. 어른들은 청소년의 상황을 ‘어른의’ 관점으로 해석하기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좋다. 혹여나 ‘나 힘들어’라고 말한 자녀에게 ‘내가 더 힘들어’, ‘내가 어렸을 때는 더 힘들었어’라고 대답한다면, 이는 어렵게 고민을 터 놓은 아이의 마음의 문을 닫게 할 지도 모른다. 열린 마음으로 상황을 이해하려는 소통의 자세는 청소년이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고 우울을 나쁜 감정으로 여기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자살을 생각하는 청소년이 다시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전문가와의 상담을 받을 한 번의 용기를 갖고, 본인의 삶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청소년 개인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한국 사회를 살아가며 높은 이상적 기대치에 반복해서 무너지고 방황할 지라도, 현재의 자신이 이상만큼이나 행복하고 가치 있음을 꼭 알았으면 한다.
기자 : 김한서 기자, 우지연 기자
[참고 문헌]
질병관리청. 제16차(2020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 통계
통계청. 2020년 사망원인통계 결과
김교헌.(2004).한국 청소년의 우울과 자살.한국심리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10(),5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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