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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이소연 ]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을 써내라고 하면 쓸 것이 없었다. 매번 대충 생각나는 대로 써서 냈다. 그래서 학교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은 뒤죽박죽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쓰기를 하라고 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대체 뭘 쓰라는 거지. 한두 시간을 흰 원고지만 보고 앉아있다 엄마에게 내밀었다. 동화책은 그렇게 많이 읽으면서 아무 말이나 쓰면 되지 그걸 못한다고 매번 혼나고 숙제는 엄마 몫이었다. 그런 유년기를 보냈다. 창작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스무 살이 되고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었는데 삶도 사람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노래하는 영화, 음악, 사람 사이를 이야기하는 어떤 스토리에도 공감할 수 없었다. 대체 왜 노래는 다 사랑 이야기만 줄창 불러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군가를 가슴 아프게 좋아하거나 그리워해본 적도 없었고, 친구든 누구든 상처받을만큼 깊은 관계를 이어가 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 파고들 수 없어 심리학을 공부했다.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공감할 수 없다면 이론적으로라도 해석해보려고.


그즈음부터 글을 내뱉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3인칭 소설 속 이야기처럼 무감정했다. 친구들이 열을 올리는 주제인 취업도 성공도 조건좋은 사람과의 결혼도 그저 불어가는 바람처럼 멀리 보였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세상에 대해 고독하고 답답했다.


글을 썼던 것이 아니라 내뱉었다. 머릿속에 문장이 떠돌아다니면 뱉을 때까지 멈추질 않고 계속 돌아다녔다. 배설하듯 써내고 나면 좀 시원했다.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가 나의 일기장이었다. 담아둘 수 없어 뱉은 것뿐인데 친구들이 내게 글을 쓴다고 하더라. 그래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은 없었다.


공부를 하고 싶었다. 아무리 좋은 점수를 내고 열심히 일해도 돈이 없으면 계속 공부할 수 없는 곳이 세상이었다. 좌절하고 무너지면서 더 많이 썼다. 좌절이 깊을수록 글을 배설하는 카타르시스는 더 커져갔다.


언젠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책 없이 글을 배우기 위한 온갖 방법들을 찾아 나섰다. 기회가 좋아 보조금까지 지원받으면서 현직기자, 대기자님들에게 체계적으로 기자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작은 잡지사의 일간 잡지 기자로 일하면서 책과 글에 파고들었다. 하루 14시간씩 글만 썼다. 일반적으로 취재시간이 글 쓰는 시간보다 길기 마련인데 90프로 글 쓰는 일만 했다. 기사를 썼지만 부드러운 문체로 예술성있는 연극과 공연들을 묘사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내는 작업들을 많이 했다. 그 시간 동안 참 많이 성장했다.



결혼 후 가족의 건강으로 인해 또다시 나락의 길을 걸었고, 삶의 어려움을 만날수록 글은 내게 더 단단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겪은 일이 많은지라 뱉어낼 것도 많았다. 


활동적으로 뛰어다녀야 하는 에너지와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침잠의 에너지인 양면성을 모두 가지고 있어 개인사업을 하면서 글을 끄적이는 것이 내 삶의 양면적 욕구를 모두 채워주었다. 술자리도, 취미활동들도, 친구를 만나는 것도 일하며 글 쓰는 것만큼 나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무슨 용기로, 무작정 어설프게 책을 쓰고 출판할 방법을 생각했다. 상업적이든 비예술적이든 어떤 종류의 글이라도 상관없었다. 뱉어내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세상은 내게 다정하지 않았지만 내 안의 밝음을 까짓것 끌어모아 포장했다. 책과 일과 상품을 엮어 상업성을 얹어 펀딩을 오픈했다. 마케팅의 힘으로 자금은 충분히 모였고, 그렇게 한 번 독립출판을 해보았다. 어차피 목표가 흐려진 인생,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자는 마음에 정신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시간이 흐르니 참 창피해졌다. 겨우 그 정도로, 그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로 책이란 걸 내다니.



그나마 삶이 조금 안정되면서 수년 후에, 공부를 더 많이 한 뒤에 제대로 된 책을 다시 써보고 싶었다. 애초에 창작은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에세이라도 정보성 글이라도 좋았다. 그러면서 마케팅을 위해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이었으므로. 누가 뭐래든, 반응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목적은 홍보였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 진심을 담고 세상에 대한 나만의 시선을 담았다. 남들처럼 세상을 바라볼 줄 몰라서, 공감할 줄 몰라서 나의 시선이 더 독특했던 것 같다. 시선의 색채는 달랐지만 카페라는 접근성이 높은 매개체를 가운데에 두었더니 브런치에서도, 출판사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무엇을 바라고 했던 일은 아니었다. 하지 않고서는 못 견뎌 그저 혼자 쓰고 또 끄적였을 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방어적으로 어정쩡하게 출판사와 미팅을 했는데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매우 긍정적으로 제안해주셔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내 삶이 매번 그렇지만 일은 항상 예상치못하게 진행된다.


내가 주체가 되어 타인과 방향성을 함께 조정해가며 글 작업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머리털을 쥐어뜯는 중이다. 이렇게 많은 양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도 새삼 엄청난 작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의 주제로라도 그때 그때 떠오르는 소재들을 쓰는 것과는 참 다르다. 기획안은 한 달째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과정 위에 있다. 초안이 마무리되어야 기획안도 마무리가 될 듯 하다.


책 한 권을 읽어야 한 장의 글이 나온다. 참고서적은 산더미같이 쌓여 책상 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우리 가족들이 사들인 이천권에 달하는 책은 갈 곳이 없어 건물 한 층을 도서관으로 만들 작정을 하고 있는데. 이십대때부터 책은 사치품이라고 생각해 늘 빌려 보기만 했는데 어쩌다 저렇게 쌓였을까. 없이 살던 시절의 서러움을 책으로 다 풀었나 싶다.


재미있는 건 남동생도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참 다른 성향으로 다른 삶을 살아왔는데. 어릴 때 책이라곤 만화책만 보던 녀석이었는데. 나와는 다른 색깔의 비상업적, 문학성의 글을 쓴다. 물론 본업은 따로 두고 있다. 글이라는 건 진짜 현실을 살아가는 이에게 더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던져주니까.


이렇게 내 삶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또 하나 시작되었다. 혼자 또 고군분투하며 좌절하고 뱉어내는 작업을 계속해야지. 이러나저러나 삶은 계속된다. 아이를 키워내고 먹이고 재우고 가족을 이끌어가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삶. 사람과 사랑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는 가족이라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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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22 07: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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