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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이소연 ]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멋대로 살면서 참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안개 자욱한 작업은 처음이다. 공부는 하루 두 시간 자고 죽어라 파면 점수가 올라갔고, 장사는 열심히 하면 매출이 올랐다. 가족이 아프면 노력하는 만큼 눈에 띄게 건강을 되찾았고, 심리치료 또한 개입하는 동안만큼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책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의 피드백도, 나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지표도 없다. 눈에 보이게 멋들어진 결과물이 나와준다면야 그 성취감으로 또 씩씩하게 힘내 볼 수 있는데 마냥 마라톤 뛰는 중간에만 서있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쳐도 완벽하지 않다.


글이라는 것이 종이 위에 그려놓은 선에 불과한지라 구겨버리면 몇 개월에 걸쳐 이어둔 선들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그 미약한 개연성이라니. 글이 칼보다 강해지려면 얼마나 깊은 통찰을 담고 또 담아야 하는 것인가.


한 권의 책 속에 빠져들어 그 개연성의 실을 따라가면서 현실감을 잃는 느낌을 좋아했었다. 잠시 두근거렸다 무너졌다 설렜다하는, 책임지지 않아도 될 비현실에서의 감정과 사고, 논리의 비약은 곧 자유였다.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제약이 많은 삶에서 탈출하기에 책 보다 더 확장성이 넓은 수단은 없었다.


글은 영상보다, 소리보다 더 많은 상상력을 발현한다. 그 속에 나를 담기에 무한히 드넓다. 하지만 쓰는 일이 업무가 되면서 그 자유는 공황이 되었다. 법칙도 한계도 없는 공간에서 생각은 마구 날뛴다. 이래서 초안은 쓰레기라고 했나 보다. 300페이지 분량으로 날뛰는 생각들을 뱉어내고 나니 정리할 일은 그의 30배가 되어간다.



즐거워서 토해내듯 써낸 글들과 달리 객관성을 증명하는 자료들이 필요한 작업이어서 타인의 책들을 읽고 또 읽었다. 충분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몇 주 뒤 다시 읽어보면 근거가 미약하다. 잘못 쓴 주어 하나로 논리가, 신뢰도가 우수수 무너진다. 뜬소문은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구나 싶다.


올해 초에 시작해 임신기간 내내 한 권 분량의 문장들을 차곡차곡 채웠다. 이걸 내 손에만 쥐고 아무리 들여다 본들 더 이상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냥 보내기로 했다. 용감하게 출판사에 이메일을 쓰고 보내기를 클릭했다. 콩닥콩닥 복잡한 마음 추스르고 있는데 바로 연락을 주셨다. 9월경에 감수 작업 들어가신다고.


맞을 매 미뤄두는 것이긴 하지만 당분간 마음을 놓아두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만나는 새로운 이슈들, 상황들이 생각에 생각을 쌓아 다시 정리하라고 문을 두드린다. 하나의 주제를 한 번 열면 일주일을 붙잡고 씨름해야 하기에 자꾸만 피하는 중이다. 다른 글들도 써야 하기에. 다른 업무들도 해야 하기에. 문을 두드렸던 흔적들만 살포시 메모해두기로 한다. 우리 조금 쉬었다 만나자.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웹상의 문장들과 달리 인쇄하는 말들은 그 무게가 다르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뱉은 말보다 더 돌이킬 수 없는 흔적들이기에 고심하고 또 고심한다. 혹자는 하나의 책을 완성하기가 어렵기에 일단 무엇이라도 쓰고 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너무 쉽게 뱉어버린 문장들이 아닌지, 나는 오늘도 또 밤잠을 설치며 되뇌고 있을 테다. 가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애를 쓰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건 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다. 세상의 한 조각 귀퉁이에서라도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헛되이 먹고 배설하며 시간만 축내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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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30 16:5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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