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헌
시험기간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동기들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하나 둘 바뀐다. 바로 이런 ‘짤’들로 말이다.
뿐만이 아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대학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도 시험기간만 되면 ‘공부는 내일의 내가 하겠지!’라는 짤들과 농담들이 무수히 올라오며 시험기간의 피로를 유머로 해소한다.
실제로 ‘내일의 내가 하겠지!’라며 할 일을 미루는 행동을 심리학에서는 ‘회피 대처’라고 부른다. 그런데 말이다, 이 ‘회피 대처’가 심각해진다면 마냥 유머로 소비할 수 없는 심각한 마음의 병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A씨는 현재 서울 소재의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한 취업준비생이다. A는 어릴 때부터 영특한 머리로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주변의 관심을 듬뿍 받고 명문대를 프리패스로 입학하고 졸업하였다. A는 졸업과 동시에 전문직 고시에 도전했으나 낙방했다. 실패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A는 처음으로 고시에 낙방하자 큰 좌절을 느꼈다.
A씨의 불합격을 예상하지 못했던 주변 지인들도 안타까운 마음에 A에게 위로의 말들을 건넸다. A는 보란 듯이 다시 일어나겠다는 결심으로 공부를 했으나 또 다시 낙방하였다. A는 고시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늘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으며 명문대까지 졸업했기에 A가 스스로에게 가지고 있는 잣대는 엄청나게 엄격했기 때문이다. A는 이어서 또 다시 고시에 도전했다.
고시생활이 길어질수록 A는 점점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다. 점점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고, 이런 불안한 마음은 ‘잠’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A는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계속 잠이 오기 시작했다. 한참 잠을 자다가 깨어나면 다시 마주하는 현실이 싫어 또 다시 잠을 청하였고, 그렇게 A의 수면 시간은 10시간, 16시간, 심지어 20시간까지 다다르기 시작했다. A에게 바로 ‘회피 행동’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A는 끝없이 몰려오는 졸음이 마냥 자신의 ‘의지’가 부족한 것인 줄 알고 스스로를 자책했고 결국 A는 자해 행동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유머로만 소비되었던 ‘회피 행동’은 사실 알고 보면 굉장히 중증의 병에 다다를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여러분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행동한 적이 있는가?
회피 중심 대처
Amirkhan은 이와 같이 문제 자체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관련된 정서를 감소시키기 위한 대처 전략을 ‘회피 중심 대처’라고 이름 붙였다. 회피 중심 대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에 집중하는 대처(문제 해결 중심 대처)나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대처(사회적 지지 추구)와는 달리, 스트레스원을 변화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에서 소극적 대처방식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러한 회피 중심 대처 전략은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스트레스 관련 정서를 일시적으로 감소시켜주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시험기간에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바로 그 ‘짤’들과 같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해야 할 일을 불필요하게 미루게 되는 ‘지연행동’이 바로 그 결과이다.
특히 학생의 경우에는 과제를 미루다가 마감 직전에 겨우 제출하는 것처럼 학업 영역에서 지연행동을 보이고는 한다. 이러한 학업지연행동은 좌절감, 우울, 불안, 낮은 자존감 등 여러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기 때문에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회피 중심 대처 전략을 사용하다 보면 결국 학업지연행동의 ‘늪’에 빠지고 만다. 특히 A씨의 사례처럼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자신을 엄격하게 평가하는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 회피 중심 대처 전략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더욱 심각해진다.
스트레스원을 회피하면 할수록 자신이 끝마쳐야 일은 더욱 거대해지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부담감은 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일을 해내고 싶은 완벽주의자들에게, ‘실패’는 단순히 유능감의 훼손을 넘어서 공포 그 자체로 다가온다. 결국 ‘잘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낳고, 그 두려움이 회피 중심 대처로 이어지며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일을 미루고 꾸물거리는 모습을 단순히 개인의 ‘의지’의 문제로 치부해버리고는 한다. 그러나 그 꾸물거림의 이면에는 누구보다 잘 하고 싶은 마음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또 그 두려움에 압도되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의지’와 ‘성실’을 들먹이는 것은 역효과를 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요한 일을 미루는 사람을 비판하고 나무라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감정을 살피고 공감과 응원의 말을 건네야 할 것이다. 이런 사회적 지지를 통해 스트레스에 압도되어 있던 사람은 보다 건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보다는,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종종 서로 다른 잣대를 가지고 타인과 자신을 평가하고는 한다. 다른 사람의 실수는 ‘그럴 수 있다’며 넘어가지만, 자기 자신의 실수는 자책하고 힐난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나도, 모두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니 타인에게 관대한 만큼, 스스로에게도 관대해져보자.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으며, 지금 그 자체만으로도 괜찮으니 말이다.
기자 : 이나헌, 이정연, 최유진, 황가연 기자
<참고 문헌>
1. 기사에 쓰인 사례는 직접 인터뷰한 실제 사례입니다.
2. 강하연, & 안정광. (2021). 대학생의 완벽주의와 학업지연행동의 관계: 스트레스 대처방식의 조절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임상심리 연구와 실제, 7(1), 21-38.
3. 신혜진, & 김창대. (2002). 스트레스 대처 전략 검사 (Coping Strategy Indicator) 의 타당화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14(4), 919-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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