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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혜령 ]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미안하다는 말에 박한 사람이 있다. 내가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어도, 제삼자의 상황에서 어떤 사건을 볼 때, 잘못한 사람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지나가는 것을 목격하면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런 사람은 다른 상황에서도 '미안하다'는 표현을 좀처럼 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놓치지 않고 꼭 전하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화날뻔한 마음을 녹여버리는 사람도 있다. 단지 '미안해요'라는 네 글자가 아니라, 표정이나 공손한 태도에서 그 자신의 실수로 말미암아 상대를 적대적으로 만드는 일이 없게 한다. 설령 큰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사람은 필히 '고마워요'라는 말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분명하다.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이들의 속사정은 저마다 다를 것이나, 대개는 습관이거나, 자신의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혹은 가정교육의 문제라고도 추측해본다!)  상대보다 더 낮은 위치가 되기 싫은 성격인 경우. 또 좀처럼 자기 실수를 인정하기 싫은 사람일 것이다. 


 굳이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남 탓, 다른 조건 탓으로 얼마든지 둘러댈 수 있으니까. 그런 변명들을 늘어놓고 (혹은 아예 침묵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것이다. '나는 잘못 같은 거 하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위장하는 것 아닐까. 그런 행동이 자기 이미지를 지켜낸다고 믿는 것 아닐까. 안타깝게도 정작 주위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겠지만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적절한 때가 정답처럼 정해져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전적으로 그 사람 잘못이 아닐 때에도 '미안해요~'라는 말을 함으로써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구태여 문제를 키우지 않는 경우를 보았다. (문제 그 자체 이상으로는 일이 커지지 않는 것) 그것으로 인해 상대 또한 흥분을 누그러뜨리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도 하는 것을 보며 '미안해요'라는 말의 힘을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꺼내기 참 힘든 말이지만, 그  말의 역할은 상당히 범위가 넓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일상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는 사람 탓에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버스에서 기사 아저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앞에서 있던 여자의 하이힐이 내 발등을 찧었다. 나는 악 소리도 못할 만큼 너무 아프고 놀라서 앞사람을 쳐다보며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여자는 내 얼굴을 흘낏 보고 내 발을 흘낏 보더니 그냥 고개를 돌렸다. 자신도 급정거한 버스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듯 짜증스러운 얼굴 이었다. 옆에 남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도 나를 흘낏 보고는 여자 친구를 자신 쪽으로 당기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내가 그 여자의 힐에 발등이 찍힌 건 버스의 급정거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그녀의 태도는 분명 나를 불쾌하게 했다.


그녀가 "앗 미안해요."라고 한마디만 했다면 나는 분명 "아 괜찮아요"라고 했을 터였다. 그리고 어떤 불필요한 감정도 남지 않고, 내 발등의 상처에만 신경 썼을 것이다. 그게 뭐 별일이라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는 바람에 여러 사람을 한 번에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자리가 '직장상사'가 아닌가 싶다. (모든 직장상사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자신의 어떤 잘못도 아랫사람이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내 친구는 밤을 새 가며 공들여한 일이 팀장의 실수로 다시 전면적으로 수정을 해야 했을 때, 모든 일이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사실보다 팀장의 말하는 방식 때문에 더 때려치우고 싶었다고 한다. 로봇 못지않은 무표정한 얼굴로 ' 이거 이렇게 다시 전부 수정하세요.'라고 말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순간, 저 인간은 당신의 실수로 직원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을 정도란다.


그럴 때 "미안해요. 이걸 다시 수정해야 되게 생겼네.." 혹은 "미안해요. 고생 많이 했는데 다시 힘을 내서 해치웁시다." 같은 말을 딱 한마디만 해주었더라면 사원들이 다시 작업하는 일이 그렇게 분했을까.


 버스에서 하이힐에 내 발등을 찧은 사람처럼 의도치 않게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로서 자신의 잘못으로 모두 돌리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또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내 잘못도 아닌데 내 잘못이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고, 굳이 애써 해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당연히) 내가 잘못을 한 것으로 넘겨짚는 경우도 더러 경험했다. 그럴 땐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참으로 못마땅하다. 내키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필요 이상의 사과로, 없는 잘못까지 자신의 잘못으로 만들어야 하는 건 분명히 과잉 태도다.


다만, '미안해요'라는 말 한마디를 아끼는 바람에 자존심은 지켰을지언정 서로 불필요하게 감정이 소비되고, 분위기를 흐리고, 관계가 손상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분명한 사실은,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은 듣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더 높아지는 말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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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1-11 08: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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