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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아침에 둘째를 학교 어린이집에 내려놓는데, 둘째가 내 손을 잡아 끈다. 밖에 셋째가 앉아있는 유모차를 세워두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첫째를 불안해하며, 어쩔 수 없이 둘째에게 이끌려 어린이집 안쪽까지 들어간다.



시간이 촉박하다. 나는 언제나 문 앞에서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는 다른 친구들을 가리키며, 둘째에게 ‘다음부터는’이라는 다짐받으려 하곤 한다. 하지만 둘째는 언제나 단호했다. 게다가 아침부터 ‘어린이집 안 갈 것’이라는 포고를 했었기 때문에 둘째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 안쪽까지 들어간다.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리 없는) 첫째와 셋째를 생각하며, 늦지 않게 다음 목적지로 데려다 줄 생각으로 긴장감이 한껏 꼿꼿해져 있는데, 둘째가 옆에서 가방을 걸어두고 있던 여자 아이를 가리키며 소개한다.


“This is my mummy. Mum, this is T++++”

엄마 얘는 내 친구 T 에요.



나는 웃어주며 그 자리를 빨리 뜨려고 하는데 둘째는 그대로 놓아주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요 며칠 동안 둘째가 이야기하던 그 이름의 여자 아이 같다. 둘째는 T와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어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영국 아이들보다는 말이 빠르고 유창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둘째는 말 고르기를 하며, T에게 말한다.



“T, are you, are you my best friend?”

T 야, 너 나랑 젤 친한 친구지?



아마도 요즘 T와 얘기를 하면서 친해졌다고 느꼈는지, 그리고 친하다는 증거를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웃으며 T의 대답을 기다린다. 그런데 T가 쌀쌀맞게 말한다.


“No I don't like your big head. I don't like big head friend. I don't have big head friend."

아니, 난 너 머리가 큰 거 싫은데. 난 머리 큰 친구 안 좋아하는데, 난 머리 큰 애랑 친구 안 하는데.



그 순간, 기분이 찬물이 확 끼얹어진 듯하다. 아이니까 그냥 할 수 있는 장난이지만, 친구 사귀는 것에 대한 열망이 큰 둘째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혹한 이야기다.


다행히 주변이 다른 아이들로 시끄럽고 내가 T 가까이에 있었고 둘째는 또 다른 말을 하고 있던 중이라 T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T는 나를 보는 것도 둘째를 보는 것도 아닌, 다른 곳을 보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고 놀리는 말을 계속하려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모든 말을 둘째가 듣기 전에 T의 말을 끊었다.


“Oh that's rude." 그건 좀 너무한 거 같은데?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말하고 싶었지만 표정관리를 하느라 얼굴이 욹으락 풀그락 했을지도 모른다. T는 아마도 내가 영어를 못하는 줄 알았나 보다.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태세를 바꾸고 바로 덧붙였다.


“Just joking." 그냥 농담이에요.



나는 “Okay(그래)"라고 T 가 아닌 둘째에게 말하며 그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둘째는 이제 저쪽에서 등장한 다른 여자 친구를 나에게 소개하기로 작정한 듯했다.


“Mummy, this is J_____. She is my best friend too”

엄마, 얘는 J인데요 나랑 젤 친해요.



그리고는 비슷한 질문을 J에게 하기 시작했다.


“Did you, did you... like my spider hat?"

너 있지, 음, 내 거미 모자 좋아했었지?



J는 또래보다 키가 크고 큰 눈망울을 가진 여자 아이였다. 그리고 거미 모자는 둘째가 다른 친구에게 선물 받고는 너무 기쁜 나머지 모자가 필요 없는 날에도 매일 같이 쓰고 다니는 특별한 모자였다. 둘째는 그러면서 모르는 사람에게도 ‘C가 나한테 준거라니까요. 나한테’라고 말하고 다니는 그 모자.


아마도 둘째는 어린이집에서도 친구들에게 이 말을 열심히 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J는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느리고 중간중간 단어를 고르느라 뜸을 들이는 둘째의 질문에, 가만히 듣고 있다가, 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는 퀴즈 정답을 맞힌 듯 살짝 기뻐하며 그제야 나를 보내주었다.

첫째와 셋째를 데리고, 그다음 행선지인 첫째의 학교를 향해 가면서, 실제로도 두 번,

그리고 마음으로는 스무 번도 더 둘째를 돌아보았다.




마음이 아파왔다. 둘째가 언어 감각이 있어 영어든, 한국어든 잘해서 다행이라고 여겼던 내 마음이, 또 둘째가 첫째에 비해 기관 생활을 잘하는 성격이라 안심이라 여겼던 내 마음이, 내려앉고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둘째가 친구들에게 건네는 모든 질문이 “Do you like Me?(너 나 좋아하지?) "라는 ‘확인’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서, 내가 없는 곳에서 둘째가 내내 그 질문을 사람들에게 하고 있을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둘째는 언제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한다. 그리고 자주 갈구하는 그만큼 거절당하는 일도 잦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안아주길 바라고 자신을 가장 좋아하는지 자주 확인한다. 물론 이 엄마는, 아이가 셋이고, 육아 외에도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이 엄마는, 둘째의 ‘항상’을 지켜줄 수도 없고 뿐만 아니라, 이 끈질긴 ‘확인’의 구멍을 ‘확신’으로 덮어주지도 못한다. 나는 자주 둘째의 기대에 찬 질문과 원망이 서린 요구를 거절하고 무시하곤 했다. 엄마인 나조차 자주 거절하고 실망시켜왔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어디에서 그 마음의 구멍을 메우나 싶어서 한없이 미안해지는 날이었다.


또 둘째는 한번 떼를 쓰면 달래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나는 그것이 어렵다고만 느꼈지 그 어려움에 압도되어 둘째가 가진 어려움을 먼저 보듬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는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그 마음을 한 번만 더, 조금만 더 안아주자 싶었다. 둘째를 키우며 자주 하는 결심이지만 매번 무너지는 결심이기도 했다.




며칠 뒤 둘째의 부모 면담이 있었다. 첫째를 학교에 보내는 것만으로도 힘겨워서, 또 셋째가 감기에 걸려서, 며칠 째 둘째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신청 시기도 놓쳐서 선생님이 따로 시간을 잡아주셨다.


둘째를 내려놓고 첫째 손을 잡고 셋째의 유모차를 끌고 바쁘게 첫째의 학교로 향하는데 선생님은 아침에 다섯 시 반에 오라고 외치셨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아침 내내 ‘5시 반’, ‘5시 반’을 중얼거리며 나왔으면서 또 그날 하루 치의 육아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그 시간마저 놓치고 말았다.

첫째의 하굣길에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진땀 빼다가, 결국 둘째가 다니는 학교 어린이집 근처에 와서야 어린이집 상담 약속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는 이 생활.



당연히 면담을 못해주실 것이라 생각해서 걱정하실까 봐 참석 못한다는 메모라도 남기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학교에 찾아갔다. 아마도 선생님은 내내 10분 단위의 면담을 하다 잠시 차 한잔 마시며 쉬는 시간이셨던 것 같은데, 나와 세 아이를 환히 반겨주셨다. 그리고 아이 셋이 정신없이 이것저것 만지고 물어보는 상황 속에서도 필요한 말씀을 하나하나 짚어주셨다. 둘째에 대한 애정 깊은 관찰과 학교 생활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도 해주셨다. 선생님이 둘째를 많이 예뻐해 주시는 것이 느껴졌다.


나에게는 딱 한 가지 질문만이 있었다. 우리 둘째가, 셋 중 둘째라는 샌드위치 자리에서 타인의 사랑과 인정 관심에 목마른 모습을 가진 둘째가, 다른 친구들이나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그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가 나는 궁금했다.


그런 질문을 했더니 선생님이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시며 대답이 아닌 위로를 해주셨다. 아이가 갈구하는 온 마음 사랑을 다 해줄 수 없다고 해서 너무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항상 다른 사람에게 해주는 말이었지만 나에게도 절실한 말이었고,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기에 더 필요한 말이었다. 그 얘기를 하시며 “저도 아이가 셋이에요, 괜찮아요”라고 하시는데 영국까지 와서 어린이집 상담하며 울고 싶지는 않았는데 결국 또 울고 말았다.




요즘 내가 너무 지쳐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온 하나의 사랑을 주는 것은 물론, 그 삼분의 일 사랑조차 제대로 못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사랑하고 사랑하는 일이 너무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아이는 항상 화나 있고 원망하는 듯했고 나는 그 화와 원망을 다 받아주기가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모두 어려웠다. 그럴수록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듯한 모습에 미안해했다가 화냈다가, 마음이 오락가락해서 흔들리고 있기도 했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건 내가 사랑과 인정을 요구하는 둘째의 행동을 '문제'라는 프레임에서 바라보고 있었기에 더 무겁게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을 주기가 어렵기에 다른 사람이 이 아이에게 사랑을 주기도 어려울까 봐 노심초사했고, 아이가 사랑을 거절당할까 봐, 거절의 상처가 아플까 봐, 아이가 상처 받기도 전에 내가 더 앞서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아이의 경험이 아닌 내 경험이었다. 모든 문제는 해결이 아닌 연결을 필요로 했다.


‘문제’와 ‘상처’의 렌즈를 벗고, 또 나의 경험이 아닌 아이의 경험을 살펴야, 아이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무겁고 버겁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아이는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그만큼을 더 받게 될 것이었다. 거절과 상처의 가능성이 아닌, 충족과 치유의 가능성을 볼 필요가 있었다.


원하는 그 모든 것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적어도 더 갈구하는 그만큼, 더 받기도 할 것이었다. 나는 사실을 둘째를 대하는 선생님의 미소와 포근한 눈빛에서 보게 되었다. 선생님은 둘째를 안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We all have soft spots for SY. He is so lovely and he always comes to me to talk more,

우린 모두 이 아이를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요. 너무 사랑스럽고 항상 다가와서 더 얘기하고 싶어 하니까요.”


그때 알았다. 아이가 구하는 사랑을 엄마인 내가 다 채울 수 없어서 벅차다고 느꼈을 뿐, 또 우리가 사랑을 구할 때, 구하는 사랑이 거절당할 가능성에 마음이 아팠을 뿐, 사랑을 구하며 구하기에 더 받을 수 있을 수도 있음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어려운 마음을 지나가고 있었고, 그리고 결국 그 모든 마음은 흐를 것이었다.





며칠이 지난 주말 아침, 아빠와 함께 외출하고 오겠다고 해서 잘 다녀오라고 안아주는데 둘째가 다가와 속삭인다.


“Mum I love you.”

“I love you too”

“No, I love you more!”

“You know, you are my favorite person and you are my super best friend.”


둘째는 기분 좋아한다. 그러면서 둘째는 자신을 좋아해 주는 모든 가족과 친척 동네 이웃집 아줌마, 학교 친구들의 이름을 나열한다.


I know I have you and many many best friends......................



콧노래처럼 흥얼거리는 둘째의 베스트 프렌드 목록을 들으며 그 목록이 양도 질도 튼실하고 빵빵하다고 느끼기를 기도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둘째가 앞으로는 Do you like me? 나 좋아해요?라는 질문이 아닌 Do you like it? 이거 좋아하세요?이라는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고. “Do you~”로 시작되는 타인을 향한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질문은 조금 덜 던지고, 그 자리에 ‘나는 그걸 좋아해요. 나는 너를 정말 좋아해’I really like you. I really like it.이라는 자기규정, 자기표현의 문장들을 더 많이 채워갔으면 좋겠다고.



때로는 모두가 날 사랑해주어도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의 거절이, 그 쌀쌀맞음이 우리 마음을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 한 복판에 밀어 넣기도 하지만, 그래서 ‘앗 추워’ 했다가도, 결국에는 우리를 향한 난로와 같은 사람들의 사랑이 더 맹렬함을, 아이도 나도, 내내 기억하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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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1-27 09: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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