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안남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2층 창문 너머 구름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어두웠던 시야가 밝아지긴 했지만 하늘에 여전히 하얀 새벽달이 남아있었는데, 그 반달이 참 예뻤다. 옅은 먹구름이 지나가며 반달은 얼굴을 내밀었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구름 아저씨가~!! 달님을 가리면 어떡해요?"
둘째가 구름에게 핀잔을 주었다.
<달님 안녕>에서 나온 대사이기도 했다.
둘째 따라쟁이인 셋째가 잘 안 되는 발음으로 그 이야기의 뒷부분만 따라 했다.
‘달닝 어떡해요?’
나도 '정말 우리 달님 어떡하나'하며 한참 동안 그렇게 예쁜 달님과 눈치 없는 먹구름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나는 이미 꿈을 이루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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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몇 년 전 어느 날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부자인 대학 친구의 월세집에 놀러 갔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는 한 오피스텔에서 방을 구해 혼자 살고 있었는데 월세가 얼마인 지만 듣고도 나는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었다. 스무 살부터 혼자 나와 좋은 집을 구해 살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것만으로도 친구가 부럽고 신기했었다. 그때 나는 부모님이 원하시는 국공립대나 교대가 아닌 사립대를 다니겠다고 결심을 한 이유로, 부모님께 비싼 등록금을 지운 것이 마음에 걸려서 과외를 다섯 개씩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저 좋은 집에 살고 있거나 그러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보다는, 크게 트인 창문과 큰 창문 너머로 시야가 가려지지 않는 전망을 가진 것이 가장 부러웠다.
거기에 누워서 하늘을 보다가 책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독립해서 집을 얻게 되면 하늘이 잘 보이는 창을 가진 집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생각이, 오늘 아이들과 창문 너머로 구름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며 다시 살아났다.
나는 이미 꿈을 이뤘을 뿐 아니라 이룬 지 오래였다니!
이 생각을 하며 다른 이룬 꿈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 셋 역시 그저 나의 막연한 꿈일 뿐이었던 것.
그러고 보니 이렇게 글 쓰는 삶 역시 그저 나의 막연한 꿈일 뿐이었던 것.
아이들이 자고 싶지 않다고 투정을 부릴 때
깨고 싶지 않다고 투정 부릴 때
아이들을 재촉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 힘에 부칠 때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함께 창문 너머로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의 꿈을 꾸는 것만큼이나 이미 이룬 꿈을 세어보는 것,
앞으로 조금 더 자주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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