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사랑하는데 못 믿겠어, 괴로워" - 연애 중에 상대방을 의심하는 이유 탐구
  • 기사등록 2022-02-11 09:15:41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추예솔 ]


Mathias P.R. Reding 님의 사진, 출처: Pexels

흔히 ‘의심과 집착’은 ‘사랑’과 양립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랑은 “절대적 신뢰를 기반으로, 상대방이 어떤 모습이든 온전히 받아들이고 품어주는 것”이라는 게 그 주장이다. 그런데도 불쑥 의심이 피어오를 때가 있다. 사회적 통념에 의한다면 이는 곧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어쩌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벼운 정도의 의심은 ‘관심의 척도’로 보는 편이다. 이유는 이러하다. 필자는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대상에게는 의심이 들지 않는다. 은연중에 들었을 수도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으니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애인의 경우는 다르다. 요컨대 생활 깊숙이 밀착되어 감정을 고밀도로 교환하고 있는 대상에게는 많은 관심을 쏟아붓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고, 개중에는 부정적인 경향 역시 섞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심의 정도가 가볍다면, 무조건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정도가 심할 경우에는 ‘편집증적 장애’ (타인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많아지는 정신학적 증상)를 의심해봐야 할 여지가 있다. 나아가 ‘집착’과 같이 가시적인 행동으로 발현되면 당연하게도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목해주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아니 어쩌면 당신은, 사랑하는 상대방을 두고 부정적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모종의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의심을 감추려고 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새어나가 상대방에게 닿게 된다면 죄책감은 배가될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데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불쑥 파고들어 양쪽 모두를 괴롭게만 할까.

 



‘집착형 불안정 애착’에 해당할 경우


 

대개 사랑에 빠지면 미래를 그린다지만 필자는 늘 가장 끝의 순간을 그린다. 상대방의 연락이 미묘하게 느려지면 다른 이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조금이라도 평소와 다르면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닌가 하는 근심에 시달린다. 그렇게 매번 최악의 순간을 염두에 두면서도 끝내 울음이 터지는 건, '아직은 내 사랑이 건재하구나' 하는 안도의 순간에서다.


요컨대 상대방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면서도 버림받는 데 대한 불안감이 과도하게 크다 보니 일종의 방어기제로 상대방을 멀리해왔던 것이다. 늘 불안정한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러나 이는 성인애착유형 중 ‘집착형 불안정 애착’에 해당하는 특성이라는 사실을 접하고는 안도했다. 어쩌면 틀린 것이 아니라 방식의 문제일 수도 있는 셈이었다. 

 

‘성인애착유형’이란 유아 초기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이후 성격발달과 대인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여기서 ‘집착형 불안정 애착’은 지나치게 감정을 표현하고 일관되게 응해주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있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언제 얻을지 모르는 애정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을 것이다. 따라서 집착형 불안정 애착의 사람은 늘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며,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늘 은연중에 부정적 상황을 가정하며 자신을 의심의 굴레로 밀어 넣게 되는 것이다. 


 


‘아포페니아 증후군’의 발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알 수 없는 상황에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이때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러한 현상은 ‘아포페니아 증후군’과도 연관 지을 수 있다. ‘아포페니아 증후군’이란 ‘주변 현상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인간 사고의 특징’을 이르는 심리학적 용어다.


아포페니아 증후군의 정의에 따르면 사람은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상황들을 임의로 묶어 그 안에서 규칙성을 발견해냄으로써 연결 짓는다고 한다. 의심의 메커니즘은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미지의 순간에 직면해 과도한 불안감을 느낄 때, 멋대로 연결고리를 찾아 상황들을 묶으면서 결론을 내리는 식으로 말이다. 

 

이를 애인 간의 관계에서 의심하는 상황으로 가져와 보자면 이렇다. 상대방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상대방은 지금 공부를 하는 중일 수도, 열심히 일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연락이 부재했던 시간을 계산해 모든 부정적 경우의 수를 떠올리다가, 그가 과거에 누군가와 연락을 하던 장면을 상기해낸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은 다른 사람과 연락을 하는 중일 것이라고 억측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애초에 스스로 머릿속에서 창작해낸 것이며 비약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논리적이지도, 타당하지도 않다. 그러나 극도의 불안감 속에 놓여 있을 때 거기서 탈피하려는 욕구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이기에 스스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하여 의심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투사 현상’이 일어났을 가능성


 

혹자는 바람기가 있는 사람의 경우 다른 잠재적 이성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애인도 본인과 같으리라 추측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 경우의 수를 떠올리지 ‘못 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 한 ‘투사’의 개념에 해당한다.


‘투사’는 방어기제 중 하나로, “개인의 성향인 태도나 특성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심리”를 나타내는 용어다. 이는 비단 주체가 바람기가 있을 때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이전에 바람기가 많거나 바람을 피운 상대를 만났을 때 역시 트라우마에 의해 반사 신경처럼 투사 반응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본인의 데이터상 ‘상대방이 바람을 피울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기에, 현재의 애인에게 전 애인을 투영시키면서 의심하고 예의주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투사는 무의식중에 발현되는 방어기제이므로, 본인의 의지나 의도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 가지, 투사가 일어나게 된 사고의 방향성을 숙고해볼 필요는 있다. 투사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즉, 타인을 나와는 다른 독립된 개인으로 본 것이 아니라 ‘한 가지 특성만을 가진 평면적이고 단순한 인격체로 바라본 데서 기인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자기중심성은 청소년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 중 하나다. 그 시기에 제대로 된 발달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면 사고가 고착되어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만약 스스로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면 여러 사람을 경험하면서, 사람은 늘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겠다. 

 



마치며 


 

이쯤에서 결혼한 지 장장 20년이 넘은 A의 발언을 언급하고 싶다. A에게 배우자를 어떻게 믿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믿는 게 아니라 믿는 척을 하는 거야.”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불쑥 의심이 튀어나올 때,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 믿(는 ‘척’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에 그렇게 세뇌한다는 거였다.


의외였다. 현재 순탄한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고 안정기에 든 지 오래였으므로, 단단한 신뢰로 이루어져 있으리라 예상한 바와는 다소 달랐기 때문이다. 이는 교제 기간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의심’은 불현듯 자신도 모르는 새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의심은 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단지 대상과 상황만을 옮겨가며 말이다. 그러므로 ‘그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보다 오히려 인정해보는 건 어떨까.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의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김명숙, “성인애착유형에 따른 이성교제 커플들의 관계만족”,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22(2), 2008.05, 59-74.

마음건강 길, "부모와 관계, 자식에게 대물림" 오은영 박사의 '성인애착' 4유형, 2021.11.17. http://naver.me/x5cR8hlj

김성민, “신경증과 정신병, 그 의미와 치료: C. G. Jung의 이론을 중심으로,” 「신학

과 실천」 제44호(2015), 149-174.

이동귀, 『너 이런 심리법칙 알아?』, 21세기북스, 2016.11.30 

이은지, 「투사를 통한 자기실현의 표현」, 2017.02

고영복, 『사회학사전』, 사회문화연구소, 2000.10.30

스티븐 코슬린 외 6명, 『심리학개론』, PEARSON, 2012.12.26





이전기사

좋아하고 싶은데 왜 마음대로 안 될까?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2883
  • 기사등록 2022-02-11 09:15:41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