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수빈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곽수빈 ]
최근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국내에서 혐오 범죄가 크게 증가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주로 언어폭력 방식의 혐오 범죄가 늘어났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타인과의 물리적 접촉이 줄어든 영향이 그 이유다.
팬데믹 시기, 혐오의 흐름
심리학적으로 보았을 때 비난은 고통과 불안을 잊기 위한 방어기제와 비슷하다. 더 힘들면 더 혐오한다. 때문에 팬데믹 시기에 혐오 문화는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힘든 시기일수록 다수끼리 뭉치는 게 편하고 유리하다. 때문에 ‘누군가’를 타자화해 내 편을 강화한다. 이 ‘누군가’는 특정한 사회적 표준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차별의 대상이 된다. 이들에게 편견을 갖고, 사회적 낙인을 찍으며 소외화를 시켜서 사회적 지위의 손상을 일으킨다. 나아가 이를 정의 구현처럼 정당화시킨다. 이게 바로 혐오의 흐름이다.
이미 우리의 사회 속 스며든 혐오문화
오늘날의 혐오는 사회 곳곳에 다양하게 퍼져있으며, 당당하다.
“너 진짜 극혐이야”
‘극혐’은 극도로 혐오한다는 뜻으로 오늘날 MZ 세대들 사이의 대화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언어 표현이다. 강한 혐오의 표현이 어느 순간부터 쉽게 사용하는 일상 속 단어로 자리 잡았다.
‘잼민이’라는 말로 저연령층을 낮추고, ‘라떼충’, ‘꼰대’라는 말로 중년층, 노년층을 무시한다. 남녀의 자극적인 소재를 이슈화하여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가 하면 최근 베이징 올림픽의 편파 판정으로 중혐 문화 또한 강해지는 추세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사회 속에 ‘혐오’가 존재한다.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하는 이유
사람들은 대부분 혐오라는 감정을 개인의 사적인 것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마치 커피를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무엇인가에 대한 호불호 표현할 자유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사람이라면 이질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하지만 혐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 혐오가 단순히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집단적 차원이 되면 쉽게 통제하기 어려운 집단적인 광기와 폭력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적 혐오는 내 편을 강화함으로써 달콤한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또한 나의 편견과 차별을 끊임없이 정당화시켜준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는 견고해지는 것이다.
둘째 혐오는 편견과 차별을 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의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미쳐서 분별력을 흐리게 만든다. 사람의 분별력을 흐린다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흐름이다. 사람의 분별력이 흐려지면 범죄를 저질러도, 사이비 종교를 믿게 되어도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즉 자신의 삶이 분명히 잘 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만 이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방식이든지 어떤 대상이든지 혐오는 답이 아니다
본인의 권리 그리고 타인의 권리
누구도 타인을 함부로 정죄하고 혐오할 권리는 없다. 정죄하고 판단할 수 있는 건 본인 자신뿐이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한없이 각박해지는 잣대는 결국 자신과 타인을 모두 잃는 양날의 검일뿐이다.
혐오는 쉽고, 안락하다. 하지만 이는 나의 가치관에 깊게 새겨질 것이며, 결국 시야를 어둡게 만들 것이다. 혐오가 만연해진 사회 속 경각심을 가지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감정을 소유하길 바란다.
참고문헌
카롤린 엠케. (2017). 혐오사회. 다산초당
국민일보. (2022).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30525&code=11131100&cp=nv
KBS NEWS. (2022).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88388&ref=A
경북일보 [굿데이 굿뉴스]. (2021). http://www.kyongbu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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