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경미 ]
엄마표 육아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엄마랑 가정에서 놀면서 마스터한 엄마표 영어, 책 육아, 엄마와 함께 하는 과학놀이 등등 떠오르는 그림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세 아이를 좀 키우고 숨을 돌릴 때쯤 육아 실용서들을 읽었다. 푸름이 아빠의 책을 읽고 이 책을 이제야 만나다니 하며 아까워했다. 그러나 나는 그 책을 읽고도 책을 좋아해 더 읽고 싶어 하는 큰 아이에게 “동생들 졸려한다. 키 크는 시간이야. 얼른 불 꺼야지. 얼른 자자.”라고 말했다. 책에서 눈을 못 떼는 큰아이에게 “엄마가 몇 번 얘기해. 책 덮어.”하며 혼을 내는 엄마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은맘의 책을 읽고는 dvd를 들려주는 오디오를 샀다. 책에 제시된 모델명 그대로. 큰 딸도 이제 낼모레면 초등학생인데 이제라도 열심히 흘려듣기라도 해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세 살 막내가 무언가 틀어주려고 하면 막무가내로 덤비고 눌러 이마저도 내겐 벅찼다. 어느 날부터인가 플레어 기는 옷장 맨 윗 칸으로 올라갔다. 나중에 딸들이 스스로 작동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아이들끼리 동요 시디를 틀고 춤추는 용으로 전락했다. 잠수네가 말하는 그 흔한 흘려듣기마저도 해줄 수 없었던 우리 집은 영어의 청적 지역이었다. 나는 세 딸을 먹이고 치우는데도 벅찬 그런 엄마였다.
나는 유아교육 전공 후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후엔 가베 방문교사로 프리랜서 생활을 했다. 자유로운 시간도 좋았고 새로운 수업을 고안하고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도 내겐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선물하는 가베 수업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있었다. 가베는 놀이를 통해 언어뿐 아니라 수 개념과 공간지각 능력을 키워주는 좋은 교구였으며 교사의 역량에 따라 독서, 과학, 미술 등 다양한 수업을 접해 줄 수 있는 도구가 되어 주었다. 나중에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가베만큼은 꼭 해주어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가씨 때 유치 과정을 가르쳤던 아이 엄마가 늦둥이를 낳고 기르며 초등 가베를 부탁하셨다. 나도 육아를 하고 있어 수업이 어려웠지만 초등학교 1학년이 된 큰 아이랑 친구여서 그룹으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그 덕분에 큰 아이만 그 일련의 모든 과정을 접할 수 있었다. 점점 살림과 독박 육아에 찌든 엄마의 에너지 고갈로 밑에 동생들에게는 가베는 블록 비슷한 원목 장난감쯤으로 알고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놀잇감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내 친구가 가베가 아이들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자기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가베 티칭 과정을 이수하고 수업 계획을 세워서 아이에게 가베 수업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언제라도 하기만 하면 되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 베테랑 교사였지만 해주지 않는 나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이렇게 엄마표를 거론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엄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엄마표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 표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 싶어서이다. 가령 우리는 백종원표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이 있다. 단번에 “대충 넣어유. 간단하쥬 아! 그리고 마지막에 설탕을 넣어유. 팍팍”을 떠올릴 것이다. 이처럼 각자 엄마가 해주신 음식 하면 엄마만의 고유한 손맛을 떠올리게 하는 메뉴들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엄마표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메뉴들이 있다. 우리 딸들도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엄마표 간장 닭발을 무척 좋아한다. 이모 집에 갔다가 먹게 된 매운 닭발에 마음을 빼앗겼다. 신세계를 경험한 듯 물에 씻어 먹는 딸들을 위해 맵지 않게 간장 양념을 만들어 주었다. 딸들이 엄마 최고를 외치며 찾는 메뉴 중 하나이다.
이처럼 교육도 나는 엄마만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엄마표가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엄마표가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 아이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엄마는 없으니까. 아이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의 공통된 특징은 아이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여 최적의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말하면 엄마를 따라 올 사람은 없다. 이런 생각이 나로 하여금 문화센터를 기웃거리지 않게 한 것 같다. 물론 운전도 못하고 길치이며 거기다 삼박자로 정보력까지 부족한 내게는 그런 사소한 것들도 큰 일처럼 다가왔다. 모두 엄마와 함께 노는 시간, 즉 엄마표 놀이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기에 굳이 그렇게 번거로운 일을 계획할 이유도 없었다.
큰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를 위해 책을 사주고 싶은데 무엇을 어떻게 사주어야 하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앞서 키운 언니에게 물어보니 유명한 단행본들을 추천해 주었다. 몇 글자 없는 이 단 권 책값이 어찌나 비싸게 느껴지던지 신혼살림에 엄두가 나지 않아 정말 단권 몇 권씩만 사주어야 했다. 그렇게 귀한 책을 들고 하루는 이렇게 다음날은 저렇게 읽어 주었다. 아이의 반응 하나하나에 감격하며 읽었다.
얼마 후 지인께서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소중한 책을 우리 집에 주고 싶었다며 과학책 세트를 전해주시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 과학책은 빠르면 여섯 살부터 초등학년까지는 읽힐 글 밥이 있는 책이었지만 나는 마냥 감사하기만 했다. 돌도 안 된 아가랑 보드북도 아닌 양장본을 들고 우리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온갖 의성어들을 동원하고 동작들을 선보이며 읽어주었다. 책에 초롱초롱 눈을 맞추며 까르르 웃는 아이의 모습에 예뻐서 아이를 바라보던 내 눈도 마음도 빛이 났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날은 빨래집게가 최고의 놀잇감이 되었다. 아이가 거치대에 빨래를 널고 있는 엄마를 따라 아장아장 발을 떼고 거치대를 정글짐 삼아 놀다 빨래집게에 손이 갔다. 그럴 때면 집게를 모두 꺼내 아이가 입고 있는 옷에 아이와 하나하나 메달아 가며 놀았다. 놀다 보면 수도 세고, 소근육 협응도 일어난다. 아이의 관심이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러서 놀다 보면 하루가 갔고 거기다가 아이 잘 챙겨 먹이며 내 밥 잘 챙겨 먹으면 땡큐인 하루였다.
아이를 키우며 영상과는 담을 쌓았다. 집에 TV도 없었고 자극적인 영상매체만큼은 멀리 해주고 싶어 아이용품도 아이가 잠들면 시키곤 했다. 현란한 영상매체에 아이의 눈을 빼앗겨 상상하고, 사고하는 뇌를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 아이는 책이 제일 재미있는 세상이었다. 엄마가 말로 설명하고 소리로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이 판타지 세상이 되어 펼쳐지는 공간이 우리 아이에겐 책이었다.
그러니 아이는 책만으로도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TV도 게임도 없던 집에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딸이 졸라 게임을 시작한 후 딸이 한 말이 있다. “엄마 게임을 한 뒤로 재미있었던 놀이들이 재미없게 느껴져.” 세 돌 전의 아이들에겐 영상매체를 멀리하기를 권한다. 엄마의 편리함을 위해, 아니면 교육의 목적으로 아이의 광대하고 놀라운 세상을 조그마한 핸드폰 안에 갇히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기계음보다는 엄마의 육성으로 들려주는 소리가 아이의 정서와 뇌 발달에 좋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신성욱 저널리스트의 뇌과학을 통해 본 디지털 시대’라는 강연에서 미시간 대학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실험한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A그룹은 모여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나누게 했다. B그룹은 어려운 주제를 주고 논리적인 토론을 하게 했다. 30분 후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두뇌의 사령탑이라고 불리는 전전두엽을 측정했을 때 A그룹만 전전두엽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시험을 본 결과도 A그룹이 B그룹보다 15프로나 평균성적이 상승해 있었다. 정보를 교환하는 이야기가 아닌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에 뇌 활성화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정말로 똑똑하게 키우고 싶다면 아이를 품에 안고 이야기를 들려주자. 수다가 주는 뇌의 유익성을 기억하고 정보를 주입시키는 시간이 아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 엄마표로 길러주자. 엄마표는 엄마의 고유한 손맛처럼 우리 엄마만이 전해주는 사랑과 맛을 담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나 같은 엄마가 엄마표 육아를 하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다쟁이 엄마들의 엄마표 육아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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