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가연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황가연 ]
왜 우리는 타인에게 ‘기대’를 하는 것일까?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공감을 바라며, 자신과 같은 감정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가까운 사람과는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친밀도가 높은 대상과 낮은 대상에 대하여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는 공감 대본이 다르다고도 설명한 바 있다. 친밀도에 따라 타인에게 갖는 기대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에게 갖는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실망하기도 한다. 친밀도가 낮은 사람이 기대하지 않은 일을 해냈을 때보다 격한 감정으로 말이다.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시나리오와 마주하지 못할 수 있기에 기대한다는 것은 실망도 함께 수반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필자는 기대하던 시나리오와는 다른 상대의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는 동시에 서운함을 느끼는 필자 스스로에게도 실망을 느끼곤 했다. 상대에게 적절한 행동을 기대했다는 것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불편한 감정은 내가 상대를 좋아하고 상대에게 많은 부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숙제를 주는 것만 같았다. 인정하는 일은 약해지는 것만 같았기에 괜히 청개구리처럼 다가오는 손을 거절하기도 했다.
가까운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내게 이 말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실망은 적어도 조절하기 쉬운 것이 아니기에 본인의 기대와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은 좋은 길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기대는 나쁜 건가?
기대는 실망도 수반하는 위험한 존재이다. 하지만 기대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도 하다. 나의 기대와 관심이 상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이를 우리는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어려운 일이 잘 풀리고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자. 그렇다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본업에 더욱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대한 것처럼 성공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주의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존재로 살아가야 할 권리가 존재한다. 타인의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 자신에게도 초점이 맞춰줘야 한다. 나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를 너무 질책하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일이다. 가까운 타인에게 잘하기 어려운 것처럼, 나를 사랑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 모든 것의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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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박찬, 최훈석 (2013). 관계 친밀도에 따른 기대-일치 공감과 기대-불일치 공감의 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27(2), 8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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