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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 한 아이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 - 내 아이를 아프게 한 너를 이젠 미워하지 않아
  • 기사등록 2022-03-21 07: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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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1. 알렉스(라고 하자)는 영국에 처음 왔을 때 한 동안 내 아이를 괴롭혔다. 영어도 못하고 이런저런 눈치도 없고 또래보다 느리기도 했던 조이는 알렉스가 괴롭히기 쉬운 아이였던 것 같다.


초반 한 달간은 천방지축인 아이가 학교에서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매일같이 담임선생님께 지적을 받으며 위축되어있었던 나는, 어느 날 아침 두 명의 아이들이 내 아이에게 달려들어 점퍼를 벗기는 모습을 멀리서 보게 된다.

뛴다는 생각도 없이 즉시 뛰어갔다.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렇게 느꼈다.


얼마 안 있어 조이는 친구들이 괴롭힌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우르르 뛰어오기에, 점심시간이면 아이들이 자신에게 닿지 못하게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다.




2. 그 이야기를 했던 주말, 같은 반 여자 친구의 생일잔치를 갔다. 그곳에서 알렉스가 조이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눈빛이 한동안 잊히지가 않았다. 내가 다가가 멈추라고 이야기를 해도 알렉스의 눈빛은 달라지지 않았다.


괴롭힘이라는 것은 알렉스의 주도로, 학교의 규칙을 잘 모르는 아이가 규칙을 어겼을 때, 단지 '너 규칙 어긴 거야'라고 이야기해주는 대신 '너 벌 좀 받아야 해'라고 이야기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나중에는 규칙을 어기지 않아도 아이들이 있기로 한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 조이에게 가라고 하고는 '또 규칙을 어겼잖아.'라고 밀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 조이는 도망치고 알렉스는 쫒아가고 또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 더 쫒아가는 그런 패턴인 것 같았다.


여러 이야기를 들은 후 내가 이해한 그림이다. 사실은 다를 수 있지만 그즈음 아이가 느끼는 것은 이런 쫓고 쫓기는 관계 속 곤란이었다. 아이들은 그러면서 놀기도 하기도 하기 때문에, 놀이와 괴롭힘의 경계가 불분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아이가 이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 하나였다.




3. 담임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꾸준하고 단호하게 그리고 일관적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애써주셨다.


나도 나의 감정적인 반응과 싸우며 가장 효과적인 방향이 어디에 있을지 매일 고민해야 했다. 아침마다 아이가 교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창문 너머로 보며 웃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돌아서면 불안한 마음에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 시기 공원을 참 많이 걸었다. 둘째와 셋째를 실은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4. 아이는 그래도, 점점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해 갔고 친구들도 사귀어갔다. 본래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 치고, 영어를 전혀 못했던 것 치고, 그래도 잘 적응해나가는 편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서로 각자의 집에 초대해서 노는 플레이 데이트도 했다.


어느 날엔가 하굣길에 멀리에 있던 알렉스가 조이에게 먼저 인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둘은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고 그즈음부터는 '오늘 또 쫒아왔어'라고 말하는 대신, 다른 친구와 놀았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5.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조이는 알렉스를 플레이 데이트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알렉스를?' 되물었었다.

"응 알렉스가 예전엔 나를 힘들게 했지만 요즘엔 재밌어. 가끔 같이 놀아. 예전에는 걔가 어려서 그랬던 거야"라고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이 참 반가웠고 안심이었다. 플레이 데이트를 하려고 알렉스의 엄마와 이야기를 해보기도 했었다. 결국 하지는 못했지만 아이가 플레이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할 정도라면 이제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이는 이미 잊었다는 데도,

걔가 어려서 한 때 그랬던 것이라고 하는데도,

나는 내 아이를 괴롭히던 그 아이의 눈빛이 여전히 잊히지가 않았다.




6. 알렉스의 생일날이 다가왔다. 강당을 빌려서 반 전체 아이들을 초대해서 '과학'을 테마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알렉스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 그것이 그 날의 목적이겠지만, 나는 다른 마음이었다.


나는 생일을 축하하러 가기보다는 파티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 가를 보고 싶어서 따라갔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아이들이 내 아이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는지, 특히 알렉스와 이제 문제는 없는 것인지도 한번 더 면밀히 관찰하리라는 목표의식을 따로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 마음은 언제나 그런 목표의식, 보호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어서 어디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잘 지내고 있는가'라는 질문보다는 '못 지내는 건 아니겠지?'라는 질문이 나를 자주 꼿꼿하게 했다.




7. 코로나가 찾아왔고 작년 3월부터 학교에 가지 않은 채 집에만 있는 시간 동안, 알렉스는 기부 챌린지를 시작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싸이클링을 해서 그 챌린지를 하는 동안 모은 돈을 병원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멋진 챌린지였는데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알렉스의 엄마는 와츠 앱 단체 창에 매일같이 기부 현황 보고를 하며 새로 기부를 한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겼다. "00 엄마 20파운드 기부 고마워요."이런 방식이었다. 말하자면 다른 분들도 분발해서 기부하라는 홍보이자 압박이었다.


다른 기부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것에는 걸리는 마음이 없었는데, 알렉스의 기부 챌린지를 후원하는 것에는 걸리는 마음이 있었다.



알렉스가 아니라 다른 아이가 이런 챌린지를 했더라면 다른 마음일까?

아니면, 알렉스의 엄마가 너무 나서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기부 프로젝트는 대 성공을 거두었고 알렉스(와 엄마)는 그 돈을 그대로 병원에 기부를 했다. 곧 여러 신문에서 인터뷰 기사를 싣기 시작했고 알렉스는 학교에서도 상을 받고 칭찬이 자자했다.

'대단하다' '축하한다'는 말이 알렉스와 알렉스의 엄마에게 쏟아지는데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왜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할까


좁은 내 속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못내 불편했던 것 같다.




8. 그 후 9월에 다시 학교를 연다고 했을 때, 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으면 벌금을 물리겠다는 압박이 왔을 때, 나는 하루에도 몇천 명인 신규 확진자 수를 확인하고는 영국에 있지만 한국인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하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홈스쿨링을 하기로 한 후에는 와츠앱 단체 창에도 작별인사를 하고 빠져나왔다. 그렇게 모든 학교 장면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억은 우리와 함께 했다.




9. 며칠 전 에 등장한 해리슨 포드 사진을 보던 조이가 쿡쿡 거리며 웃었다. 알렉스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꼭 알렉스 할아버지 같아. 알렉스가 할아버지가 되면 이런 얼굴이겠네."

듣고 보니 알렉스는 해리슨 포드를 닮았다. 나는 앞으로 해리슨 포드를 보면 알렉스를 떠올리겠구나 싶었다. 못 본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이가 알렉스 이야기를 하면 반응 속도가 느려졌고 나는 온전히 함께 웃어주지 못했다.




10. 어제 있었던 일이다.

작은 아이들이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그림책을 꺼내어 읽어달라고 하는데, 멀찍이 떨어져 있던 조이가 또 웃는다.


"엄마, Stuck in the mud라는 게임이 있는 거 알아? 이 게임은 이기는 사람도 없고 지는 사람도 없는 건데 정말 재미있어."


"그래. 어떻게 하는 건데?"


아이는 한참 설명하더니 알렉스를 이야기했다.


"내가 그 게임을 하는 줄 몰랐는데 알렉스가 가르쳐줬어. 정말 재미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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