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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영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나를 놓아보고 아이들을 풀어놓으며, 불안과 걱정이 나를 완전히 소진시키고 마모시킨다는 감각을 느낀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멍하니 그날의 걱정을 되짚어 보고 있다가 늦게 퇴근 한 남편에게 이런저런 걱정의 사유를 나열하게 되었다.


불안과 걱정은 내 안에만 혼자 돌고 돌 때는 그것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는 데 일단 꺼내는 과정에서 거품과 감정의 김이 조금씩 빠지고 휘발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날 나의 걱정 목록은 길었고 때로는 이렇게 나열하면서도 어떤 뾰족한 해결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막다른 골목에 대한 감각, 절벽에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늘어놓다가도 멈칫거리게 되는 이야기였다.



남편은 그 모든 이야기를 듣더니 나에게 다시 물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걱정하는 이유가 뭘까요?’


나는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 성급하게 성마르게 대답했다.


“당연히 사랑하니까, 아이들이 잘 됐으면 좋겠으니까, 계속 걱정하게 되죠. 상처 받을까 봐 잘못될까 봐요.”


남편은 말이 빨라지는 나와는 달리 천천히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었다.


“그럼, 우리, 걱정하지 말고 그냥 사랑해줍시다. 지금 잘하고 있어요. 그거면 된 거예요.”


구체적인 걱정들에 대한 본질적인 대답은 그 순간에는 어떤 갑갑증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마치 이리저리 휘저어진 온갖 마음의 흙탕물이 시간의 힘을 빌어 흙과 물로 가라앉는 것처럼 결국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해 준다. 비본질은 날려버리고 본질만을 남기는 것. 모든 중요해 보이는 삶의 자극들 속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끝까지 응시하는 것이 주는 힘은 그렇게 오래, 끝까지 우리를 붙잡아준다.



온갖 사소한 걱정에 나 자신까지 사소해지는 듯해질 때, 그 모든 얕고 옅고 휘청이고 휘어지는 마음이 나를 기울이고 또 기울어지게 할 때, 아이들의 도전과 모험과 돌진과 진입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고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 아이들을 잡고 있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갈 때, 그럴 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더 꼭 움켜쥐는 걱정 대신 놓아주는 사랑을 실천하리라 마음먹는다. 그렇게 내 안의 움찔 꿈틀 거리는 감각을 잠재우는 연습을, 육아의 길을 걸으며, 매일 같이, 한결같이, 하게 된다.



모든 사람의 모습에서 상처의 가능성을 보며, 대체 이 모든 아픔을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지 몰라 상담자가 되었던 나는 이제, 상처 민감성이 아닌 성장 가능성에 기대어 글을 쓰고 상담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나간다. 심하게 쫄보였던 이 엄마도 강심장을 가진 사람인척 매일같이 연습하다 보면 진짜 강심장이 부여될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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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3-28 14: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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