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안남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바쁜 아침,
둘째를 먼저 학교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첫째와 셋째를 데리고 종종걸음으로 2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첫째의 학교로 향하는데, 얼마 후 두 돌을 앞두고 있는 셋째는 요즘 유모차에 앉아 있기를 싫어한다. 그렇지 않아도 언덕길이라 힘들었던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40분 거리의 그 길이 유모차를 거부하는 셋째 때문에 까마득하게 느껴지곤 했다.
어린이집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둘째를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작별 인사를 하는 데에 시간을 조금 지체했고, 유모차에서 내리겠다고 내내 울면서 가고 있는 셋째 때문에 몸도 마음도 바빠진 나는, 내리막길에서 내려오다가, 그만 돌부리에 넘어져버렸다. 차가 다니는 도 롯길 바로 앞에서 유모차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져버렸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다행히 아이는 얼굴을 조금 긁혔을 뿐 무사했고 나도 다리를 조금 다쳤을 뿐이다. 물론 놀란 아이는 더 자지러지게 울고 유모차에 실려 있던 첫째의 가방과 보조 가방들은 찻길로 떨어졌고 나도 다리가 아파서 금방 일어나지 못했다. 셋째만 겨우 안고 몸을 일으키는데 어떤 아저씨가 달려와서 상황을 수습해주셨다.
아저씨는 우선 스쿠터를 타고 길을 건너려던 첫째의 손을 잡고 혼자 찻길을 건너가지 말라고 하시고, 나를 보며 괜찮냐고 물어보시고는,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주셨다. 아기가 많이 놀란 것 같으니 유모차를 학교 근처까지 밀어주시겠다고 같이 가자고 하셨다. 경황이 없어서 고맙다고만 말씀드리고 여전히 울고 있는 셋째를 안고 욱신거리는 다리 한쪽을 약간 절룩이면서 아저씨와 함께 첫째의 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문이 딱 닫히기 직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며칠 뒤 거리를 걷는데 저 길 맞은편에서 걷고 있는 어떤 아저씨의 얼굴에 있는 검은 반점의 흉터에 시선이 갔다. 나는 그 흉터로 그분이 그때 도와주신 아저씨인 것을 알았다. 멀리 계셔서 인사를 하지 못했지만 얼굴에 있는 흉터로, 그 표식으로 아저씨를 인식하며 반갑고 고맙고 좋은 마음이 일렁이는 내 마음을 마주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아저씨는 자신의 흉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 흉터는 나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 그분이 바로 그분, 나를 도와주었던 바로 그 고마운 분임을 알리는 중요한 표식이었다.
흉터가 흉터가 아니라 고마운 사람을 알아보는 표식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렇게 알았다.
흉터가 흉터가 아니라 고마운 사람을 알아보는 표식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렇게 알았다.
길다가 넘어졌을 때 도와준 모르던 아저씨, 이제는 흉터라는 표식으로 알게 된 아저씨가 나에게 알려준 위로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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