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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라고 하기 전에 먼저 들어주기 -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어야지, 라는 말에 대해
  • 기사등록 2022-04-19 1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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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1.

시어머님 시아버님과 영상 통화하려는 찰나

둘째가 아빠에게 혼이 나고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조금 진정시킨 후에 다시 통화를 하는데 아버님이 둘째에게 말씀하셨다

“OO아.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어야지.”



2.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어야지.."

우리는 참 이 말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흐르는 많은 침묵은

이 말로 채워지곤 한다.


관계를 접합시키는 말은 아니었다.

때론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강요가 되기도 했고 항상 옳은 말도, 그렇다고 그른 말도 아니었다.


모든 ‘해야지’의 말이 그랬다.



3.

이 말을 듣는다고

'그러니까 엄마, 아빠 말씀을 잘 들어야겠다'라고

결심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또 이 말을 안 듣겠다고

그러니까 엄마, 아빠 말씀을 잘 듣지 않겠다고

'완벽한 실천'을 할 수 있는 아이는 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자라며, 의식의 선택이 아닌

무의식으로 받아야 해야 했던 말 가운데 하나, 우리 일상의 진부하고 낡은 말 가운데 하나 일 뿐이었다.


이런 말들은 특히,

일이 어긋나거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 내면에서 더 크게 들리는 말로 우리 안에 무수히 쌓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 말을 온전히 받아 안지도

완전히 토해내지도 못한 채

자주 저항했을지도 모른다.


저항하면서도

어느 정도 묶여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어른의 말이란,

듣지 말라해도 듣게 되니까.


그 파급이 어마어마하니까.



4.

영국에 와서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의 말들, 태도들, 몸짓들 표정들을 마주하며,

신기하고 생경했다.


이곳에서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깜빡하지 않았다.


어른들끼리 대화를 하더라도

아이들이 그 곁에 맴돌고 있음을 인식하고 음미하는 말을 건네는 것이

새삼 특별하지 않았다.


나는 그네들의 일상에 녹아있는 이런 태도가

좋아 보였다.


아이와 엄마가 한 세트로 이동할 때

나는 보통 아이의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 엄마는 나의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모두 보면서 인사를 했고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이들을 '간접'으로 대하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직접’ 물었다.

나는 그녀의 아이들에게

딱히 궁금한 것이 많지 않았는데


그녀들은 내 아이들을 만나면

생생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나는 그녀의 아이들에게

딱히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그녀들은 내 아이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했다.


"와 그건 뭐야?"

"내가 어제 OO를 했는데 말이야..."


엄마들끼리만 이야기하고 엄마와만 대화하고

아이가 뻔히 앞에 있는데도,

아이가 오늘 무엇을 했고

지금 기분이 왜 나쁜지

아이에게 묻기보다는 엄마에게 듣곤 했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어른과 아이 사이의

무심한 차단의 막이,

이곳에 와서야 다시 보였다.



5.

물론 확대해석, 성급한 일반화일 것이다.


한국과 영국의 차이가 아닌

개개인의 차이가 더 크고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적인 토양은 분명히 달랐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부모님, 선생님 말을 잘 들으라고 당연한 듯 이야기하는 곳이 한국의 풍경 한국의 토양이라면


영국은 아이의 말을 듣기 위해 당연한 듯 몸을 숙이고 아이들이 하던 말의 문장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는 어른의 풍경이 당연한 곳이었다.


내가 만난 영국 부모들이 특별히 아이를 더 존중하고 그에 대한 교육을 잘 받아서가 아니라,


내가 만난 한국 부모들이 특별히 아이 존중에 대한 실천을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존중하는 육아를 하겠다는 의지와 열정은 단언컨대, 한국 부모들이 훨씬 강력하다)


그들이 자라온 문화적 토양이 이미 달랐다.


1) 어른 와 아이 사이의 경계가 크지 않고


2) 아이가 어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관념이 강하지 않고


3) 어른이란 아이의 모든 이야기는 귀담아듣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당연한,

너무 당연해서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 부모님과 어른들 밑에서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부분을 나는 내내 생각해보곤 했다.)


4) 또 어쩌면 한국은 어른의 역할, 부모의 역할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더 크게 지우는 사회라서 아이를 대하는 어른의 태도가 더 딱딱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한국에서는

"모름지기 부모는, 어른은, 엄마는"

으로 시작하는 말들이 너무 강고하고 단단했다


그랬기에

"모름지기 자식은, 아이는",으로 시작하는 말들 역시 빈틈없이 일방적이었다.


저 둘 사이에는 긴밀한 연결이 있었다.



6.

받은 것이어야 주기 쉽기에,

들어온 말들이 우리 내면에 쌓여

무심코 흘러나오기도 쉽기에,

우리는 아이들을 만나면 진부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잘 들으라고만 말하곤 했다.

들어주기보다

들으라고 말하는 것에 더 익숙했다.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어야지.”


그러다가 육아 이론과 육아 전문가들의 모든 이야기 속 전제가 되는

'아이 마음을, 아이 말을 들어주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 말을 들어주겠다고 결심하는

우리 모두의 집단적 반성과 죄책감에 대해

나는 더 생각해보고 싶었었다.


또 반성하고 결심했다가도 또 현실에서는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는 이유.


나는 그것이 엄마들의 의지나 노력 부족이 아니라 받지 못해서, 듣지 못해서

만들어서 주려하는 데에 준비 시간이 또 따로 필요해서 버퍼링 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라면서 경험하지 못한 것은 따로 만들어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7.

그럼에도


요즘 부모님들은 받지 못한 것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먼저 들어주기보다는

일단 잘 들으라는 얘기를 들으며 컸지만


귀 기울여, 마음을 다해,

아이 마음을 먼저 들어주기 위해 애쓴다.


애써서 해낸다.


그것이 아이에게도 중요하지만

엄마에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며

자기 안의 아이 마음을 뒤늦게

함께 듣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며

다시 아이의 시간을 지나가며

구멍이 많이 뚫린 부모님의 사랑과 그 사랑과 함께 온 결핍을 더 시리게 느끼기 때문이다.


내 아이의 마음을 듣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내가 받았던 사랑의 방식은 물론, 내가 받지 못했던 사랑의 방식까지 총동원해서 사랑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며

자기 내면의 아이도 함께 키우고 치유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받아 안고 힘들어하는 마음을 만나면,

그 길이 아프더라도 힘들더라도

계속 길을 걷게 될 것을,

그럴 수밖에 없음을 믿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아프지만은 않게

천천히, 이 모든 사랑과 결핍을 껴안아가고,

내 내면의 그 아이의 말도 잘 들어주기를 기도하고 응원하게 된다.


엄마는 결국,

무심코 나온 말, 무심코 나온 행동을

정말로 하고 싶은 말, 정말로 해주고 싶은 행동으로 고쳐쓰기를 반복하면서

아이의 말도 듣고

엄마 자신의 말도 듣게 될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은 물론

받기로 되어있었던 사랑도 받게 될 것이다.



8.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는

이 생각을 기록 해두기 위해

글을 써야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갔다가 오겠다고 했다.

날은 차고

코로나로 인한 불안이

우리의 일상에 공기처럼 산재하니,


가라 할 수도

가지 말라 할 수도 없어서 복잡한 마음으로

둘째 아이의 외투를 입혀주고

옷깃을 여며주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나가면 아빠 말씀 잘 들어야 해.”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 말을 해놓고 보니

왜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런 진부한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는가도

역시 또 알 것 같기도 하다.


부모의 울타리 밖

바깥세상이 충분히 안전하다면

우리는 이 말을 해줄 필요가 없다.


우리는

아이가 어른의 말을 잘 듣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어른들 말을 잘 들어'라고 말하면서도

잘 들어야 할 어른의 말과 듣지 말아야 할 어른의 말을 구분하는 방법도 동시에 가르치는 그런

복잡함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왜 오늘도 아이 마음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반성하게 되는

자잘하게 흩날리는 그 마음들을 그러모아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에 써야 한다.



9.

모든 엄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장 작은 사람,

가장 낮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

당연히 당연한 사회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우리보다는 한발 더 나아간 사랑,

우선 들으라고 하기 전에

충분히 들어주는 사랑을

우리보다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지금

그 전환의 역사 마디마디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엄마, 아빠 말 잘 들어...라고 말하는 대신

아이가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을

있는 그대로 들을 마음의 공간을 예비해두려

노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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