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안남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이 글은 특히 ,
말 안 듣는 아이와 남편 때문에
힘들고 속상하실 분들께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어봅니다.
글이 길기에
핵심을 먼저 짚고 갑니다.
오늘의 키워드는 '구체적으로'입니다.
1. 아이가 왜 말을 듣지 않을까? 속상하다면
엄마 말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지를 살펴주세요
2. 이 사람은 대체 왜 내 말을 듣지 않을까? 답답하다면
아내 말에 담긴 요청과 요청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전달되었는지 확인해주세요
나의 '깨끗이'와
너의 '깨끗이'
아이가 모른다는 얘기를 너무 자주 했습니다
기다리다가 더 나은 질문의 방식을 찾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다가
어느 순간 답답해서 말하게 됩니다.
"이건 알았어야지.
네가 지금 몇 살인데
지금 이걸 모르면 정말 더 큰 문제야."
어제는, 그런 아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너 여기서 놀고 나면
청소 깨끗이 해놔라~"
그런데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깨끗이가 뭔지 모르겠어."
아니, 깨끗이의 의미를 왜 몰라? 반문을 하려다가
어떤 생각이 들어 입을 다물게 되었습니다.
정말, 모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나의 깨끗이와 아이의 깨끗이도 다르고
나의 깨끗이와 남편의 깨끗이도 다르니까요.
왜 말을 안 듣지?
왜 자꾸 모른다고 하지?라는 생각만 했는데
어쩌면 제가 중요한 것을 빠뜨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구체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지시는 들었지만
그 지시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모르니
실행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보다 구체적으로 제 요청을 변화시키지는 않았기에
같은 불통이 반복되고 있었지요.
구체화된 업무 분장 = 가사분담의 진화
그 생각을 확장해보니
'집안일을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묵묵히 잘하는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이런 경지(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지요? 우리의 변화는 언제나 어떤 지경에서 경지로 한 단계식 진화!!)에 이른 것
역시 '구체화' 덕분이었습니다.
구체화는 조금 추상적인 말이니 조금 더 쉬운 말로 바꿔 볼까요?
구체화 = 콕 집어서, 범위를 정해서 , 부탁하기
저도 처음부터 구체화에 능숙했던 것이 아니었고
남편도 처음부터 집안일에 능란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정이 있었습니다.
1단계 막연한 표현 -불평
아이 셋과 함께 있으며
본래도 잘하는 분야가 아니었던
집 청소가 부담이고 어려웠던 저,
남편에게 이야기합니다.
"집이 더러워지니 스트레스받네요."
남편은 이 메시지의 숨은 뜻을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만약 이 말에 움직여지는 남편 두셨다면,
이미 그전에 구체화의 길을 잘 닦아두셨거나
그 남편분이 깔끔하신 성격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단계 막연한 표현- 소망
그 후 저는 표현을 이렇게 해봅니다.
"집이 깨끗했으면 좋갰어"
1단계보다 훨씬 나은 표현 방식이긴 합니다.
결핍이나 스트레스가 아닌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이런 말에 더 잘 움직여지니까요.
그러나, 남편은 이렇게 이야기해도 역시 숨은 뜻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실, 1,2단계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저 역시도 싫은 것과 원하는 것은 생각했지만
그러기에 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부탁해야 하는 지도
확실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막연히', 의 상태였던 것이지요.
안갯속에서 결핍과 소망을 느끼는 상태.
물론 이런 상태에서는 서로의 신호 체계에 접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3단계. 막연한 부탁
저도 진화합니다.
남편에게 부탁을 했거든요.
"이따 집에 오면 집 깨끗이 하는데 동참해줘요."
확실한 부탁받은 남편은
제가 제안한 '깨끗이 캠페인'에
'나름의' 동참을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치우고 간 자리,
전과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숨은 그림 찾기를 찬찬히 해봐야 알듯한
미묘함에 당황하게 됩니다.
역시나 남편과 저의 '깨끗이'의 기준이 달랐던 것이지요.
하지만 일하고 밤늦게 돌아와서
전에 안 하던 것을 한 것을 알기에,
또 이 행동이 쭉 이어지도록 강화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준을 이야기 하기보다는
공동의 목표를 이야기하는 쪽이 더 나은 전략이기에
일단은 고맙다, 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제안합니다
"그런데 치우려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치워야 할지 모르겠어요.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설정을 해주면
그 부분은 확실히 해둘게요."
4단계 구체적 부탁
덕분에 그 후 우리는 집안일에 있어
구체화 4단계의 대화를 구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늦게 퇴근하기에 주중에는 얼굴을 볼 수 없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재우러 가기 전에 이런 문자를 보내 놓습니다.
카톡으로 남겨두는
<오늘의 구체적 부탁> 목록 예시입니다.
1. 세탁기 빨래 돌렸는데 못 널었어요.
2. 거실 바닥청소해줘요(주스 쏟았어요.)
3 식탁 위를 한 번 더 닦아줘요.
이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 내 욕구를 분명히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히 마음에서 잡아보는 마음 작업을 먼저 하고
그것을 상대가 소화시킬 수 있게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요청하는 것이지요.
우리 집 남편은 왜? 를 묻기 전에
한번 구체화가 잘 되었는지 살펴주세요.
먼저 알아서 해주면 좋겠지만
확실한 범위를 모르는 일에 먼저 손을 대기는 어려운 점도 있을 것이고요
본인이 할 수 있는 부분인지도 몰라서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답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고 그분이 게을러서,
배려하지 않아서
집안일을 안 한다고 해도
일단은 '구체적 설정'을 먼저 해주세요.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촘촘히' 구성해드리세요.
물론, 그 설정을 함께 하면 좋고
되도록 많이 해주면 좋겠지만
구체화라는
상대가 할 수 있는 만큼 달성하게 하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욕심 내지 마시고
확실히 힘든 면 한두 개부터 부탁하시고
인정해주시고 남편님 역량이 늘어나시면
더 부탁해보세요.
그러면 집안일은
'나의 일'도 '우리의 일'도 아닌
'그대의 일'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같이 하는 건데 왜 도와준다는 표현을 하느냐고 다투기보다는
업무 분장을 구체화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며 함께 하자고
두루뭉술하게 이야기 하기보다는
'이건 내가' '저건 네가'를 분명히 갈라서
각자의 일을 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해나가는 게
특히나 직업적으로도 지치고
육아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시기에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배려에 기대기보다는
구체적인 업무 분장을 하는 것이지요.
이 과정을 우리의 육아에 적용해봅니다.
우린 아이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깨끗이 해야지.
착하게 굴어야지.
말 잘 들어야지.
잘 먹어야지."
우리는
이런 모든 말들을
아이들에게 조금 더 펼쳐볼 필요가 있습니다.
'깨끗이 하라', 는 말보다는
'이 블록은 이 상자에,
저 책들은 여기 책 꽃이 빈 공간 속에 한 권씩 꽂아',라고 일러주는 것이 필요하고요.
'착하게 굴어야지', 라는 말보다는
'장난감은 먼저 가지고 놀던 사람이 계속 가지고 노는 거야.
네가 가지고 놀고 싶으면 뺏지 않고 부탁하고 기다리는 거야.'라고
구체적인 기준을 한 번 더 세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입은 더 아프겠지만
아이 입장에서도 역시 촘촘한 망을 가진 엄마의 구체적 기준 덕분에
혼란스럽지도 않고
빠져나갈 구멍도 없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예측 가능한 세상이 됩니다.
더불어 어른들에게 부탁한 것은
'중간 확인'을 하려 하지 않는 것이 신뢰이고 배려지만
아이에게 이야기한 것은 반드시 '중간 확인'을 해주는 것이 신뢰이고 배려가 됩니다.
구체적인 지시와 그것을 살펴주는 과정 없이
아이는 정말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인 세상 속에 있습니다.
나의 깨끗이와 상대의 깨끗이에 대해서
알겠지, 알아야지,라고
단정 짓지 않고
한번 더 설명해주고 확인해주고
서로의 기준과 원칙을 맞추어주세요.
그러면 말을 안 듣는 것이 아니라 안 들렸던 것일 뿐임을 조금 더 알게 됩니다.
아이이든, 어른이든,
배려해주면 존중합니다.
배려와 존중의 소통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마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하고 계속 확인해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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