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신치 ]
#첫사랑
신치에게 첫사랑의 추억은 아주 생생합니다. 고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였어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남자 사람 친구의 친구들 10명과 여고에 다녔던 신치의 친구들 10명이 모여 반팅을 했습니다. 인원수에 걸맞게 아주 다양한 군상의 아이들이 모였죠. 스무 명이 만났지만, 이후에 커플이 된 것은 주선자인 신치뿐이었지요. 많은 미팅이 그러하듯이 말이에요. 신치에게 소개팅을 하자고 했던 남자 사람 친구들은 애초에 다른 친구와 신치를 엮어주려고 했지만, 신치와 눈빛이 통했던 친구는 다른 친구였습니다. 네, 신치의 첫사랑이요.
개인별로, 커플별로 연애의 온도가 각기 다르듯 신치와 첫 남자 친구도 그랬습니다. 막내로 많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남자 친구와 달리 첫째이자 무뚝뚝하고 애정 표현이라곤 눈곱만큼도 할 줄 모르는 신치였어요. 신치에겐 아주 큰 애정 표현이었지만, 그 친구에겐 그것이 크게 가닿지 않았을 겁니다. 친구들이 '네가 그렇게 하는데도 그렇게 좋아해 주는 게 용하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둔 겨울, 연말에 불우한 이웃들의 이야기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던 그 시기에 집에 있던 신치에게 삐삐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울먹이는 남자 친구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네요.
"너를 정말 사랑하지만, 이런 외사랑은 더 이상 못하겠다. 미안."
남자 친구가 남긴 마지막 음성을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리고 펑펑 울었지요. 눈물 콧물을 한바탕 쏟은 신치를 발견하고는 엄마가 물었습니다.
"너 무슨 일 있니?"
그리고 신치가 대답했죠.
"아니. 티브이 프로그램이 너무 슬프잖아."
그렇게 넘어가긴 했지만. 역시 엄마의 촉은 참 무섭습니다. 어느 시기가 지나고 그 날의 기억이 서서히 잊혀가던 어느 날, 엄마가 신치에게 묻습니다.
"걔는 잘 지내니?"
평소에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며 잘 울던 딸이었지만, 왠지 그 날은 '무언가 다른 어떤 분위기'를 감지했나 봅니다. 그리고 더 묻지 않았고, 잘 묻어두었다가 시간이 지나 아무 일 아닌 것처럼 그냥 그렇게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의 풋사랑. 첫사랑이라고 하지만 대학생활이 시작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잊힐 줄 알았던 신치의 첫사랑. 하지만 첫사랑의 여운은 생각보다 꽤 오래갔습니다. 이후에 잠깐씩 만났던 사람이 있긴 하지만, 세 달을 넘기진 못했거든요.
열여덟의 첫사랑을 끝내고, 스물여덟이 되도록 첫사랑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못 만났다기보다 첫사랑에 대한 미련 때문에 다른 사랑의 감정이 싹틀 수 없었다는 말이 오히려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네요.
#짝사랑
연애도, 사랑도, 결혼도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며 지낸 지 어언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첫사랑에 대한 감정만큼 '이 사람 한 번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사람도 있었습니다. 신치 인생에서 두 번째로 그렇게 적극적으로 '좋아한다'라고 고백한 사람이기도 하겠네요. 결국 이루어지진 못했지만요.
#결국, 다시 사랑
'이제 한 번 연애를 해 볼까?'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무렵. 신치는 이런 사랑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스북에서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엔 사실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이 첫사랑과 닮아서 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삶의 많은 부분을 공유할수록. 신치는, '아, 내가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첫사랑을 만났나 보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신치에게 다른 무엇으로 인해 얻어지는 기쁨이 아닌 '존재 자체로 기쁨'을 느낄 수 있음을 알려준 사람. 그래서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며 갈 수 있는 사람. 때론 다투기도 하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누구보다 신치를 위해주는 그런 사람입니다.
사실 신치가 했던 이전의 사랑은 참 이기적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오히려 멀리 있는 사람의 마음을 더 헤아려 가까운 이에게 상처 주는 게 특기였지요. 이런 신치가 사랑을 하며 많이 바뀌었습니다. 더 밝아지고, 마음이 넉넉해져 상대방의 마음을 예전보다는 조금 더 헤아릴 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인생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사건 사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내가 성장했음'을 혹은 '내가 이렇게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의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치도 십여 년 만에 만난 사랑을 통해 '덜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기쁨'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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