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신치 ]
신치는 늘 현재가 아닌 미래의 희망에 기대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과거의 어느 시점에 꿈꾸었던 미래의 모습이 현재는 아니었다. 꿈꾸는 미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였을까? 미래에 대한 모습이 여러 번 좌절되자 신치가 기대하는 미래란 그 목숨이 다해 아케론의 슬픈 강가에 이르기 전까지 신치의 눈 앞에 펼쳐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어느 날 엄습해 왔다. 그렇게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신치의 삶은 항상 ‘달콤한 인생’이라기보다 주로 ‘달콤할 인생’이었다. 그래서 항상 ‘아… 그때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라며 후회하고 아쉬워했다.
피렌체에서의 첫날밤
신치는 잊고 있던 여러 사랑의 흔적을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매일 학교 가는 버스에서 만난 원빈 닮은 오빠에게 생애 처음으로 큰 용기를 내어 고백하고 잘 될뻔했지만 무언가 두려워 먼저 도망쳐버린 풋사랑. 애정표현이 서툴러 큰 상처만 주고 떠나가게 만든 첫사랑. 그리고 첫사랑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새로운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탈리아에서의 첫날밤, 신치는 지난 사랑을 이야기하며 본인이 얼마나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매달려 살고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현재에 머무르지 못한 자. 불행했지만 불행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La Dolce Vita.
잠깐이지만, 달콤한 인생.
여행 첫날 아침. 신치는 처음 마주한 밀라노의 길거리를 굴러다니는 낙엽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 외로움이란 감정은 점차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밀라노 두오모에서 경건하게 미사를 올리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편안함,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며 내려다 보였던 아씨씨의 자연에서 발견한 여유로움, 피렌체의 좁은 일방통행길에서 느낀 사람들의 배려심, 성곽 위로 달리던 사람들이 사는 조용한 시골마을인 루카에서의 포근함으로 채워졌다.
이탈리아 루카(사진출처 픽사베이)
어디에 있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신치는 '지금'에서 삶의 의미나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매 순간을 즐겁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한 친구가 술자리에서 신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과거의 어떤 순간이나 미래의 공상에 매어서 사는 사람들은
현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거야”
그리고 그는 테이블을 손으로 만지며
“현재가 즐겁지 않다면,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에서 즐거움을 찾아야지. 이 테이블을 만져보며, ‘아, 이 나무 테이블이 이렇게 생겼었구나.’라던지, 방치해 두었던 나의 몸을 쓰다듬어보면서, 살아있음을 느껴본다던지, 가족들과 유쾌한 대화를 시도해 본다던지. 이런 식으로 말이야.”
그랬다. 너무나도 불확실한 거창한 미래의 어떤 모습만을 꿈꾸고 좇으며 살다 보니, '지금'은 늘 뒷전이었다.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찾기 위해 수많은 행복의 세잎클로버를 짓밟는 것처럼 말이다.
남들과 달리 여전히 방황 중인 언니를 항상 걱정해 주고, 사랑스러운(?)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 주는 신치보다 일찍 철들어버린 동생들이 둘이나 있고, 얼굴만 보면 짜증부터 내고, 대화하기를 거부하기를 일삼고, 대화를 시도할라 치면 가방 싸서 밖으로 도망가 버리는 철없는 첫째에게 “그래도 난 네가 알아서 잘하고, 잘 살거라 믿는다.”라고 말해주는 엄마도 있다. 회사를 옮길 때마다 걱정해 주고, 30군데는 원서를 써봐야 한다며 채찍질해 주는 친구도 있다. 선택의 기로에서 조언을 구하면 늘 현명한 길잡이가 되어 주시는 사부가 있었고, 직언과 조언,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선후배, 동기들이 곁에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건강이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늘 지지해 줄 사람들이 있다. 생각해 보면 '지금 행복해야 하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했다.
반갑지 않은 손님
열흘간의 이탈리아 여행은 북적이고 시끄럽기만 하던 홍대를 편안하고 여유로운 공간이 되어 있었다. 다시 돌아온 홍대에서 주책맞은 눈물이 흘렀던 이유는, 아마 이런 소소한 행복을 이제야 느껴서일까, 아니면 충분히 느껴보지 못한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아쉬움의 눈물이었을까?
이탈리아 친테퀘레(사진출처 픽사베이)
'지금'에 있지 못한 스스로를 발견해 반성했지만, 이내 '이탈리아'라는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 습관처럼 다시 찾아왔다. 과거에 대한 망상처럼 우울감도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우울감은 '지금의 행복'을 과거에 대한 망상, 후회 등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데려가는 급행열차이기도 하다. 우울한 상태로 데려가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다시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린다.
지금과 만나는 방법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이하 변경연)의 구본형 사부님을 만났고, 책 읽기와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책에서 만난 문구는 신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이정표를 따라 글쓰기를 시작하면, 점차 내면에 깊이 숨겨 두었던 신치와 가까워져 갔다. 그렇게 조금씩 신치는 과거에 대한 후회 또는 미래에 대한 지나친 희망이 아닌 '지금'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신치 인생의 두 번째 스승을 만났고,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스승의 도움으로 '행복의 이유'를 굳이 찾지 않아도, '지금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존재 자체만으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photo by JSH
신치가 생각했던 것보다 신치의 인생은 이미 충분히 달콤하다. 이제 그 달콤함을 있는 그대로 충분히 만끽할 일만 남았다. La Dolce Vita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