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한 치의 거짓도 허용하지 못 하는 당신에게 - 가까운 사이가 되려면 늘 투명해야 한다는 사고의 맹점과 해결법
  • 기사등록 2022-04-12 07:41:08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추예솔 ] 


상대방과 아주 막역하고도 깊은 관계로만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이 있다. 이들은 특정 지표를 통해 우리의 사이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자주 확인하고, 관계를 정의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이를테면 연락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다른 친구들이 아닌 본인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는지 등을 통해 말이다. 혹 숨기는 게 있거나 맞춰주지 않으면 상대방을 추궁한다. 결국 본인을 봐달라는 집착적인 요구를 하며 끝을 맺는다.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때로 타인과 무한정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구에 휩싸일 때가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심리는 누군가 거짓말을 했을 경우 돌연 화가 나면서 무조건 진실하기만을 요구하는 행위로 발현된다. 물론 자신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걸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늘 똑같이 진실만을 고하기를 바라고, 그것을 가까운 사이의 지표로 삼는 데는 상당한 문제가 존재한다. 본 글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를 파헤치고 거기서 조금은 벗어날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https://pixabay.com/ko/illustrations/물음표-중요한-징후-문제-1872665/


타인에게 진실하기를 강요하는 행위의 맹점과 문제점


 

먼저 의도가 불순하다는 문제가 있다. 대개 거짓말 관련 글을 보면 비윤리적이며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지양해야 한다는 식의 권유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도덕적으로 반드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올바르게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기인한 게 아니다. 내가 타인에게 솔직하듯, 상대 역시도 나에게 가감 없이 솔직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나와 같아야만 한다는 일종의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사람은 각기 다를 수 있다는 개별성과 자유를 간과하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 역시 존재한다. 애초에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나 하는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해도 후에 거짓말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시기까지는 거짓말이 아니었는데 후에 상황이 달라지면서 거짓말로 변모되는 경우에 그렇다. 후에 어떤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상대는 진실 하고자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또 인간은 절대적 진리를 알 수 없으며, 그걸 전달하는 언어조차 불완전하기에 내가 무언가를 전하더라도 그게 온전히 전달된다는 보장이 없다. 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도 그렇지만, 애초에 언어는 불완전하고 불확실하고 모든 것을 다 담아내고 형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러니 무언가를 온전히 표현해야 한다는 건 무리한 요구이며, 애초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에 가깝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다 말하겠답시고 전부 다 실토해냈을 때 상황이 악화된 적이 있다. 그때 누군가 네 맘은 알겠지만 솔직한 것만이 능사가 아니야, 라고 조언해준 바 있다. 어떤 거짓말을 하는 것이 도의적으로 옳지 못 한 행위를 덮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관계에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하릴없이 이행한 것이라면 때로 윤활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관계에 어느 정도의 거짓말이 필요하기도 하다는 얘기다. 물론 칸트는 의도가 선해야만 한다고 발언하며, 선의의 거짓말일지라도 무조건 지양해야 한다는 귀결을 낳았다. 그러나 그것은 다소 고지식하고 경직된 사고이며, 위와 같은 맥락에서 봤을 때 동의하기 어렵기도 하다. 

 



추궁하기 위해 말을 하는 게 아닌, 믿기 위해서 말을 한다는 것


 

여기서 이민진의 「RE」라는 단편소설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앞서 본인이 타인에게 늘 진실만을 고할 것을 강요하는 이유는 타인을 속속들이 알고자 하는 욕망에서 기인했다고 한 바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유완’ 역시 나와 비슷하다. 유완은 계속해서 자신의 속내를 감추는 해니를 괘씸해한다. (물론 해니의 성격 때문에 평소에 탐탁지 않아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는 제멋대로 해니를 억측하고, 해니의 의사와 무관하게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상황을 야기하기도 한다. 해니를 친한 동성인 영우와 동성연애를 하는 관계인 것으로 규정하고 아웃팅한 것이었다. 자신에겐 솔직해도 괜찮다는 안일하고도 무례한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결론적으로 해니는 유완에게 화를 내었고 둘은 멀어지게 됐다. 

 

위 행동은 그들의 관계를 받아들이고자 하기 위함이었다기보다, 그들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드는 궁금증을 해결하고 그들과 자신 사이에 벌어져 있는 여백을 채움으로써, 보다 밀도 있는 관계를 맺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망에서 출발한 행동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유완이 언젠가 해니에게 말 한 ‘상대와 대화를 하는 이유’와 맥을 같이 할 것이다. 상대의 이해와 공감을 바라서가 아니라, 말을 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쾌감을 얻기 위해서라도 한 것 말이다.

 

유완은 이러한 발언을 한 바 있다. “타인은 나의 이치에서 벗어나야 갈 수 있는 세계 같았다. 그 세계가 어떤 곳인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파악하려 해봤지만, 나름의 법칙이 있을 거라고 믿는 게 최선이었다.” 정말 그렇다. 사람과 사람 간 공백은 미지의 영역이며, 무언가를 명확히 정의 내리기에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 영우가 유완에게 ‘상대를 못 믿는 건가요, 언어를 불신하는 건가요’라고 물은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유완이 위와 같은 경솔한 발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어쩌면 사람 간 거리를 인정하고 지켜야 하며, 공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은 “해니가 죽었다”는 영우의 말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그저 각종 비유로 에둘러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쓰인 편지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끝내 해니가 죽었다는 것이 물리적 죽음일지, 상징적 죽음일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 무엇일지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결말이 와닿고 편하게 느껴진 것은 유완이 종내에 자신의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행위를 거두었다고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말을 하기 위해 타인을 소거하는 것이 아닌, ‘믿기 위해서 말하는 행위'을 비로소 실천한 듯했다. 


https://pixabay.com/ko/photos/사람들-잡고-손-일몰-남성-2561053/


인생의 동반자가 아닌, 여행자로 상대방을 바라보기


 

이쯤에서 최근 읽은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에 등장한 구절을 떠올려본다. 저자는 애인이나 친구 등을 포함한 모든 가까운 사람을 떠올리라고 주문하며, 그 상대를 인생의 동반자가 아닌 여행자로 볼 것을 권유했다. 무언가를 전부 동일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손을 잡고 나아가야만 관계를 건강하게 끌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여 때로는 상대와의 다름을 인정하고, 같아야 한다는 압박 없이 여백을 존중하고 묻지 않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상대를 속속들이 알고 닮아가야만 한다는 강박감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때로는 필요한 거짓말을 하더라도 이유를 안다면 넘길 수 있는 관대함이 진정한 친밀함이자 다정함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관계를 이어나갈 때 조금은 떨어져서 바라보는 건 어떨까. 그랬을 때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집약되는 모든 어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됨은 물론, 한 개인을 그 사람의 고유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방법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모순적이게도, 그렇게 했을 때 오히려 상대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기사

좋아하고 싶은데 왜 마음대로 안 될까?

"사랑하는데 못 믿겠어, 괴로워"

어쩔 티비'를 모르면 아싸라고?

착하고 얌전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더욱 진솔하고 투명한 사랑을 위해서






참고자료

「RE」, 『소설 보다 여름』, 우다영, 이민진, 정영수, 문학과지성사, 2019.08.14.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김상균, 플랜비디자인, 2020.12.18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3246
  • 기사등록 2022-04-12 07:41:0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