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림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예림 ]
“빈방 하나 있음. 성인 1명 아이 2명 수용 가능.”
독일 베를린 기차역에는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에게 자신의 빈방을 내어주겠다는 피켓을 들은 수천 명의 독일 시민들이 있다. 낯선 국가의 낯선 사람일 텐데도 어려움에 처한 난민들에게 자신이 집을 내어주고 있다.
출처: 오마이뉴스 / 에어비앤비로 우크라이나인들을 돕는 새로운 문화를 설명하는 CNN 인터뷰
영국은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집을’이라는 후원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이 프로그램은 홈페이지 개설 첫날에만 영국 시민 4만 3천여 명이 참여를 희망하며 높은 시민 참여율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유럽 내 초등학교에서는 우크라이나어가 가능한 교사를 배치하여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 밖에도 세계의 다양한 국가에서 우크라이나 에어비앤비 숙박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구매하여 경제적인 도움을 직접적으로 주려는 활동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에 우크라이나에는 많은 수의 피난민들이 생겨났다. 이 새로운 전쟁이라는 난관 이전에도 국제 사회는 이미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 질병으로 인해 팬데믹이라는 경제적이고도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국가에서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돕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는 사람이기에 다음에 자신에게 갚아줄 수 있는 보상을 생각하며 돕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피란민을 돕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이거나 시간적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이미 코로나라는 국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미 자신의 상황도 어려운데 낯선 타인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동기
위의 사례와 같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목적에서 수행된 행동을 친사회적 행동이라고 한다. 즉,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이로움이 목적이 되는 행동이다.
일단 심리학에서 친사회적 행동의 동기는 크게 세 가지로 본다. 본능과 유전에 의한 진화 심리학적 관점, 도움 행동의 비용과 보상을 계산하는 사회 교환적 관점, 순수하게 돕고자 하는 동기에서 비롯되는 공감과 이타주의의 관점이다. 일단 진화 심리학적 관점으로는 돕는 성향이 자신의 유전적 집단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일면식도 없는 다른 국가의 피란민을 돕는 것은 자기 유전과 다른 집단을 돕는 행위이므로 진화론적으로는 위 사례를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 교환적인 관점으로는 도움 행동이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파악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피란민들을 돕지 않으면 죄책감이라는 심리적 문제가 생기고 타인으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받지 못하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를 완화하고자 도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득과 비용을 계산하는 도움 행동을 과연 이타주의에 해당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공감과 이타주의 관점에서는 Batson의 공감-이타주의 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가설에서는 도움 행동의 경로를 두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하나는 공감 원리에 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선 사회 교환 원리에 의한 것이다. 공감 수준이 높을 때는 사회적 이득을 고려하지 않고 도움 행동이 이루어지지만, 공감 수준이 낮을 때에는 사회 교환의 원리에 따라 도움 행동 여부를 결정한다. 즉,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공감하는 수준의 정도에 따라 도움 행동의 동기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고 본다.
이렇게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타국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도와주는 동기를 생각해보면, 낯선 집단의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 교환적인 관점에서는 자신에게 돌아올 비용보다 큰 이득을 고려하여 도움 행동이 이루어진다고 분석된다. 반면 공감-이타주의 가설을 주장하는 Batson의 관점에서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의 어려움에 높이 공감하면 순수한 이타주의로서 도움을 행하고, 반대로 공감 수준이 낮으나 도움 행동을 행하는 경우에는 자신에게 돌아올 긍정적 이득을 고려하여 행하는 것이라고 판단될 것이다.
도움을 주기로 결정하는데 필요한 요인
친사회적 행동을 실제로 실행하게 하는 데에는 많은 결정 요인이 존재한다. 사회심리학에서는 그 요인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도움을 주는 자의 특징, 둘째는 상황적 조건, 셋째는 도움의 받는 자의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에게 행하는 친사회적 행동의 결정 요인에 대해 더 자세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세 번째 요인인 도움을 받는 자의 특징과 관련된 것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특징이 다른 일반 도움 상황에 비해 조금 더 특수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특징 중에서도, 도움 행동의 적절성이 느껴질 때 친사회적인 행동을 결정한다.
예로, 길에서 쓰러질 것 같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이 사람이 몸이 불편한 노인일 수도 있고 술에 취한 젊은 청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을 더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가 생각해보자. 대개는 몸이 불편한 노인을 더 잘 도울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는 도움을 요청하는 자의 상황이 적절한지 지각에 따라, 도움 행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의 원인이 도움을 요청하는 자의 통제범위 밖에 있을 때, 도움의 적절성을 더 느끼고 친사회적 행동을 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피란민에게 있어 전쟁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행동도 아닐뿐더러 피란의 원인을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다. 그렇기에 타 국가의 사람들은 이러한 피란민들의 어려움을 더 인식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비교적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다양한 개인적인 도움까지 나타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확장되는 사회와 확장되는 도움
사회는 확장되어가고 더욱 다채롭게 변해간다. 그에 따라 마주한 새로운 어려움들도 많아져 가지만, 더불어 그 어려움을 인식하고 연대하여 새롭게 이겨나가는 모습 또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에게 적극적으로 거처를 제공하고 직접적인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행위는 상황 맥락적으로 특수하고도 일시적으로 생겨난 새로운 도움 행동의 양식이라고 비판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돈쭐내기’라는 새로운 국내의 친사회적 행동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2019년 7월 홍대의 한 파스타 가게의 점주가 꿈나무 카드를 들고 오는 결식 아동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소식이 SNS를 통해 전해졌다. 2021년 2월에는 돈이 부족해 걱정하는 형제에게 치킨집 사장님이 치킨을 무료로 제공했다. 이에 사람들은 해당 자영업자의 선행을 높게 평가하고 그 식당이 금전적인 이득을 얻을 정당성이 있다며 전국에서 전폭적으로 해당 식당에서 음식을 구매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선행을 한 자영업자의 매출을 높여주는 일명 ‘돈쭐을 내는’ 문화가 확산했었다. ‘돈쭐을 내다’이라는 말은 ‘돈’과 ‘혼쭐내다’의 합성어로서, 혼쭐을 낸다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반어법을 이용해 선행에 대한 긍정적인 책임을 지게 하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선행을 한 점주들에게 정신이 없을 정도로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해 금전적인 이득을 점주가 가질 수 있게 하는 문화이다. 이는 SNS라는 새로운 기술이 정착하며 이 문화가 확산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사례와 같이 우리는 갈등과 개인주의의 확산 속에서도 함께 공동체로서 살아가는 내음새를 완전히 잊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한 국가적인 팬데믹과 경쟁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타인과 함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은 사회가 확장되고 발전함에 따라 또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고.
기쁜 일은 서로의 나눔을 통해 두 배로 늘어나고 힘든 일은 함께 주고받음으로써 반으로 줄어든다는 존 포웰의 말이 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모든 이가 인간적인 권리를 당연하게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아직 그 길이 먼 것 같으면서도 그 목표를 위해 함께 걸어가고는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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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결식아동에 바베큐치킨 도시락 제공해 '돈쭐'난 사장님, 나눔 선행에 이어진 ‘바이콧’. [TW NEWS]. (2021). https://www.jejutwn.com/news/article.html?no=117190
·돈만 보내는 '착한 노쇼'... 우크라이나 숙박 예약 '폭주'. [ohmynews]. (202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15971&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영상] "빈방 있어요"…우크라 난민 위해 직접 나선 유럽 시민들. [SBS 뉴스]. (2022).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677812&plink=LINK&cooper=YOUTUBE&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전쟁 중 우크라 숙소 예약 붐… 에어비앤비 ‘착한 노쇼’. [국민일보]. (2022).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6840288&code=61131111&cp=nv
·Aronson, Wilson, Akert. (2015). 사회심리학 제 8판. 시그마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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