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웅
[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어느 출근 날. 어김없이 출근 한 시간쯤 전 병원에 와서 환자 상태 파악을 하고 협진, 치료계획 등을 쭉 훑고 출근했다. 병동 물품을 세고, 인계를 받고, 환자 Assessment를 하고 투약을 하고, 기록을 넣는 중 문득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교대 근무로 인한 피로도 있겠지만 습관처럼 되어버린 업무들, 환자와의 정서적 교감을 하기 힘든 정서적 고갈 상태, 장기환자의 경우 Irritable 하고 자주 체위변경과 용변 간호를 반복해야 하는 점, 그 외에 꼼꼼히 챙겨주어야 하는 Routine care들. 힘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라는 것을 일을 하며 느꼈다.
중증도가 심하게 높고 일이 버겁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늘 주변을 살피며 도와주시는 선생님들, 서로 도와주며 같이 칼퇴를 하자는 분위기인 우리 [1] HICU. 고비 때마다 부서 분위기와 좋은 선생님들 덕분에 잘 넘길 수 있었다.
힘들 때면 나는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되돌아보곤 한다.
누군가는 아픈데 돈이 없다. 누군가는 오래 치료를 받아 가정이 흔들리고 재정적 부담이 크다. 누군가는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으나 교육받을 환경이 아니고 당장 하루 먹고 살 걱정에 꿈꾸는 것도 사치인 순간에 직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순덩어리인 세상 속에서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함께하기'이다. 사회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아픔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해결해 줄 순 없겠지만 해결해보려 노력하고 적어도 슬퍼할 때 옆에서 같이 슬퍼해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때 같이 기뻐하는 삶을 지향한다. 학창 시절부터 현재의 삶까지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내 가치관은 유지되었고 선택의 총합이 현재 환자 옆에서 돌봐주고 있는 간호사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사명감으로 왔건만 인간이기에 한계에 부딪힌다. 당장 내가 밥 먹을 시간도, 물 먹을 시간도 없이 근무시간 내내 서서 긴장 속에 일하고 집에 오면 긴장이 풀려 쓰러져서 잠들고 눈 뜨면 출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취미 생활은 꿈도 못 꾸고 붕 뜬 시간은 비효율적으로 보내다가 다시 병원으로 간다. 수면리듬은 불규칙하고 양쪽 무릎에선 소리가 나기 시작한 지 꽤 됐다. 어느 순간부터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 가끔 자조 섞인 웃음을 짓기도 한다. 현재 병원시스템과 보험체계, 수가체계는 문제가 있다.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고 내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는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의료인들의 부담이 더 가중될 것 같아서 가까운 미래는 더 암울하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보건의료정책을 국민과, 병원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제시하고 펼쳐나가고 싶다.
첫 직장을 운 좋게 간호사로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병원에서 일할 수 있게 된 점은 정말 감사하다. 예전에 군대에서 의무병으로 일할 때 훈련하다가 다친 이들이 병원에 찾아와 Dressing을 해주고 싶어도 열악하고, 또 비싼 재료는 재고가 없기도 해서 그로 인해 최상의 처치를 해주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인도와 네팔로 의료봉사를 갔었을 때, 그 순간을 넘길 수 있는 처치를 해줄 수 있었지만 지속 가능하게 회복을 돕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에 반해 현재 일하는 곳은 재료도 충분하고 상황에 따라 최상의 처치를 해줄 수 있다. 또한 이곳에 일하시는 선생님들은 조금의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계속 공부하고 성장하고 있으며 그 결과 다른 병원에서 치료하기 힘든 환자들이 전원을 와도 회복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생각해보니 지금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환자분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진다. 가끔, 아니 자주 무너져버리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기운 내서, 내 안에 사랑이 넘쳐서 그 사랑이 환자분들에게 흘러가면 좋겠다. 나의 앞 날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앞으로 어떤 역할을 사회에서 감당하게 될지 잘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점은 앞으로도 이렇게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삶을 풍요롭게 누리고 어느 순간 내 모습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는 선물을 받은 나 자신을 만나게 될 테니까.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기.
그에 더해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이 내 안에 넘치길 간절히 바라고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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