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웅
[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신규 간호사로 막 독립했을 때 중환자실에서 장기간 입원하고 계신 태건님(가명)을 본 적이 있다. 심장수술을 하러 왔다가 복부 쪽에 문제도 발견되어 상태 회복을 위해 치료받고 있던 분인데 몸무게도 좀 나가시고 몸에 욕창이 있어서 자주 체위변경을 해 드려야 하는 분이었다. 그리고 기관절개술을 시행받아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의사소통이 어렵고 가래를 자주 흡인해주어야 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상황이었다.
당시 나는 독립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중증도가 높은 환자분을 보기에는 주어진 일만 실수 없이 해내기에도 버거운 상황이었어서 환자와 교감하고 정서적 지지를 제공해준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뒤에 오는 선생님께 인계를 드리다가 혼이 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실수를 지적받는 것이 마치 나는 잘하지도 못하고 필요 없는 간호사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간호를 할 때 환자분을 위해 간호한다기보다는 인수인계를 위해 일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출근할 때 목표도 오늘의 Routine 업무를 잘 해내고 특별한 Event 발생 없이 퇴근하는 것으로 자연스레 설정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환자분에게는 미안하고 나 자신에게는 부끄러운 간호사였다.
그렇게 면회 시간이 되었고 보호자인 아들이 들어왔다. 환자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같이 다리도 주물러 드리고 있는 중에 태건님께서 손가락으로 나와 아들을 가리키며 바깥으로 나가라는 제스처를 취하셨다.
- 아버님 천천히 입술로 말씀해보시겠어요? 입모양 보고 제가 알아볼 수 있게요.
아들이 말했다.
그러자 태건님은 천천히 입모양을 만들었고 아들이 알아들었다.
- 아, 간호사 선생님이 잘해주셔서 밖에 나가서 밥 사주고 오라고요?
아들의 물음에 태건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나는 감동을 받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너무 부끄러웠다. 평소에는 요구하시는 게 많아서 요구하는 것을 해결해드리고 간호하기에도 벅차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그런 나의 마음을 녹여주고 기쁘게 한 태건님의 마음이 담긴 말이었다.
면회를 마치고 나는 내가 하는 간호가 환자분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가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간호가 태건님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행위였다. 이후 마음을 다잡고 '환자분들에게 더 잘해드려야겠다.'라는 마음을 품고 간호를 하게 되었다.
당시 수습 기간도 끝나고 간호사로서 홀로서기 시작한 순간이었는데 태건님께서는 내게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돌봐주고 싶다.'라는, 처음 품은 마음을 잊지 말라고 보람을 선물해 주셨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때 감동을 받아서 환자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느끼며 병마와 싸우는 고된 길에 친구가 되어주는 간호사의 모습을 꿈꾸었고 또 그렇게 되고자 했었는데 2년이 지난 현재, 나는 내가 그린 간호사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지 반성해본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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