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웅
[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외과의 매력은 주말에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슨 소린가 싶지만 평소 주 업무가 회복된 수술 환자를 일반 병동으로 이동시키고 빈자리에 새로운 수술 환자를 받는 일을 하는 외과계 중환자실의 특성상 보통 주말근무의 업무 강도는 평일보다는 덜한 편이다. 하지만 주말이라고 해서 갑자기 아픈 사람이 생기지 않는 법은 없기 때문에 응급실을 경유해서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환자의 경우에는 긴급히 수술이 진행되고 중환자실로 이동해서 치료를 받게 된다.
요즘 주말에는 응급 수술이 많이 잡혔었기 때문에 지난 토요일 오전 근무는 무척 바빴었다. 금요일에 수술받은 환자들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돕기도 했고 중환자실에 계신 환자분들의 피부 상태를 관찰하고 욕창을 예방해주기 위해 정해진 시간마다 체위변경을 해줬으며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자리가 없어서 오지 못하는 환자분들을 받기 위해 서둘러 상태가 호전된 환자들을 일반 병동으로 보냈다. 그 와중에 [1] 섬망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발생해서 혹여나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간호를 해야 했고 응급수술이 잡혀 수술 환자를 받을 준비를 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 할 일을 끝내 놓고 동료 선생님들에게 다가가서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있던 중에 신규 간호사 선생님의 버거워하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 선생님, 왜 이렇게 힘들어 보여요? 뭐 하면 돼요? 알려주세요.
- 저 오늘 너무 힘들어서 퇴사하고 싶었어요. 죄송한데 여기 검사 나갈 게 있어서 나가주실 수 있으세요?
- 알겠어요. 오늘 많이 힘들었죠? 주말인데 주말 같지가 않아서...
- 선생님 내일 [2] 데이도 오늘처럼 희망이 없겠죠? 벌써부터 내일 출근하기가 두려워요.
그 말을 듣는데 신규 간호사 선생님의 막막함이 느껴져서 울컥했다. 그리고 평소에 간호사로서 환자들은 돌봤지만 그에 반해 신규 간호사 선생님의 어려움을 물어봐주고 관심 가지는 데에는 인색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미안했다. 부탁받은 검사를 나가기 위해 환자 확인을 하고 채혈을 하면서 신규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곱씹어봤다.
내일 데이도 오늘처럼 희망이 없겠죠?
그 말이 내게 너무 안타깝게 다가왔다. 쉽게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고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계속 생각했다. 어려웠다. 채혈을 하고, 검체를 검사실로 보낸 후 일을 마치고 간호 기록을 작성하고 있는 신규 간호사 선생님께 다가가서 '오늘 근무 정말 수고했고, 잘하고 있으니까 그만두면 안 돼요.' 라며 그만 섣부른 위로를 건네고 말았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병원을 나선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인다. 특히 친구들과, 연인들과, 가족들과 웃으며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불과 몇십 분 전에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었고 어떤 누군가는 신음할 수 조차 없는, 의식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같은 도시, 같은 시간 속에 너무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현실 사이에서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아픈 사람들은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선생님들은 근무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수많은 불행들을 계속해서 마주쳐야 한다. 모두가 회복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가끔, 아니 자주 상태가 나빠지고 결국은 환자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들에 마주쳐야 할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런 상황들에 노출되어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일을 기쁘게, 즐겁게 해낸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불행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있다면 힘든 와중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처한 상황을 변화시키는 건 어렵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갑작스러운 병의 발병과 같이 개인의 역량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계가 뚜렷하다. 그렇다면 태도를 바꿔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찾기, 나의 할 일들을 끝낸 후 주변 선생님들에게 다가가 하나라도 도와주기, 동료들의 감정을 물어봐주고 공감해주기 등이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한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실천했으면 좋겠다. 나아가 불행에서 희망을 찾을 수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발견하는 게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까.
[1] 심한 과다행동, 환각, 초조함, 떨림 등의 증상이 나타나거나 과소 활동으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심장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내려온 환자들은 상태가 호전되기 전까지 흔히 섬망 증상이 나타난다.
[2] 24시간 곁에서 돌봄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 간호사는 3교대 근무를 해야만 한다. 데이, 이브닝, 나이트 근무로 나뉘는데 각각 오전, 오후, 야간근무로 일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간호사 선생님들은 환자의 친구이자,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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