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형
[The Psychology Times=박진형 ]
우리 모두 태어나보니 사람이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어쩌면 인간의 숙명은 원대한 이상의 실현이나 자연의 법칙을 뒤흔드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고 관계를 맺는 것, 단순히 그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끝없이 타인과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한다.
유소년기에는 정해진 공간에 정해진 시간 동안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섞여야 한다. 그런 이유로 대게 시간이 지나면 더 친한 친구와 덜 친한 친구가 나뉘기 마련이다.
학창 시절 교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대부분 타인과의 관계와 귀결되며 그것이 그 시기에 큰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학교를 떠나고 어른이 되었을 때, 관계에 대한 크고 작은 걱정들이 사라질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관계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지 않고 전과는 다른 이유와 다른 방향으로 다가온다.
관계에 대한 끝없는 고민과 걱정은 정도의 차이일 뿐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슴도치의 딜레마
"추운 겨울, 서로의 온기를 위해 몇 마리의 고슴도치가 모여있다. 하지만 고슴도치들이 모일수록 그들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슴도치들은 떨어져야 했다. 그러나, 추위는 고슴도치들을 다시 모이게 만들었고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된다. 수 차례의 결집과 해체를 반복하면서 이들은 다른 개체들과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사실 고슴도치는 가시를 눕힐 수 있기에 쇼펜하우어의 주장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은 과학적인 주장이라기 보다는 우화라고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상술한 문장처럼 인간들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추운 겨울 날을 헤쳐가는 것과 같다. 추운 겨울, 길에 놓인 고슴도치들처럼 우리 인간들도 홀로는 어떤 것도 헤쳐 나갈 수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을 필요로 하고 그 관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는 때때로 냉혹하고 아픔을 남기며 모든 관계를 닫아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우화 속 고슴도치들의 가시처럼 타인의 말과 행동이 우리를 찌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도망가고 관계를 완전히 리셋(Reset)해버리기에는 너무 지치지 않는가.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이유이든 어떤 방식이든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것이 다른 모습을 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모든 관계는 필요에 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업무상의 관계이든 할 것 없이 인간에게 관계는 필수적이고 필요하다.
대게 업무상이고 공적인 관계에서 거리 조절은 비교적 어렵지 않다. 물론 그러한 관계 자체가 주는 스트레스가 더 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사적인 관계로 갈수록 우리의 마음에 더 큰 비수를 꽂고는 한다.
많은 노래 가사들처럼 우리는 사랑에 웃다가도 사랑에 눈물 흘린다. 혹은 가족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기도 한다. 때로는 우정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이렇게 가깝고 사적인 관계에서 공적 관계보다 더 큰 상처를 입는다. 그것이 너무나도 무거워서 세상에 마음의 문을 닫을 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계에 거리두는 것을 어려워한다. 정이 넘치는 한국인들에게 거리를 두는 것은 다른 문화권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은 '나'를 위해 필요하다.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모든 관계는 때로는 피로감을 남긴다. 건강한 관계는 적당한 거리 유지에서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때가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어떤 다른 가시에도 찔리지 않고 찌르지 않는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적당한 거리 유지가 타인에게 매정하게 행동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이 꼭 필요한 순간이라면 거리가 조정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어차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면 우리를 갉아먹는 관계가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타인과 상호작용하자.
체온을 유지하면서 가시에 찔리지 않는 그 현명한 우화 속 고슴도치들처럼 살아가자.
지난기사
쇼펜하우어. 홍성광 역. (2013).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을유문화사.
외롭거나 혹은 상처받거나 - 고슴도치 딜레마 [정신의학신문]. (2020). URL :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2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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