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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스테르담 ]



하루가 벅찼다.


이 일을 끝내고 저 일을 하는 지경을 넘어서서, 이 일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저 일이 치고 들어왔다. 그 일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누군가의 부재로 넘어오기까지. 화장실을 가야 할 순간이 오면 그제야 내가 한참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 마실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일을 했으니, 화장실도 정말 오랜만에야 가게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담배라도 배워둘 걸. 금단 현상이 모니터로 빨려 들어가는 나를 조금은 더 많이 구해주지 않았을까.


직장인의 하루가 그렇지 뭐.


아침엔 시간에 쫓기고, 낮엔 일에 떠밀리고. 밤이라고 다를까. 나는 일을 마치고 싶지만 낮에 회의로 들여다보지 못한 업무와, 시차가 다른 해외 법인의 스멀스멀한 연락은 밖이 어둑어둑하도록 나를 붙잡아 놓는다. 저녁을 먹지 못해, 손이 떨릴 때쯤. 당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린다. 낮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낱개 포장의 과자 조가리를 한 입 베어 물면, 그게 그렇게 위안이 된다.


별이 잘 보이지 않는 서울 하늘.


늦게 퇴근하면 별이라도 보는 보람이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그래서일까. 발걸음이 빨라졌다. 버스를 탈까. 전철을 탈까. 전철을 타면 깊숙이 내려가는 길이 꽤 멀다. 버스를 타자니 멀리 돌아 길을 건너야 한다. 전철은 좀 더 빠르지만 갈아타야 한다. 버스는 한 번에 가지만, 앉아가지 못하면 영락없이 이리저리 휘둘려야 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을 눈 앞에서 놓칠까 하는 걱정은 여전하다. 그래서 걸음은 빨라지는 것이다.


가만. 나는 왜 이렇게 서두를까.


오늘 하루 충분히 바쁘게 살았다. 촌각을 다투었고, 순간순간 빨리빨리를 외쳤다. 무언가에 쫓기듯 출근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일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밥을 먹었는데. 퇴근길은 좀 천천히 가면 안될까? 발목과 종아리, 허벅지에 힘을 뺐다. 버스를 타든, 전철을 타든 그건 순전히 발길 닿는 대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이 보인다.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그러고 보니, 나의 퇴근길엔 한강이 있었다. 강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스쳤다.


퇴근길은 온전히 나의 시간이다.


직장에서 있었던 좋고 나쁜 일의 기억 보따리를 안고 가긴 하지만, 걸음의 속도를 줄이니 그것은 내 것이 되었다. 왜 진작 이러지 못했을까. 하루 중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없다. 직장과 가정은 모두 공동체 생활이다. 퇴근길만큼, 나 혼자를 만끽할 시간이 또 있을까? 대중교통을 타러 가는 길을 '여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그것들을 놓칠까 하는 조급함도 사라졌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


그 사이사이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여행지의 어딘가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감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주변이 어떠하든, 결국 잠시 눈을 감는 것은 나다. 애써 푸른 바다를 연상하지도 않는다. 그냥 나 자신을 느끼고, 심호흡을 크게 해본다.


천천히 걷는 퇴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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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0-13 07: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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