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
[The Psychology Times=신치 ]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고통의 순간이 있다. 중학생 때였는데 학교에서 돌아와 교복도 벗지 않고 있던 어느 오후였다. 그날도 부모님의 다툼이 시작됐다. 늘 엄마 편이었던 나는 아빠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듯 보이는 엄마의 처지가 불쌍했고 그 상황이 못 마땅했다. 그렇게 엄마를 괴롭히는 아빠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아빠의 화는 점점 커졌고, 결국 그 화의 불씨는 내가 느끼고 있었던 분노의 감정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불을 붙였던 그 순간. 거실에 있던 나는 주방으로 뛰어 들어가 커다란 식칼을 들고 나와 울면서 이렇게 외치며 아빠를 향했다.
‘나, 정말 아빠 죽여버릴 거야’
그렇게 불붙은 분노는 식칼을 들고 분노의 춤을 추었다. 엄마와 아빠의 다툼은 잠시 정지되었고, 온 가족의 눈은 나를 향해 있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들. 아빠의 화를 말리던 엄마의 손은 이제 나를 향했고, 내 손에서 식칼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나는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주 가끔. 사실은 때때로 이 장면이 떠오른다. ‘그때 내가 정말 아빠의 몸에 그 칼을 갖다 대기라도 했다면. 신문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도 남았을 텐데. 경찰서에 잡혀 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내 인생이 지금과 같았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상상 말이다. 그때를 떠올릴 때면 분명 해지는 한 가지는 있다. ‘그때 그렇게 터뜨리지 않았다면 그 후에 정말 더 크고 끔찍한 일이 있었을지도 몰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한다. 정말 어린 시절부터 쌓였던 분노가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일시에 어느 정도는 소멸되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유독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많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것 없이 살다가 어느 날 부도를 맞게 되어 자살을 선택한 사람부터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연을 일주일 남겨두고 결국 세상을 떠난 이까지. 각자의 상황도 나이도 성별도 다양하다. 그렇게 하나둘 세상을 떠나도 나는 ‘개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데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는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내게도 ‘아,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그 날이 찾아왔다. 처음으로 가까운 인연 중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결정을 한 그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날이었다.
5년간 다녔던 첫 직장에서 최저 실적 미달의 이유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퇴사하고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표류하고 있던 2년의 시간 동안 계속 술을 마셨고, 담배를 피웠고, 우울했다. 우울함을 잊기 위해, 또 술을 마셨고, 삭히지도 끄집어내지도 못한 채 내 안에서 계속 곪아가고 있던 분노가 담배 연기에 실려 사라진다고 믿으며 계속 담배를 피웠다. 밤마다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 걸까? 도대체 아무 쓸모도 없는 나란 인간은 이 세상에 왜 태어나 이런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생각하며 ‘괴롭고, 힘들어서 차라리 죽는 게 사는 것보다 편하겠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 하지만 죽을 용기조차 없어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죽지도 못하는 내 신세를 한탄했다. 이런 내 심신의 상태를 자주 SNS에 올렸다. 맥주캔 사진과 함께 우울함을 한껏 녹여낸 문장들로 사람들에게 ‘나를 좀 봐주세요’하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불안한 상태를 감지한 친한 언니가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언니의 도움으로 나는 ‘내가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던 순간이 평생에 단 한 번도 없음을 깨달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행복하지 않지만 늘 남들에게 ‘행복한 척’ 보이며 살아왔음을 2012년 6월의 오후에 홍대에 있던 어느 카페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울증과 이별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내 인생에서 여러 차례 변화의 구비가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3번의 도전 끝에 구본형 변화경영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어 2011년 4월부터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은 하루에 단 몇 분만이라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전혀 돌아보지 않았던 ‘나의 생각과 감정’을 미약하게나마 자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변화는 ‘단 한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다’고 자각하게 되었던 2012년 6월부터 우울증의 고리를 끊기 위해 다양한 심리치료 기법을 경험하게 된다. 글쓰기에서는 보지 못한 더 깊은 내면의 나를 발견하고 자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술과 담배가 필요했고 나의 의지대로 끊을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을 스스로 찾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인 변화가 더욱 절실해졌을 때 데이빗 린치의 <빨간책>의 초월명상을 비롯해 다양한 명상을 경험하게 된다.
2013년 여름에 친구를 따라 명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스님의 법회에 참석하였고 명상을 접하게 되었다. 그때 스님이 안내해 주시는대로 50분을 앉아 있었다.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그 50분의 시간 동안 나는 평생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요함’을 맛보았다. 명상 시간은 마치 짠 바다가 전부인 곳에서 여러 달을 헤매다 만난 한 모금의 맑은 물과 같았다. 그렇게 나를 세 번째 변화로 이끈 명상과 함께 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의 정규 명상 수업과 법회에서 하는 한 번의 명상시간에 참석하는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늘 몸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어제보다 한결 가벼워지고 건강해진 느낌을 들았다.
돌아보니 명상을 하기 전 내 마음은 비슷한 상황에서 놀랍게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이 책은 명상 전에 습관처럼 익혀온 마음의 흐름을 보여주고 명상 이후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내가 변화해온 과정을 기록했다. 성현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내 마음을 바꾸면 된다’고 얘기하지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내 마음을 마음대로 바꾸기’란 정말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스스로 변화시키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고통의 정도가 클수록 내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의지는 고통에 묻혀 그만큼 약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공황장애, 우울증, 평생을 괴롭힌 만성 불면증 등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르게 이끌어줄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나 ‘명상’을 하면 99% 좋아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1%가 있어야 99%가 가능하고 1%가 없으면 확률은 0%로 떨어져 버린다. 1%는 바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나의 의지’이다. 진심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남아 있어야 벗어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우울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었고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상황에 가까워지자 ‘결국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하는 데 이르렀다. 하지만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았고, 다행히 그 도움은 ‘내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직 남아 있을 때 나를 찾아와 주었다. 이 책 역시 지금 어떤 고통이든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쓰고 있는 독자를 위해 쓰고 있다. 거창한 꿈을 가진 누군가가 아니라 단지 남은 인생동안 지금의 고통에서 단 하루라도 벗어나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어쩌면 아주 소박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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