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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신치 ]


1998년 가을 그리고 겨울

집에서 중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다. 10 정거장 남짓 되는 거리였는데 이 버스가 거쳐가는 학교가 많았다. 중고등학교만 적어도 5개 이상이라 학교 가는 길 버스 안은 늘 색색깔의 교복으로 가득 찼다. 드라마 ‘프로포즈’에 나온 배우 원빈의 인기가 한창 높을 때였는데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버스 안에서 모든 여학생들의 주목을 끌었던 원빈 닮은 오빠가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힙합 바지에 이어폰을 끼고 까만색 크로스백을 매고 다녔다. 우리 집에서 학교 가는 길에 첫 번째로 지나가는 학교였고, 그 사람이 내릴 때는 버스 안의 모든 여학생들의 눈동자가 그이를 쫓았다. 나도 수많은 여학생 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 ‘이 사람과 꼭 한번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내 삐삐 번호가 적힌 쪽지를 버스에서 그의 엉덩이 쪽에 걸쳐져 있던 크로스백에 쑤욱 밀어 넣었다. 매일매일 ‘오늘은 연락이 올까’ 틈만 나면 응답 없는 삐삐를 확인했다.



며칠이 지나 수업시간에 드디어 삐삐로 모르는 번호로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왔다. 수업 시간을 마치자마자 공중전화로 달려가 메시지를 확인했다. 버스 안에서 매일 만났던 원빈 닮은 그 오빠였다. 뛸 듯이 기뻐하며 그에게 다시 메시지를 남겼다. 그 후 우리는 몇 번을 만났다. 다행히 그 오빠도 나를 좋아해 주었고, 그해 크리스마스는 그와 그의 친구 그리고 나와 내 친구가 함께 보냈다. 헤어지는 내게 오빠는 벙어리장갑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 날이 우리 만남의 마지막이었다.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이지만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나는 공고에 다니고 있던 그 오빠와 계속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그냥 도망쳐 버렸다. 어느새 이름도 까먹어버렸지만, 버스에서 헤어지며 인사하던 그 장면이 여전히 생생하다.


1999년 봄 그리고 2000년의 겨울

중학교 때부터 했던 영어 모임에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의 제안으로 10 대 10 반팅을 주선했다. 그때 유일하게 연결된 커플은 나와 내 친구들의 절친인 나의 첫사랑이었다. 고등학교 1년 내내 친구사이로 지내다가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여전히 집안은 지옥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만나는 시간만은 지옥을 잊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막내로 살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첫사랑이 내게 쏟는 애정 표현에 비해 무뚝뚝한 첫째이자 애정표현을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내가 그 친구에게 할 수 있는 애정 표현은 참으로 제한적이었다. 아주 많이 좋아했지만, 사귀는 내내 내가 그에 대해 가장 큰 마음을 냈던 건 고작 네 잎 클로버를 만들어 열쇠고리를 선물해 준 게 전부였다. 사실 첫사랑이 바랬던 건 물질적인 게 아니라 '사랑한다' 그리고 '좋아한다'는 말이었는데 그런 말을 꺼내려는 순간에 온 몸이 굳어지고 숨 쉬기 힘들어지는 것 같아 그 말을 입 밖으로 내기가 정말 힘들었다. 연말 불우이웃들에 대한 다큐가 티브에서 방영되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둔 어느 날 2년간 동안 모든 에너지를 내게 쏟은 첫사랑에게 삐삐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안.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 그만 헤어지자.”


메시지를 여러 번 들었다. 눈은 티브이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연인을 생각하며 펑펑 울었다. 미안하고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과의 인연은 끝이 나고 말았다.


2002년 봄과 여름 사이

월드컵으로 온 국민이 흥분해 있던 그 시절. 비밀 연애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부터 나는 계속 첫사랑과 이 사람을 끊임없이 비교했다. 첫사랑 못지않게 잘해주었지만 사귀는 게 부담스러워 결국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도망쳤다. 그렇게 짧은 연애는 끝이 났다.


2003년 가을과 겨울 사이

오랜 시간 친구처럼 지내던 선배와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한달 정도 지나면서 선배에 대한 나의 감정은 급속도로 식었고 다시 관계로부터 도망쳤다. 나는 집에 틀어 박혀 있었고, 선배로부터 오는 문자와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 그렇게 이번 연애 역시 짧게 끝났다.


2010년 겨울

일을 하다가 알게 된 학교 선배. 회사 일로 매일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나는 매일 저녁이 다가오기 전에 술을 사줄 선배를 찾았다. 자주 내게 술을 사 주던 선배 중 한 명이었던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 술을 한잔 하고 가끔 노래방에 가면 나는 좋아하는 마음을 박혜경의 노래 ‘고백’으로 표현했다.


내 오래된 친구인 널 좋아하게 됐나 봐 

아무렇지 않은 듯 널 대해도 마음은 늘 떨렸어 

미소 짓는 너를 보면 우리 사이가 어색할까 두려워 

아무런 말하지 못한 채 돌아서면 눈물만 흘렸어 

말해야 하는데 네 앞에 서면 아무 말 못 하는 

내가 미워져 용기를 내야 해 후회하지 않게 

조금씩 너에게 다가가 날 고백해야 해 

처음 너를 만났던 날 기억할 순 없지만 

그저 그런 친구로 생각했고 지금과는 달랐어 

미소 짓는 너를 보면 우리 사이가 어색할까 두려워 

하루 종일 망설이다 헤어지면 눈물만 흘렸어 

말하고 싶은데 사랑한다고 아무 말 못 하는 

내가 너무 미워 용기를 내야 해 후회하지 않게 

조금씩 너에게 다가가 날 고백할 거야


하지만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좋아한다’고 실제로 고백한 적은 없다. 그렇게 1년 여를 술친구로 만나다가, 선배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2013. 3. 17. 연애에 대하여

내 첫사랑을 제외한 모든 연애 패턴이 어쩜 이리도 같을까.


1. 연애를 시작한다.

2. 연인이 되고 하루하루 시간이 가면서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점차 사라진다.

3. 한 달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상대에게서 도망친다.

4. 일방적으로 관계를 정리하고 도망친다.

5. 이유를 말하기는커녕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은 채 잠수를 탄다.

6. 그렇게 연애가 끝난다.


2013년 봄부터 2014년 봄

SNS에서 한 사람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지인의 SNS에서 서로 댓글을 남기며 깔깔대며 친해지고 있었다. 합정동에 있는 카페에서 ‘인재 박람회’라는 행사를 기획했고, 처음으로 그 사람의 얼굴을 봤다. 그때 이후로 이 사람은 지인들과의 모든 모임을 내가 일하고 있는 카페에서 했다. 그렇게 조금씩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고 있었고 카페가 아닌 공간에서 따로 만나는 날이 점차 늘어났다. 처음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거의 매일- 만나게 되어 매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곧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 가서 3개월간 살 계획이었기 때문에 ‘제주도로 가면 헤어질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힘들었지만 자주 만났다. 


그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울을 떠나 도착한 제주. 혼자 지내면서 햇반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나를 위해 손수 만든 반찬을 제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2-3주에 한 번씩은 제주도로 와서 함께 여행을 했다.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와서 제주에 가기 전에 따라 갔던 명상센터에서 명상을 시작했고, 본격적인 연애도 시작되었다.


연애 초기인 이 때는 일이 늦게 끝나고 술을 마신 날 밤에 연인을 잠깐이라도 만나면 쌓여 있던 어떤 감정이 폭발해 그를 끌어안고 목 놓아 우는 날이 많았다.


2019년 현재

여전히 나는 이 사람과 현재 진행형이다. 함께 명상하며 지낸 시간이 벌써 7년이 되었다. 지금은 둘이 있을 때 시도 때도 없이 입술을 쭈욱 갖다 내민다. 그런 나를 연인은 ‘뽀뽀 귀신’이라 부른다. 웃으며 대화하고 감정 표현을 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아직 하루 종일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전부 얘기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사건들은 얘기하는 정도의 수다쟁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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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8-17 07: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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