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
[The Psychology Times=신치 ]
1999년 봄
“안돼. 고등학생인데 이제 공부해야지. 가지 마!”
지난겨울부터 가기 시작한 도서관에서 하는 고등학교 동아리인 ‘독서토론회’에 더 이상 참석하지 말라는 엄마의 명령(?)이 떨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엄마 말은 거스르지 않는 편인 나는 소위 말하는 ‘착한 딸’이었기 때문에 나는 가고 싶은 마음에 몇 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가고 싶은 억울한 마음에 애꿎은 눈물만 펑펑 쏟고 말았다.
2001년 여름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자정이 가까워져 있다. 집 1층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엄마가 가게 문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노동으로 고된 하루를 보낸 엄마와 고3 입시생의 하루를 보낸 내가 만나 잠들기 전에 집에 한 박스씩 사놓은 맥주 버드와이저나 밀러를 한잔씩 마시곤 했다.
엄마와 함께 마신 맥주가 고3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 중의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 봄
모두가 잠든 새벽.
(작은 방) 나는 맥주를 마시고 있다.
‘스르륵. 쿵. 스르륵. 쿵’
(큰 방) 방에 있던 큰 나무 책장을 화장실로 옮기고 있는 엄마.
“엄마!!!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그리고 그렇게 큰 책장을 화장실에 넣어서 뭐하게?”
“이거 화장실에 넣고 화장실에서 쓰는 물건 정리하게!!!”
“거기다 넣을 생각하지 말고 제발 좀 버려!!!”
‘쾅!!!!’
(나) 문 닫고 들어가는 소리.
2004년 아빠가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은 다시 같이 살기 시작했다. 엄마는 2010년 첫직장인 외국계 대기업을 그만둘 때 5년간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용대출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던 나의 재정상태를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후 엄마는 카페 알바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를 매우 못마땅해했다. 그렇게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을 못마땅하게 보는 엄마의 끊임없는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나는 ‘인정받지 못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괴감은 모든 말에 독기를 담아 엄마에게 되돌려 주었다. 있는 힘껏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 두 마리처럼 엄마와 나는 가까워질수록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2017년 여름
'엄마와 이렇게 살다가 죽겠다' 싶어 시작한 독립프로젝트를 통해 30명의 지인의 도움을 받아 엄마와 다시 떨어져 산 지 5년 차가 되었다. 연인과 나는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 엄마 집을 찾았다. 오래간만에 만난 엄마와 딸이 평화로운 대화가 이어지다가 '정리'로 대화가 이어졌다. 엄마 집의 베란다 구석에는 치킨집할때 쓰던 물건들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채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나와 동생들은 '제발 버리라'고 하고, 엄마는 '언젠가 쓸 데가 있을 것'이라며 버리기를 거부했다. 이 주제로 대화의 불꽃이 번지는 순간 나는 욱해서 엄마에게 화를 내고 있었고, 그때 옆에 있던 연인은 나의 팔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Calm Down’을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래. 화내지 말아야지’하고 숨을 내쉬었다.
2018년 여름
회사 연차를 내고, 엄마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엄마와 함께 산책을 갔다. 20여 분 동안 걸으면서 근황부터 어린 시절 있었던 일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집 아이들의 ‘숙원사업(?)’인 엄마 집 정리로 대화가 이어졌다. 늘 이 대목에 참지 못하고 욱하는 나였는데, 어느새 엄마와 웃으며 대화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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