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
[The Psychology Times=신치 ]
1998년 시험 치기 전날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책상 위가 너무 지저분하다. 책상을 치우기 시작한다. 오래간만에 활발히 움직이니 피곤하다.
‘잠깐 쉬었다가 공부해야지’
침대에 눕는다. 잠이 든다.
‘아차! 내일이 시험이지!’
눈을 뜨니 새벽 1시. 그제야 공부를 시작한다.
(똑딱똑딱-시계 초침 움직이는 소리) 1시간 경과 후.
눈꺼풀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다시 잠이 온다. 잠을 이기지 않고, 우선 잔다.
2004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대학생활의 목표를 정했다.
‘아는 사람 많이 만들기’
과 학회 활동, 동아리 ‘팬플룻 부는 음악 동아리’ 가입, 근로장학생 신청, 자연과학 연구실 연구원 신청, 학생회 등. 학교에서 해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활동을 했다.
작은 캠퍼스라 아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쳤다. 그래서 같은 과 친구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가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긴 한거니?”
‘얏호! 이 정도면 성공한 건가?’
하지만.. 성적은 처참하다. 전공에 A가 하나도 없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F도 없다. 졸업 평균은 3.41정도였다. 내 성적증명서에서 유일하게 A를 받은 과목은 ‘동양철학의 이해’이다.
2010년 보험회사에서 영업 중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중요한 것과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것에는 늘 차이가 있었다. 나는 어떤 면에서 고집 불통인 사람이었고, 남들이 뭐라 하던 상관없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았다.
보험설계사보다는 ‘재무설계사’란 이름으로 시작하게 된 보험회사 영업. 나의 고객이 내게 기대하는 것은 ‘나의 자산을 잘 관리하고 만드는 데 전문적인 지식과 도움을 줄 사람’ 또는 ‘보험 전문가’였다. 회사 내에서 소위 잘 나가는 선배들은 ‘고객을 만나는 틈틈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격증도 따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만든 전문성으로 고객과의 신뢰를 만든 분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이 일을 잘 하고 있느냐 보다는 내가 이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했고 그것에 집중했다. 내가 생각한 이 직업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매일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와 밥을 먹고 술이나 차를 마신 사람들 중에 내게 상담을 요청하고, 보험을 가입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한해 한해 보내면서 만날 사람은 줄어 들었고, 보험 실적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최저 실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퇴사 위기를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왜 나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013년 크리에이티브 살롱 9 카페 운영팀 멤버
카페에 출근하자마자 오픈 준비를 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표면적으로는 카페 운영이었지만 내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공간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카페에 있는 시간 동안에 손님이 메뉴 주문을 하면 메뉴를 만들고 가져다 드리는 시간 외에는 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1인 기업가를 위한 공간인 크리에이티브 살롱 9 운영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한정식집 프랜차이즈를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이끌어 가고 있는 선배도 있었다. 선배가 내는 의견에 자주 반대 의견을 내곤 했다.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나만의 독특함’이라 생각했고, 내가 내는 의견이 건강한 토론을 위한 의견 제시라기보다 ‘비판을 위한 비판’에 가깝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살롱 9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일 때 '프랜차이즈를 저렇게 성공시킨 선배도 있었는데 왜 우리는 잘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했을 뿐 '나도 살롱 9가 문을 닫는데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2019년 현재, 과거의 나를 보다
요즘 회사에서 ‘소규모이지만 개인 브랜딩을 잘하고 성공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 대표들’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성도 좋고 운영을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다 보니 이들만의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공통점에 과거의 내 모습을 대입해 보게 된다.
같은 직종에서 일한 지 십여 년 이십여 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매주 교육을 들으러 다니고 공부를 하는 이 분들을 보면서 보험 영업을 하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제야 깨닫는다.
‘아.. 매일 밤 술 마시고 흥청망청하던 그 시간에 나는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든, 보험 상품 공부든.. 공부를 해야 했었구나.’
한 번 오는 손님에게 최선을 다해 그분이 다시 오게 만들고, 또 그분으로 인해 소개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대표들의 말에 크리에이티브 살롱 9 카페를 떠올린다.
‘아.. 그때 나의 귀와 눈은 노트북 모니터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향해 있어야 했구나.’
사람마다 그리고 시기마다 지켜야 할 본분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과거의 나는 늘 당시에 내게 주어진 위치에서 정말 필요한 역할을 찾아서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게 니가 해야 할일이란다'라고 얘기를 해 줘도 '내가 생각하는 역할'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마이 웨이' 내 생각대로만 움직였다. 귀도 눈도 열려있는 듯 했지만 사실은 까맣게 닫혀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해 주는 말도 들리지 않았고 스스로를 바로 보는 것도 되지 않았다.
명상을 하고 난 뒤에 정말 좋은 점 중 하나는 예전에 비해 스스로를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의 내 모습까지도 제대로 보고 성찰할 수 있게 된 점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평생 모르고 살다가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