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
[The Psychology Times=신치 ]
2011년 겨울
처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2년째 직장생활 대신 알바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매일매일 엄마와 전쟁 중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알바나 하며 그렇게 살거니? 남들은 지금 나이면 다 직장 다니고 결혼할 텐데”
엄마는 카페에서 알바나 하는 내가 못마땅하고, 나는 그런 엄마의 잔소리가 더해질수록 삶의 의욕을 잃어갔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 괴로웠고 괴로워서 또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는 내가 또 꼴 보기 싫은 엄마는 다시 잔소리 폭탄을 퍼붓고, 나는 ‘나라는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는 느낌과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자괴감에 빠진다.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아. 이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지금 내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며 또 술을 마시고, 베갯잇을 적시며 잠이 든다.
2012년 8월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있던 상황에 페이스북에 힘들다고 글을 올렸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없고, 사람들의 기대는 내 마음과 또 다르고.
준비하고 있던 이벤트는 파티는 내게 부담으로 다가오고.
일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글에 한 선배가 댓글을 달았다.
"토닥토닥"
어떤 말도, 조언도 아닌 '토닥토닥'..
눈물이 난다. 그냥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위로받는 느낌.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그냥 아무 말없이 내 손 잡아주고, 등을 토닥여 주는 그런 위로의 제스처인가 보다.
2012년 8월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보게 된다.
'괜찮아?'
그리고 스스로에게 답한다.
'모르겠어.'
누군가로부터 거부당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대해 유독 민감하다. 이런 민감함은 내 삶의 전반에 나타나는 것 같다. 친구들에게 보낸 문자나 이메일에 대한 답장이나 반응이 없을 때, 페이스북에서 내가 쓴 글에 댓글이나 '좋아요'를 신경을 쓰는 것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 혹은 '거절당하고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픈 욕구'에 대한 반증인 것 같다.
내가 준비한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처음에 사람들의 반응이 좋거나 칭찬을 받을수록 더 재미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호응도가 떨어지면, 나의 재미도 반감된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자극제를 찾게 되며 이는 새로운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그로 인해 이전의 프로젝트들은 관심에서 멀어지고, 점차 책임감의 무게도 가벼워지게 된다. 어쩌면 '실험'이라는 단어로 ‘1회성에 그치고 있는 나의 끈기 없음’이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부감. 나는 무엇을 거부당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어릴 적의 나를 떠올려보자. 엄마의 애정이 부족했던 것 같긴 하다. 엄마를 한번 안을라 치면, 덥다고, 저리 떨어지라며 나를 밀쳐내던 엄마. 나의 욕망, 욕구 등을 표현할 길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늘 가슴속으로 삭히기만 했다. 첫째인 내가 엄마 뱃속에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행복하지 못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낸다고 생각했고 내 존재에 대한 죄책감이 점차 커졌다. '나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였고 그런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보상은 착하고 좋은 딸이 되는 것이었다. 엄마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그런 착한 딸.
피아노, 주산, 웅변, 영어, 수영, 각종 학습지 등 내게 요구했던 모든 것들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해 낼 수밖에 없었다. 그중 진심으로 재미있어서 했던 것은 영어 정도? 나머지는 적당히 엄마에게 들키지 않고, 혼나지 않을 정도로 하면 되었다. 어른이 되어 문득문득 어린 시절에 엄마가 가르친 것들이 쓸모가 있어지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늘 내게 얘기했다. "그때 엄마가 시켜서 하길 잘했지?"라고. 마지못해 나는 '그래'라고 답한다. 착해야 했으니까. 엄마가 화낼 상황을 만들기 싫었고, 엄마가 화를 내면 엄청 큰 공포감에 휩싸이곤 했다. 엄마는 늘 화를 내면서 다그쳐 물었고, 내게 즉각적인 대답을 바랐다. 그때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대답을 해도 혼 날게 뻔했으니까.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화를 내고 다그치는 엄마를 점차 파악하게 되면서, 나는 눈치 빠른 아이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화내지 않고, 적당히 잘 넘어갈 수 있는, 즉 엄마가 듣고 싶은 대답이 무엇인지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나날이 발전했다.
머리가 크고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질수록 엄마와의 대화는 줄어들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엄마와 대화할 소재'가 없었다. 은연중에 내 머릿속에는 '엄마는 나를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내게 엄마 역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엄마가 뭔가 이야기를 하자고 하면, 건성으로 듣게 된다.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데'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결국 비난받고 싶어 하지 않는 이 감정들의 뿌리는 또다시 엄마에게 귀결된다. 어린 시절에 엄마에게 상처받은 내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덜 상처 받기 위해, 계속해서 듣는 귀를 닫고 점점 더 두터운 벽을 만든다. 비난을 들어도 스며들지 않고 흘려버릴 수 있게, 남의 감정에도 영향받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 벽이 이렇게 두터워지는데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벽이 한 장씩 더해질 때마다 진짜 내 모습을 숨기는 가면이 하나씩 씌워졌다.
진짜 나를 만나려면 얼마나 많은 가면을 벗어야 할까. 나도 모르는 수도 없이 씌워져 있는 가면들을 싹 다 벗겨버리고 싶다. 이제는 상처 받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늘 언제 시한폭탄이 터질지 모른 채 웅크리며 살아온 나를 선배가 했던 말처럼 토닥여 주고 싶다.
2017년 7월
지인의 소개를 통해 온라인 마케터로 회사에 들어갔다. 회의 시간에 의견을 말하면 그것에 대해 ‘안 된다’고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은 주로 상사다. 직장 상사가 내 의견에 반대되는 말을 하면 유독 마음에 거부감이 일었다. 울컥울컥. 철커덩. 평화롭던 마음의 바다에 큰 파도가 지나간 듯 ‘거부당한 것’에 대해 잔잔하던 마음이 요동을 친다. 순간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일그러진다. 남들은 알아채지 못할 수 있지만 내가 스스로 느끼는 건 그렇다. 그뿐만 아니라 상사가 시키는 일에 대해서도 간혹 그랬다. 내가 생각하기에 필요 없는 일인데 시키면 내 마음 상태와 표정은 또 일그러지고 만다.
‘왜 굳이?’라는 생각이 온몸으로 표출된다고 할까.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요동치는 마음으로 '뚱하게' 있었을 텐데. 요즘은 이렇게 요동치고 있는 마음을 자각하고, 차차 가라앉힐수도 있게 되었다.
2019년 현재
요즘은 직장 상사가 무슨 말을 하든 마음이 요동치는 일이 별로 없다. 상황은 예전과 같지만 내 마음은 평온하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내 의견에 반대하는 말은 듣자마자 수긍하는 편이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무슨 일을 시키든 바로바로 예스다.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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