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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하지영 ]


어릴 적 나의 꿈은 몽상가였다. 뭐 하는 직업인지는 당연히 모른다. 어린 나이에 그저 두루뭉술한 환상을 그렸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몽상가들 같은 프랑스 영화를 좋아했고 예술인들의 문화와 사는 방식을 선망했으며 자유가 구체적으로 뭔지도 모른 채 어른의 정체성으로 보이는 자유로움을 갈망했다. 하지만 환상이 머리에 가득 찬 그 시기, 입시를 준비하는 한국의 흔한 고등학생 한 명으로써 나의 갈증을 채워줄 건 아무것도 없었고 환상과 현실의 괴리를 타협하는 방법 이어봤자 영화나 책으로 그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뿐이었다.

 

그 시기를 지나 지금의 내가 있다. 나는 훨씬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고 머릿속에 환상 이어봤자 로또에 당첨되면 뭘 할까, 이 정도뿐이다.

즉, 어른이 되는 과정은 환상을 지워가는 일이다. 로망을 없애고 꿈을 타협하며 성격을 죽인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성 없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면, 남들에 있어 소문의 중심이 되고 싶지 않다면 내 마음 가는 대로만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헤어질 결심’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서로 사랑에 빠진 극 중 탕웨이와 박해일은 말 그대로 환상 속의 로맨스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안개‘처럼 우리 손에 잡히지 않고 금방이라도 ’붕괴’될 것 같았으며 애초에 없었다 친 셈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들이 살아온 삶은 너무나도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고, 감정으로만 결실을 맺을 수 없는 현실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애초에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로써 분명한 형태를 가진 채 존재했고 현실의 삶보다 존재감이 컸다. 환상과 현실은 다른 지구 위에 살고 있지 않다. 감당하기 버거워 현실로 가져오지 않은 것들의 가치는 ‘헤어질 결심’만으로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문득 드는 바람 같은 감정을 애써 버리고자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명대사가 있다.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마음을 잔뜩 떼어내다간 나중에는 남는 게 없단다, 그럼 새로운 인연에게 내어줄 게 없지. 그런데 아프기 싫어서 그 모든 감정을 버리겠다고? 너무 큰 낭비지.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단 한 번 주어진단다, 지금의 그 슬픔, 그 괴로움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마냥 철없게만 느껴지는 바람 즉 감정은 본인이 어떠한 환경에 처했는지 개의치 않고 실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온몸을 던져 불사르든 관계에 결별은 선언하고 괴로워하든 매 순간 나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했다면 추후에 어떻게든 성장한다. 하지만 뒷감당이 무서워 피하려고만 든다면 남는 것은 후회 혹은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미완성된 경험일 뿐이다.

 

어릴 적 가진 프랑스에 대한 환상은 대학생이 된 후 프랑스로 여행을 다녀오며 어느 정도 그 환상이 해소되었고 예술인의 삶에 대한 환상은 직접 예술과 관련된 일에 뛰어들어 보며 몸소 체험해 보았더니 궁금증이 사라졌다. 그러고 나면 내가 해야 할 다음 단계가 보인다. 환상을 현실과 타협 보는 법은 둘 중 하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실컷 둘 사이를 간 보는 것이다. 망상과 같은 생각이 곧 현실의 일부가 되고 삶이 되어 결국 나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으로 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과 꿈을 포함한 어떤 대상도. (주식도.)

우리는 기대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책 속 완결된 문장에선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고 삶 속 결말이 있는 경험은 주체의 능동성을 읽을 수 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닳아 감정이 무뎌져 버리기 전에 충분히 기대하고 실망하고 창피해 하고 기뻐해 환상과 현실의 괴리를 견딜 수 있는 담력을 길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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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7-29 22: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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