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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유세웅 ]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근로자의 날에 근무를 했다. 병원에는 24시간 아픈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간호사는 쉴 수가 없다. 요즘엔 특히 아픈 사람들이 더 많다. 출근했더니 풀 베드에 ECMO(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체외막 산소 공급장치)를 하고 있는 환자가 3명이나 있었고 이에 질세라 CRRT(continuous renal replacement therapy, 지속적신대체요법)를 하고 있는 환자도 3명이 있었다. 이러다가 병원에 있는 ECMO, CRRT기계를 모두 다 가져오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물품을 다 세고 인계를 받으러 담당 환자 곁으로 갔는데 나이트 근무를 한 동기의 표정이 어두웠다. 밤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니 수술받은 환자가 밤새 피가 그치지 않아 수혈을 계속했는데도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흉관으로 배액 된 양을 보니 심상치 않았다. 인수인계를 마칠 때쯤 전공의 선생님이 환자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


- 아침 헤모글로빈 수치가 어떻게 되나요?


- RBC 3 unit 수혈했는데도 헤모글로빈 6.8입니다.


- 배액은 많이 됐나요?


- 네. 밤동안 bloody 한 양상으로 왼쪽에서 약 600cc, 오른쪽에서 약 300cc 배액 됐어요.


환자 상태를 확인한 전공의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진다. 이내 교수님과 통화를 했고 곧 처방이 났다. 수혈 처방이 났는데 수술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처방으로 났기에 전공의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 선생님 혹시 환자분 수술실로 이동하나요?


- 네 그래야 할 거 같아요. 보호자 연락해주시고 혈액은행에 전화해서 처방된 피 전부 타다 주세요.


아직 환자 사정도 못했는데 급한 상황이 닥치다 보니 마음이 분주해졌다. 또 환자를 수술실로 보내야 하니 챙겨야 할 것도 많았다. 정신 차리고 하나씩 해결하려고 하는데 마침 동료 선생님들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심장이식을 받은 환자가 Arrest가 났다.


심폐소생술 프로토콜대로 심장압박을 하고,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넣어주고, 심장을 잘 뛰게 하는 약물도 투여했는데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웠고 하나라도 더 도우려고 했지만 내 담당 환자 상태도 좋지 않았기에 내 담당 환자 곁을 떠날 수 없었다.


담당 환자를 수술실로 올려 보내고 정리를 하고 있을 무렵 낯익은 보호자 분들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감염 관리를 위해 보호자 면회를 1명으로 제한하는 중환자실에서 보호자 분들이 한꺼번에 중환자실로 들어오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이내 슬픈 현실로 다가왔다. 갑작스레 환자의 죽음을 마주한 보호자분들의 슬픔과 오열이 중환자실을 뒤덮었다.


예전에 심장이식을 받기 전 좌심실 보조장치를 하고 계실 때부터 돌봐드렸던 환자분이었기에, 그래서 심장이식을 받고 나서 첫인사를 건넸을 때 정말 다행이라고, 불안해하지 마시고 얼른 회복해서 일반병동으로 올라가자고 말을 했었던 나였기에 환자분의 죽음을 마주하며 나 역시도 감정적 동요가 일어났다. 혼란스러웠다.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자주 못 가며 환자 한 명을 살리려고 전력을 다했는데도 결국 살릴 수 없었다는 것은 가족들에게나, 의료진에게나 큰 좌절을 느끼게 했다. 슬프고 속상했다.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실에서 출혈을 멈추게 하는 수술을 받은 담당 환자분이 중환자실로 내려왔다. 피가 나면 안 돼서 환자의 혈압을 다소 낮게 보자고 했고 바로 진정약물을 달았다. 추가로 수혈을 더 하고 배액관으로 나오는 양상을 봤는데 다행히 피가 많이 멎는 것을 확인했다. 환자의 상태가 괜찮아지는 것을 확인한 전공의 선생님은 밤새 환자 옆에서 밤을 새우고 오전에 수술까지 참여했기에 많이 피곤했는지 의자에 앉은 채 기절했다.


인수인계 시간이 되어 오후 근무 번 선생님이 출근했다. 인계를 드리고 못한 일들을 끝낸 후 병원을 나서는데 중환자실과는 다르게 밖에 날씨는 너무나 맑고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근무를 마친 내 감정은 우울하기도 했고 배가 고프기도 하고 잠도 자고 싶었다. 아픈 사람들이 줄었으면, 아니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불행을 마주하는 순간도 줄었으면, 없었으면 좋겠다. 이번 근로자의 날은 참 아픈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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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8-12 16: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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