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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 흐아아'


중환자실에 출근했을 때 구분하기 힘든 아기의 울음소리가 중환자실에 울리고 있었다. 아기 환자 주변을 가보니 잠투정을 부리는 아기와 달래주며 잠을 재우려 애쓰는 간호사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간호사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8시간 동안의 고단함이 눈빛에서 느껴졌다.


그 날 담당하게 된 환자를 보니 진정제를 사용하면서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 아기 환자, 그리고 잠투정을 부리고 있는 아기 환자를 보게 되었다. 아직도 투정을 부리고 울고 있는 아기를 겨우 어르고 달래서 재운 뒤에 겨우 인수인계를 할 수 있었다.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있는 아기 환자를 간호한다는 건 성인 환자에 비해 좀 더 세심함과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 환자를 돌보게 된다. 나도 이제 막 신규 간호사 딱지를 떼어내고 아기 환자를 돌보게 되었는데 책임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아직 마음이 쓰이고 걱정이 되셨는지 선뜻 찾아오셔서 당부의 말을 남기셨다.


'선생님. 아기 환자는 엔도(Endotracheal tube, 기관 내관) 빠지면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날 수도 있으니까 잘 봐야 돼요. 모르는 거 있으면 바로 물어보세요.'


어느 정도 긴장감을 가지고 일을 하니 약물용량도 한 번 더 확인하고 몸의 이곳저곳 꼼꼼히 확인했다.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 아기 환자 상태를 확인한 후 곤히 자고 있는 아기 환자를 돌보러 갔다. 달고 있는 약물을 보니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TPN(Total parenteral nutrition, 완전 비경구 영양)만 중심정맥관으로 들어가고 있는 상태였고 이마저도 분유를 잘 먹고 일반병동으로 이동하게 되면 제거할 예정이었다.


잠이 들었던 아이는 배가 고팠는지 잠에서 깨어 밥을 달라고 울었다. 분유를 만들려고 젖병을 챙기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기구가 보였다.


배앓이방지젖병에 분유를 타고 중탕하는 중

젖병 안에 통기시스템이 배앓이를 방지해주는 것 같은데 평소에 이런 걸 자주 접하지 못하기에 신기했다. 분유를 적절한 온도로 맞춘 후 배가 고파 울고 있는 아이에게 줬는데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젖병을 빠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배고팠을까. 분유를 먹이고 있는 중에 책임간호사 선생님께서 한 가지 정보를 가르쳐주셨다. 젖병 입구를 자세히 보면 미세한 구멍이 있는데 젖병 안에 공기를 빼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멍이 위로 향하게 한 후 아이에게 젖병을 물려야 함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운다고 무조건 밥을 주면 안 되고 처음에는 3시간 간격으로 이후 양을 늘리면서 점점 밥을 주는 간격을 길게 해야 밥 먹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정말 아이를 위해 세심하게 제품이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이 모든 정보를 잘 알고 계시는 엄마이자 간호사인 선생님들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같은 공간에서 아직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진정약물을 끊지 못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회복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과, 잠투정도 부리도 분유도 잘 먹고 중환자실이 떠나가게 우는 아이의 모습이 대조되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잔다는 것이 어떤 아이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목격하면서 아이로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잦은 간격으로 밥을 줘야 하고 보채는 아이를 달래며 잠을 재우는 일은 여전히 고단하고 익숙지 않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내가 간호사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의 표현임은 분명했다.


면회 시간이 되어 아이의 아버지가 들어오셨는데 아이는 평소 집에서도 잠에서 곧잘 깨고 잘 울었다고 했다. 겨우 달래서 잠을 재우면 몇 분 안 지나서 다시 깨서 우는 바람에 육아 초반에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마침 면회 시간에도 잠투정을 부렸던 탓에 간호사 선생님들 정말 수고 많으시다며, 아이가 아픈 게 마음이 아프면서도 중환자실에서 회복되고 있는 아이의 시간들이 부모인 자신에게는 짧지만 달콤한 방학처럼 여겨진다고도 하셨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게다가 어린아이가 수술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을 텐데도 면회 시간에 매번 들어오셔서 아이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눈빛으로 바라보시고 또 달래는 아버지의 모습이 애틋해 보였다. 아이를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모님의 사랑은 이토록 아름답고 숭고함을 깨닫는다.


나도 언젠가 아빠가 되는 순간이 오면 아이의 존재 자체로 기뻐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중환자실에서 아이를 돌보는 이 모든 순간들이 훗날 필요했던 순간이었음을 깨닫는 때가 있을 텐데 당연한 것은 없음을 기억하면서 먹고 보채고 우는 그 모든 순간들도 품어줄 수 있는 아빠가 되어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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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8-26 15: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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