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
[The Psychology Times=루비 ]
우리나라의 포털 뉴스 댓글 창을 볼 때 가끔 남녀 편가르기가 정말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가족부를 욕하는 글, 왜 남자만 군대에 가냐는 글, 조롱과 비하를 섞은 다른 성별에 대한 모욕적인 글 등 한숨이 절로 나오는 글들이 많다.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무의식적인 학습에 의한 것인지 내가 여교사라 그런지 여학생들은 안 그러는데 재작년에 일부 남학생들이 선생님은 남녀차별한다고 불만을 토로할 때가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과제를 해오지 않거나 장난이 심해서, 그밖에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할 때 혼을 내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여학생들을 끌어들이며 남녀차별이라고 성토를 해댔다. 이전에는 그럴 때마다 그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내가 했던 교실 속 반례 되는 상황을 쭉 나열하고 화를 내거나 끌려다니는 듯한 애원조로 말했었고 별 효과가 없었다.
나에게도 그러한 것들이 일종의 약한 수준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는데 이번에 6학년인 우리반 남학생이 또다시 선생님은 남녀차별한다는 말을 꺼냈다. 상황은 이렇다. 우리는 월,수,금 점심시간에 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트램펄린을 타러 가는데 그날은 전날 공개수업을 무사히 치른 걸 칭찬하는 뜻에서 1시간 더 타기로 했었다. 그런데 남학생이 3교시에 타자고 했고 나와 여학생은 점심시간에 이어 6교시에 타는 게 더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여학생 편든다며 남녀차별이라고 한 것이다.
이전에 <분홍 원피스를 입은 소년> 책을 읽고 양성평등에 관해 토론도 했던지라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이 남학생의 태도에 화가 났다. (남학생은 책을 끝까지 읽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예의에 굴복시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선생님은 00(여학생)을 편들어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신발을 갈아신고 왔다 갔다 하면 비효율적이고 번거로워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야. 너도 네 나름의 생각이 있고 의견이 있겠지만 때론 다수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도 있는 법이야. 만약 계속 그렇게 주장한다면 이렇게 시간을 끈만큼 트램펄린 타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어.”
그리고 우리반이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할 때마다 기록하는 머쓱일지에(타임아웃 5분 후 기록, 기록이 3번 모이면 칭찬도장 3개 삭제, 기록이 6번 모이면 부모님 연락) 적어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남학생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잘못을 반성하는 통에 기록은 하지 않았다. 참고로 작년에는 머쓱일지를 종종 기록하곤 했는데(작년에 이어 올해 이어서 연임) 올해는 학생과의 협상과정에서 단 한번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학생과 함께 의견을 나누며 남녀차별이란 “지금 네가 우는데 선생님이 남자가 왜 울어?라는 말을 하지 않지? 그런 게 바로 남녀차별이야. 남자는 울면 안 돼. 여자는 분홍색이 어울려. 무거우니깐 남자가 들어 같은 말들. 이제 좀 마음이 풀렸니?”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요 며칠간은 이 남학생은 다시는 남녀차별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편 남학생 생각도 일리가 있긴 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그러고 보니 남학생은 왜 3교시에 가자고 했는지 이유를 들어보지 않았다. 어쩌면 그동안 마음속에 쌓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번엔 남학생의 의견도 끝까지 들어보며 존중해야겠다고 반성한다.
교육이란 정말 쉽지가 않다. 책을 읽고 한 양성평등 토론 수업이 실제 삶과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점도 아쉬웠다. 뭔가 좀 더 세련되고 완벽한 방법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토론‧토의 과정을 거쳐 합의 과정을 거치거나 적합한 사례를 들고 와 공감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설득하여 생각을 교정하는 방법인 것 같은데 아직 교사로서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그리고 학년성에 따라 또 다르기 때문에 지금 우리반은 6학년이라 설득으로 대화가 통했지만, 재작년 3학년 학생들같은 경우는 정말 소 귀에 경 읽기 같았다. 결국 시간의 부족으로 교사의 권위에 학생들을 굴복시킬 때가 있다.
한 치의 차별도 없는 완벽한 공평함이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중요한 건 탄탄한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한 발짝씩 내어주는 양보의 덕목이 필요한 건 아닐까? 학교에서 이해와 수용, 배려의 문화가 확산되기를 바라며 좀 더 전문성 있는 교사가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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