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우스
[The Psychology Times=페르세우스 ]
EQ(Emotional Quotiont)를 키우는 교육 3 : 아이에 대한 진짜 관심을 가질걸(소통)
마음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나오는 배려이다. - 메난드로스 -
심리학 용어 중에서 ‘VIP 신드롬’이란 말이 있습니다. 의료용어의 하나로서 중요한 환자에게 잘해주려다가 오히려 더 나쁜 결과가 생기는 것을 뜻합니다. 조금 더 쉽게 생각하면 잘하고 싶은데 일이 계속 꼬이는 상황을 뜻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가 자주 있습니다. 아이에게 잘해주고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하지만 정작 엉뚱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죠. 부모에게 내 아이는 정말 소중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다 보면 오히려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잘 노는 아이를 억지로 앞에 앉혀서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읽어주거나,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교육이라지만 아이의 성향이나 인지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시키는 것도 그런 경우에 속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아이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모 스스로가 맹목적으로 잘하려고 하기 전에 우리 아이는 어떤 성향이고 어떤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무언가를 할 때 부모가 바라는 것과 아이를 위하는 것이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와의 관계도 순탄하게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겠지만 내 주위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제대로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 아이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부모로서의 가장 기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아이 얘기를 더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세요
아이 친구들의 엄마 한 분께서 ‘아이가 학교 얘기를 통 안 하려고 한다’며 걱정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아이도 성실하고 착했으며 어머니도 굉장히 좋은 분이셨습니다. 대화를 나눠보니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질문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가 하교하면 일단 엄마가 대화를 시도합니다. “학교 잘 갔다 왔어?”, “밥은 잘 먹었어?”, “수업은 잘 들었어?”, “별일 없었어?” 이런 질문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네, 네, 네, 네”라고 밖에 대답할 수밖에 없는 폐쇄형 질문이라는 점입니다.
회사 기자 활동을 하면서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을 인터뷰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질문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죠. 평소 말수가 적은 아이들이라고 다를 리 없습니다. 뻔한 물음에는 뻔한 대답이 나오고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는 무성의한 답변이 나오는 것입니다. 질문의 방식을 조금만 바꿔보면 아이의 답변 역시 달라집니다. 거기서부터 차근차근 꼬리에서 꼬리를 잡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가면 좀 더 대화가 풍성해지는 것이죠. 그런 횟수가 누적되면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아이 역시 부모와 함께 이야기하는 재미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이와 대화를 나눌 때 항상 하는 행동이 하나 있습니다. 몸을 낮추거나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아이는 어른보다 키가 작으니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위로 올려다보아야 합니다. 자세가 불편하니 아이의 기준에서는 대화를 편안하게 나누기 어렵습니다. 우리도 키가 2m가 넘는 사람을 올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이가 가장 편안하게 저를 바라보고 눈을 맞출 수 있는 위치를 찾는 것은 물리적으로 수평적인 대화의 작은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아이 역시 부모의 자세를 보며 대화에 진지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친 뒤에는 아이를 이유 없이 꼭 안아줍니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점이 있습니다. 아이와 그날 있었던 일로 대화할 때는 그때 느낀 감정도 함께 파악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즐거움, 속상함, 설렘 등의 기분을 파악해주고 공감해주는 것도 아이가 감정을 판단하고 조절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아이도 자신이 경험한 속상한 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른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감정조절 능력이 좌우됩니다. 아이의 기를 다시 살려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해결책부터 제시하거나 격려로만 일관하는 것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감정의 홍수 상태’라고 합니다. 이성의 자리를 감정이 차지하고 있어서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 것이죠.
이럴 때는 일단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모든 감정에 공감해주며, 아이의 말을 따라 해 주는 미러링을 해주면 효과적입니다. 아이가 처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에 비해 큰 효과가 없을 것 같지만 아이는 이 정도만 해도 자신이 사랑받는다고 느낄 수 있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이겨내는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런 활동들이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을 수 있는 사춘기나 친구 간의 갈등, 학교폭력 같은 힘든 시기를 맞닥뜨렸을 때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 대화와 존중의 중요성
아이의 요구를 거절할 때도 너무 단호히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들은 별 시답잖은 주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때가 있습니다. 제 둘째에게는 독특한 말투가 있습니다. 저에게 무슨 부탁을 할 때면 “아빠가 안 된다고 할 것 같으니까 말 안 할래요”라고 말을 합니다. 대부분은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이 많지만 그래도 상황이 허락하는 한 많이 들어주려고 합니다. 거절에 대한 저항감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지만 그래도 부모는 아이에게 있어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죠.
만약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도저히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경우일 때는 조금의 요령을 갖고 대화를 나눈다면 위기를 모면하고 상황을 잘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최근 둘째 녀석이 강아지 포메라니안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강아지 털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강아지를 키우는 꿈까지 꿨다는 아이에게 단호하게 “안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아이에게 왜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지에 대해서 차분히 물었습니다. 저 역시 강아지를 좋아하기에 ‘아빠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참고로 제 어머니께서는 강아지는 안되지만 차라리 소를 키우는 건 괜찮다는 답을 주셨습니다.) 그런 뒤에 인터넷으로 검색도 하고 유명 유튜버의 강아지를 키울 때 꼭 챙겨해야 할 점과 비용 등을 정리해놓은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그걸 보고 혼자 조용히 고민하던 둘째는 크게 불만을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포기했습니다. 대신 강아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일러스트(그림) 책을 얻게 되었죠.
이런 이야기는 어차피 하나 마나 한 소리고 하나도 안 먹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가 아이와 함께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어나가기만 한다면 아이는 속상하고 흥분된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히게 되고 부모의 말에 수긍하는 순간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절충점을 찾아준다면 충분히 훌륭한 대처를 한 셈입니다.
그리고 급하게 일정을 정할 때 아이와의 소통을 배제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이에게도 미리 스케줄을 공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일 누가 올 거야.”, “이따가 어디 갈 거야.”, “다음 주에 뭘 하기로 했어,” “오늘 저녁 메뉴는 ㅇㅇ야.” 등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이와 상의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일정의 결정은 아이와의 상의 없이 어른의 편의대로 정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아주 어린 영아라면 모를까 아이들이 조금만 자라도 입이 튀어나올 일입니다.
어른들은 아이의 감정이나 상황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의 불만은 듣고 흘려버리기 일쑤입니다. 내일 갑자기 엄마 친구가 동생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엄마 친구가 시간이 그때만 되기 때문에’, 숙제하다 말고 갑자기 옷을 입고 외출해야 하는 것은 ‘집에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주말에 갑자기 시골 할머니 댁에 가는 것은 ‘학원이 다음 주에만 방학을 하기 때문에’ 등 다 그럴듯한 이유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일방적인 통보이며 무조건 따라야 하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명령에 가깝습니다. 부모에게 존중받는 느낌을 받기 힘들죠.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아이의 정서지능 즉 EQ는 어른이 아이의 의견을 묻는 과정을 통해서 상당히 키워질 수 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저의 결정이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는 절차를 간과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상황에 대해서 무언가를 정한다면 부부끼리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도 미리 상의하고 만약에 아이의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면 양해를 정중히 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고민이나 안 좋은 일에 관해 대화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우물쭈물하며 어렵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엄청 심각한 내용일 수도 있고 큰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일단 무언가를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다면 부모님은 아이에게 제일 먼저 “말해줘서 고마워”라는 말부터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는 문제 상황과는 별개로 자신이 고민을 부모에게 말했다는 것을 후회하지 테니까요. “뭘 그런 걸 갖고 걱정하고 그래?”, “그걸 왜 이제 얘기해?”,“너는 그냥 가만히 있었어?”와 같이 아이가 죄책감을 느끼게끔 답을 해버린다면 소통의 폭을 넓히기는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아이와의 깊이 있는 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겪은 일을 구체적으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 번에 하나씩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경우가 많으므로 부모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 뒤부터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 아이에 대해서 많이 기억하고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정서지능의 시작
와이즈캠프에서 초등학생 2,59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와의 대화시간이 얼마나 되나요?’라고 말이죠. 놀랍게도 30분도 되지 않는다고 답한 아이들의 비율은 48%였습니다.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진짜 소통하며 대화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혹시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 노래, 친구에 대해서 얼마만큼 아시나요?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면 생각보다 길게 이어가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묻고 싶은 것과 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의 거리감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부모는 아이가 학교생활은 잘하는지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지 친구들과의 관계는 좋은지가 궁금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궁금해하는 것만 묻는 것은 대화라고 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조사에 가깝죠.
아이가 말하고 싶어 하는 주제들은 그와는 거리가 멉니다. 놀고 싶다거나 심심하다거나 그날 있었던 이야기가 같이 큰 맥락이 없는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아이와 길게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줘야 합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대화를 하고 아이의 관심사를 존중해준다면 아이가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수시로 바뀝니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아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 등 천차만별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의 관심사가 바뀔 때마다 유심히 챙겨줘야 합니다. 상대방의 관심사로 대화하는 것만큼 관계를 가깝게 만드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화술에서도 굉장히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아이들은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부모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행복을 느낍니다. 부모에게 관심받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꾸준히 갖지 못한다면 아이는 언젠가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엄마는 말해도 모르잖아요.”
반대로 부모는 아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사용하는 유행어 중에서 “선을 넘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심리적인 경계를 넘는 것을 뜻하는데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상대방의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습니다.
아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당연하게 말하지만 개중에는 아이가 정말 싫어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라고 해서 아이 앞에서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될 때 아이와 서로 제일 듣기 싫은 말이나 보기 싫은 행동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솔루션 중에도 ‘배우자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 아이와의 관계도 크게 다른 점은 없습니다. 당장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기에 말로 하기 힘들면 아이에게 시간을 두고 적어보라고 하세요. 이렇게 해본다면 아이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마 깜짝 놀랄만한 내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사춘기가 되어서 소통도 통제도 되지 않아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다녀놓은 정서지능은 나중에 아이가 커서 사춘기를 맞았을 때 빛을 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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